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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May 05. 2017

스웨덴에서 나는 페미니즘을 배웠다

[Equality] 성평등 선진국 스웨덴 페미니스트들과의 만남

    굉장히 가부장적이고 여전히 성평등을 위해 갈 길이 먼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서 25여 년 간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스트'나 ‘페미니즘’은 내게 부정적인 단어로 다가왔다. 사실 제대로 공부해 본 적도 없었거니와 '꼴페미'나 ‘메갈리아’ 등과 같은 페미니스트 혐오 단어들을 미디어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흡수하며 페미니스트나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나도 모르게 자리 잡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사전적으로 ‘페미니스트’는 부정적인 단어가 아니다.  ‘페미니스트’는 모든 성별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남성들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그들의 지위를 격하하자는 것이 페미니스트들의 입장은 아니다. 사실 나는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한 개인으로서 내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내게 부과된 전통적인 관습들에 대해 저항해왔다. 하지만 이런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와 그 이면의 의미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 보지 못했다. 단지 '여자니까, 여자로서, 여자답게' 등등의 말들로 난 내 꿈과 자유를 제약하는 성차별적인 발언들이 싫었을 뿐 전통적으로 우리에게 내재화된 성에 대한 인식을 깨기 위해 사회 곳곳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 대해 귀를 기울였던 것은 아니다. 한국 내에서의 페미니스트,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고민을 안 해보았는데 다른 나라에서는 이에 관해 어떤 담론이 형성되고 있는지 알리가 있나. 나는 단지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인간적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가치를 내 삶에서 지켜나가고 싶어 성 평등의 당위성에 대해 목소리를 냈을 뿐 부끄럽지만 페미니즘이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 어떤 역사적 투쟁을 통해 여성들이 지금의 권리를 쟁취했는지 또 현재는 어떤 논의들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제대로 아는 게 없었다.

 

    (양)성평등 정책의 선구자격인 스웨덴에 유학을 와서도 이 곳에서 남, 녀, 퀴어의 권리가 다른 여러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지켜지고 있어 감탄을 하거나 부러워했지만 이 권리들이 어떤 역사적 맥락 속에서 쟁취되었는지나 여전히 어떤 차별이 존재하는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지구 상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 중 하나인 스웨덴을 그저 유토피아로 내 세상에 남기고 싶어 이 사회에서는 어떠한 치열한 싸움이 일어나고 있는지 외면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름답고도 추악한 현실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탓과 아픈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 내가 바라보고 싶은 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나의 한계라는 걸 알면서도, 아픈 부분을 보는 것은 아직도 두렵기만 하다.

스웨덴과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내 프레임에 갇힐 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자극이고, 다른 프레임을 빌려옴으로써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 프레임은 독서나 여행 또는 다른 다양한 만남을 통해 다양한 사람과 생각을 교류하는 과정에서 생는데, 감사히도 내 프레임에 갇혀있던 와중에 내가 스웨덴과 페미니즘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찾았다. 지난 4월 한국 가정폭력피해 여성들을 지원하는 NGO ‘한국 여성의 전화’의 스웨덴 국외연수 통역을 맡은 것이 바로 그 기회였다. 3일 동안 관계자 분들과 함께 여러 스웨덴의 페미니즘 단체와 경찰청, 피해보상 지원청 등 정부기관을 방문했고 미팅을 가졌다. 가정 폭력 피해 실태와 지원 체계를 파악하기 위한 자리였지만 회의 내내 스웨덴에서 여성의 권리를 지켜내기 위해 어떤 투쟁이 이루어져 왔는지, 어떤 논의들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배울 수 있었다. 이 3일 동안의 경험은 스웨덴 사회뿐만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해 새롭게 볼 수 있는 시각을 가져다주었다. 우리에겐 꿈같은 현실로 여겨지는 (양)성 평등 선진국 스웨덴에서 여성의 권리 신장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평등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여전히 갈 길은 멀고 우리는 더욱더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이 글에서는 지난 3일간의 미팅에 참여하는 동안 내게 흥미로웠던 스웨덴의 페미니즘에 대해 나누고자 한다. 페미니즘이 한 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 상 인류 절반을 차지하는 우리 여성의 ‘보편적’인 문제인 만큼 다른 나라에서는 페미니즘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내 경험이 다른 누군가에게 페미니즘, 페미니스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길 바라며 글을 시작한다.



 아직 스웨덴에도 양성 평등은 이뤄지지 않았다

Global Gender Gap Index/ http://reports.weforum.org

    스웨덴은 전 세계 여러 국가 중에서도 성 평등 지수(Gender equality)가 굉장히 높은 나라이다. 스웨덴의 대부분 여성들이 일을 하며, 세계 최초로 아빠도 사용할 수 있는 유급 육아휴직제도를 만들었고, 정부 부처나 회사의 주요 요직에서도 다른 나라에 비해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굉장히 높다. 다른 나라들의 모범이 되며 양성 평등 선진국으로 여겨지는 스웨덴이지만 내가 만난 스웨덴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전히 스웨덴 사회 곳곳에 가부장제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양성 평등 지수가 상대적으로 높지만 여전히 스웨덴 사회에서는 남녀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특히, 대부분의 스웨덴 여성이 일을 하지만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의 대부분은 서비스 분야에 몰려있고, 정규직보다 파트타임 비중이 높다는 것이다. 서비스 분야가 다른 전문 분야에 비해 임금이 상대적으로 낮고, 여성들이 파트타임에 더 많이 종사하는 문제는 단순히 현재의 임금격차 문제뿐만 아니라 은퇴 후 연금 수령액에 차이가 발생하는 문제로도 이어지며 이는 삶의 질 격차의 문제로 도 이어진다. 스웨덴에서는 급여가 높을수록 세금을 많이 내기 때문에 자연히 급여가 높은 사람이 연금 수령액이 크기 때문이다. 여성이 서비스직과 파트타임에 더 많이 종사하는 문제는 직업의 특성에 따라 남녀 선호도가 다른 것도 한 몫하지만, 전통적으로 과학 기술 분야에서 여성이 상대적으로 소외된 것과,  여전히 여성이 남성보다 육아나 가사에 관한 더 많은 부담을 지는 사실에도 기인한다. 실제로 스웨덴 아빠들의 육아휴직 장려를 위해 ‘스웨덴 아빠 사진전을 열고 있는 스웨덴의 사진작가 요한 배브만에 따르면 스웨덴 부모의 14%만이 평등하게 육아휴직을 쓰고 있다(@브런치 작가 '지속가능스튜디오'님 글 참고). 내 주변의 스웨덴 여자 친구들과도 여성으로서 받는 사회적 압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은 엄마가 되는 것, 좋은 커리어우먼이 되는 것을 동시에 어떻게 잘 해내야 할지 부담이 된다고 토로하곤 한다. 이런 현실 앞에서 스웨덴의 페미니스트들은 스웨덴 사회의 여전히 뿌리 깊게 박힌 가부장적 문화를 청산하기 위해 사회적 자본이 공평하게 남녀에게 분배되고 있는지, 전통적인 성 역할이 강요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더욱 감시를 해야 하며 여성들이 연대해 정부, 기업 및 사회에 우리들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일환으로 스웨덴 페미니즘 단체 연합인 'The Swedish Women's Lobby(스웨덴 여성로비)에서는 '15:52' 캠페인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오후 3시 52분을 뜻하는 '15:52' 운동은 스웨덴 성별 임금격차에 따라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적은 임금을 받기 때문에 더 적은 시간 일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원래 퇴근 시간인 17시보다 1시간 8분 앞선 15시 52분까지만 일하자는 것이다.

         그랬다. 스웨덴은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양)성평등 지수를 보이고 있지만, 그 말이 사회가 완전한 (양)성 ‘평등’을 이룩했다는 것은 아니다. 상대적 격차가 적을 뿐. 사실 내게는 그 높은 지수조차도 꿈같은 이야기였기 때문에 이 이상으로 진보해야 된다는 생각까지는 못했었다. 그래서 높은 (양)성평등지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소외받는 여성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정부와 기업에 압박을 가하고 사회 운동을 하는 스웨덴의 페미니스트들은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고, 평등한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여전히 많다는 것을 깨우쳐 주었다.  




'나는 페미니스트야'라는 말이 부정적이지 않은 사회

    3일간 미팅을 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 중의 하나는 스웨덴의 많은 젊은 여성들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한국에서도 많은 젊은 여성들이 우리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사회에 잔존하는 성 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나처럼 페미니즘에 대해 모르는 사람도 많고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인지하고 드러내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스웨덴의 여성단체 연합인 ‘The Swedish Women’s Lobby(스웨덴 여성 로비)에 따르면 스웨덴에서는 젊은 여성 페미니스트 활동가들도 많고, 실제 여론 조사 결과 젊은 여성들 중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인식하고 드러내는 비율은 80%에 이른다고 한다.  스웨덴 여성 로비에 방문했을 때 만난 담당자와 사무처장 모두 내 또래로 보이는 학생들이었는데, 우리 담당자는 벌써 그곳에서 일한 경력이 5년이나 되었다고 했다. 어릴 적부터 학교에서 (양)성평등과 페미니즘에 대해 교육을 받고, 가정에서 부모의 역할 분담을 보면서 자연스레 (양)성 평등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 관심을 바탕으로 스웨덴 여성 로비에서 인턴을 하게 된 것이 이 곳에서 일을 하는데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 단체는 더 많은 젊은 친구들이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에 대해 제대로 알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이지리아의 페미니스트 ‘치마만다 은고지 아다치에’가 지은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라는 책의 스웨덴어 판을 전국의 모든 16세 청소년에게 배급하기도 했다. (이 책은 250만 명 이상이 본 치마만다 은고지 아다치에의 TED 강연과 자신의 에세이를 엮은 책이다).

<We should all be feminists | Chimamanda Ngozi Adichie>(Click)


    스웨덴 여성 로비를 방문하기 전에는 스웨덴 최초의 여성 쉼터를 만든 NGO ROKS의 대표이자 스웨덴 여성 운동의 시작을 함께한 노년의 여성 페미니스트도 만날 수 있었는데, 서로 다른 세대의 페미니스트들을 만나면서 나는 오늘날 많은 스웨덴 여성들이 스스로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하며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1970년 대 부터 이어져온 여성운동의 힘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ROKS의 대표 레베카는 스웨덴 여성운동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는데, 그녀는 1960년대 등록금 개혁으로 부자들의 전유물이었던 대학 교육이 모든 이에게 확대되면서 교육을 받은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확대되고 있었지만, 여전히 스웨덴 사회가 가부장적이어서 많은 여성들이 사회  진출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이에 저항하기 위해 많은 여성들이 1970년대 여성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것이 스웨덴의 페미니즘 운동의 시초가 되어 스웨덴 여성들의 연대를 이끌어낸 것이다. 이 노력이 1970년대  사민당이 스웨덴 경제를 부흥시키고 모든 이들에게 개인의 발전을 위한 동등한 기회를 부여해야 하기 위해 여성들의 사회 진출을 장려한 것과 맞물려 스웨덴 페미니즘은 스웨덴의 가부장적 문화를 부수고 진보된 양성평등을 일구어왔다.  스웨덴의 사회 전반에 녹아져 있는 양성 평등을 추구하고자 하는 노력이 단숨에 이뤄진 게 아니라 결국 다른 변화와 마찬가지로 저항과 투쟁의 역사이며, 교육을 통해 ‘세대 간’ 꾸준히 이어져 온 것이다. 미팅 내내 많은 페미니스트들, 특히 젊은 친구들이 성별에 상관없이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저항하고 투쟁하는 것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한 청년이자 여성으로서 스스로에게 나는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지 되물어보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지난 8월 스웨덴에 와서 살면서 스웨덴의 아름다운 부분만을 '감상'했었지 이들이 어떻게 남들이 부러워하는 사회를 이룩해왔는지 제대로 공부해 본 경험이 없다. 짧지만 강렬했던 지난 3일 동안 나는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권리를 누리고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를 이룩하는 데에 스웨덴의 많은 페미니스트들의 희생과 투쟁이 큰 기여를 해왔음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이 사회에도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는 사실은 스웨덴에 대한 나의 판타지를 깨고 보다 균형 잡힌 시각으로 이 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스웨덴 내의 페미니즘 운동에 대해서도 여러 단체의 이해관계가 다르겠지만, 적어도 궁극적인 (양)성 평등이라는 목표를 향해 함께 걸어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였다. 이제는 누군가가 나에게 '당신은 페미니스트입니까?'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이제는 당당하게 페미니스트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페미니스트나 페미니즘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내게 스웨덴의 다양한 페미니스트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경험은 여성으로서 그리고 한 개인으로서 이 사회에 내 목소리를 당당하게 낼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내 목소리에 당위성을 부여할 근거들을 마련해주었다. 3일 동안의 짧지만 강렬했던 스웨덴 페미니스트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는 그들의 투쟁의 역사를 배웠고, 아무것도 당연하게 쟁취되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내 행복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행복할 권리를 위해서 모든 사람이 성별에 상관없이 평등할 수 있는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차근차근히 해나갈 때이다.

(* 여러모로 도움을 주신 한국 여성의 전화 선생님들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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