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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ob Jan 30. 2024

우리 안에 생명의 뜨거움이 있기를

내 숨은 왜 아직까지 이리 뜨거울까


    신년을 시작으로 쏟아지던 눈은 오늘도 어김없이 세상을 하얗게 덮습니다. 이번 겨울 토론토에는 이상기후로 인해 눈이 되지 못한 비가 자주 내리곤 했습니다. 1월이 되어서야 눈이 내리기 시작했죠. 눈이 되지 못한 채 내리는 슬픈 겨울비만을 맞이하다 마침내 마주하게 된 하얀 눈꽃은 이전보다 더 큰 감정의 상승을 느끼게 만듭니다. 어제와는 다른, 이전과는 다른 새 날을 힘차게 시작할 용기와 희망을 건네주는 것만 같죠. 이처럼 눈꽃이 온 세상을 하얗게 덮는 날이면 괜시리 설렘이 가득합니다. 아직까지 저는 삶의 고충보단 삶의 희망을 더 보고 싶은가 봅니다.


눈이 오면


    새하얀 눈은 세상의 모든 것을 관대히 덮어주는 것 같으면서도 드러내야 할 것을 뚜렷이 드러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눈이 깨끗하면 깨끗할수록 땅에서 묻어난 눈은 발을 가까이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지저분합니다. 인간의 추악한 손 때와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의 발자국들이 밟고 난 후의 눈을 보자면 세상을 새하얗게 만들어 줄 것만 같은 깨끗한 눈은 온 데 간 데 없고, 얼룩덜룩 인간의 탐욕과 이기, 소유와 타락만이 묻어난 검고 질척한 눈만이 만연할 뿐입니다. 빛이 강할수록 어두운 면이 짙어지는 법이죠. 깨끗할수록 더러운 것이 쉬이 보이고, 밝을수록 어두운 것이 크게 보이는 법입니다.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두운 쪽은 밝은 쪽을 조명(照明)해줍니다. 가혹한 추위는 사람됨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것 같지만서도 사람됨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슬픔과 고통은 기존의 형식을 깨뜨리고 본질과 진실을 바라보게 만들고, 죽음은 삶을 예찬하고 삶의 가치를 가르쳐줍니다. 차디찬 겨울 냉기 속에서야 뜨거운 생명의 숨은 그 모습을 드러내죠. 더울 땐 보이지도 않던 그 생명의 입김이 추우면 추울수록 더 뚜렷하고 힘 있게 보인다는 것을 아십니까? 저는 겨울 냉기가 시린 길을 걸을 때마다 제 안에 있는 뜨거운 생명을 눈으로 보기 위해 꽤 자주 숨을 크게 크게 내뱉습니다. 비록 우리의 손은 아직도 얼룩덜룩 때를 묻어내지만, 여전히 우리 안에는 생명의 뜨거움이 존재한다는 것을 눈으로 보게 되는 순간입니다.


겨울을 살다


    ‘이불 밖은 위험하다’라는 말이 굳이 계절성을 타는 말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눈보라가 치는 겨울에야 이 말이 더욱 어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겨울의 차디찬 냉기가 뼛속을 시리게 하는 날이면 우리는 주변의 모든 이웃에 대한 관심을 거두어들인 채 문을 닫고 이불속에 들어앉게 됩니다. 예상보다 더 혹독하고 냉엄한 겨울 추위는 제 한 몸의 안위(安危)에만 신경을 쓰게 만들죠. 그렇게 이불속으로 들어서면서부터는 밖과의 단절이 시작됩니다. 그저 창을 통해 누군가는 겪고 있을 세찬 눈바람만을 보고 있을 뿐입니다. 창밖의 격렬한 눈바람을 보며 네가 겪고 있을 추위를 저도 되새겨보지만, 창은 그저 바라볼 뿐 출입(出入)이 되지 않습니다. 결연히 몸을 내어옴은 창이 아닌 문을 통하여 이뤄지죠.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은 그런 겨울을 꽤 오랜 시간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몰아치는 겨울의 눈보라가 더 세차질수록 우리는 이불을 단단히 여미고 저의 안위에만 신경을 씁니다. 타인에게 내어줄 마음 한 켠 닫아놓고, 이웃에게 내어줄 손에 저를 위한 다른 무엇 하나 더 쥐기 바쁩니다. 매스컴을 통해 보이는 세상의 겨울 냉기가 인간의 이기성을 더욱 자극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살기가 버거운 오늘날은 정말 ‘나’ 하나 살아내기 바쁜 차가운 겨울날들입니다. 더욱 세차 가는 겨울 냉기가 혹 저에게까지 닿을까 걱정하며, 타인을 향한 문은 단단히 닫은 채 이불속에서 제 손에 무엇이 더 닿을지 더듬거리는 모습은 창밖의 눈바람만큼이나 차고 쓸쓸해 보입니다. 문뜩 바깥이나 안이나 차고 쓸쓸해 보이는 까닭이 꼭 바깥의 겨울 눈바람 영향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 그렇게 두 문 굳게 닫아버린 칩거의 삶이 오히려 창 안쪽에 있는 저희의 뜨거운 생명을 얼어붙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요. 다시 한번 내뱉는 저의 뜨거운 숨을 보고 여전히 제 안에 뜨거운 생명이 있음에 안도하지만, 한편으론 저의 모습을 썩 부끄럽게 합니다. 겨울바람처럼 차가워져만 가는 저희의 손과 발을 두고 저희 안에 있는 생명은 왜 아직까지도 이리 뜨거운 것일까요. 왜 아직도 저희 안에 있는 생명은 뜨거움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요.


뜨거운 생명의 소임(所任)


    점점 더 세차 가는 차가운 겨울바람에, 또 여전히 검은 때만을 묻어내는 우리의 손과 발에 무력감을 사무치게 느끼지만, 그렇게 떨어뜨린 눈물조차 아직은 뜨겁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어쩌면 우리 안에 있는 이 뜨거움은 이렇게 차가워져만 가는 현실 속에서도 피어오를 ‘생명’을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차가워져만 가는 세상에 안타까움으로 흘리는 이 뜨거운 눈물과 이 냉엄한 겨울을 함께 견디는 사람들끼리 나누는 뜨거운 체온의 힘 모두 결국 ‘생명’을 향한 뜨거움들이니까요. 우리 안에 존재하는 뜨거움이 서로의 생명을 북돋아주고, 차디찬 냉기 속 우리의 뜨거움이 누군가의 생명을 따스히 덮어주고, 모든 뜨거운 생명은 의도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서로의 생명에 의지가 되고 위로가 되는 것이, 어쩌면 뜨거운 생명의 본래 속성(屬性)은 또 다른 ‘생명’을 향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뜨거운 생명이 내뿜는 온기는 자연히 다른 생명에 닿습니다. 뜨거운 눈물이 영혼을 자극시켜 전염되는 것처럼, 저의 온기가 너의 손에 닿아 옮겨지는 것처럼, 생명이 채워내는 열기가 방 안을 가득 메우는 것처럼 우리 몸속에 있는 뜨거운 생명은 온기를 나눔으로 또 다른 생명 안에 뜨거움을 피어냅니다. 곧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이 아직까지 뜨거운 이유는 다른 생명으로 퍼져나가기 위함이겠고, 우리가 차가운 겨울 냉기 앞에 문을 닫고 칩거의 삶으로 들어서는 순간 우리 안에 있는 뜨거운 생명은 뜨거움을 잃어버리는 것이겠지요. 우리 안에 있는 뜨거운 생명은 더욱 차가워지는 현실의 겨울 앞에서도 여전히 뜨거움으로 존재하고 싶어서 몸과 맘이 추운 냉기에 둘러싸여 희망을 잃고 좌절할 때쯤 뜨거운 숨결과 뜨거운 눈물로 자신을 나타내나 봅니다. 나는 아직 뜨거울 수 있다고요.


생명으로 가득하도록


    2024년, 이제는 문을 열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겨울의 차디찬 냉기가 창 틈새를 통해 들어와 우리의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것을 알지만, 이 겨울의 냉엄한 추위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지극히 미미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 냉기와 추위 앞에 그저 웅크린 모습이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을 더욱 차갑게 만드는 것이겠습니다. 이제는 문밖으로 나가 아직 뜨거울 수 있다는 우리의 생명에 응답해야겠습니다. 차가운 욕망으로 쌓인 사람을 너그러이 덮어주고,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사랑으로 허물어주고, 뜨거움으로 생명을 달구어 계속해서 뻗어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뜨거운 생명을 품은 이유입니다. 이 땅이 살아있는 것들로 가득하도록, 이 땅이 뜨거운 생명으로 무성하도록, 이 땅이 사랑으로 충만하도록 우리는 우리 모두의 행복과 뜨거운 생명의 소임을 다해야 합니다. 초록빛이 가득한 생명의 계절을 꿈꿔야 합니다. 가끔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우리는 이 땅에 너무 지친 나머지 하늘을 바라보며 언젠간 아름다운 세상이 이 땅에 도래할 것을 꿈꾸지만, 하늘 역시 땅을 바라보며 뜨거운 생명을 가진 이들에게 희망을 두고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사람이 하늘을 믿고 하늘에 희망을 두는 것처럼, 하늘도 믿음직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땅에 넘어진 사람은 허공을 붙잡고 일어날 수 없습니다. 땅에 넘어진 사람은 결국 땅을 짚고 일어설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마침을 앞세워 하늘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새롭게 시작된 희망과 가능성의 새 날을 등에 업고 바른 지향과 추락하지 않을 속력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2024년, 희망과 가능성을 다시 새로 품고,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는 뜨거운 생명을 따라 또 다른 생명으로 퍼져나가기를 소망합니다. 이 땅이 살아있는 것, 뜨거운 생명, 곧 사랑으로 가득 찰 때까지 하늘의 은총이 이 땅을 생명으로 물들이는 모든 이들과 함께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나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여라. ”(막16:15)


2024년 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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