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대노 Feb 23. 2022

우리 개가 물렸어요!

시골 개는 산책이 어렵다.

‘개는 훌륭하다’라는 방송에서 개통령 강형욱 훈련사님이 말씀하셨다.

전원주택에 사는 개들도 마당이 산책을 대신해주진 못하니 산책은 꼭 마당 밖으로 나가서 해야 하는데, 시골에 사는 개들이 오히려 산책할 곳이 마땅치 않다고.


1~2 미터 간격으로 가로등이 즐비해 있는 도심과는 달리, 시골은 손전등에 헤드라이터, 야광 조끼까지 풀착장을 하지 않고서는 밤 산책을 나갈 수 없을 정도로 깜깜하다.

설사 그렇게 하고 나가더라도 집집마다 키우는 커다란 시골 개들의 짖는 소리를 무시하고 다니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다 보니, 산책할 수 있는 시간이 해가 떠 있을 때로 한정된다.     


시골이라 그런 걸까. 목줄을 하지 않고 풀어놓는 집들도 많다. 사회성 없는 우리 집 개들이 산책길에 목줄 없이 돌아다니는 개들을 만나기라도 하면 무작정 짖어대기만 해대, 난감하기 그지없다.     


며칠 전 우리 집 대형견, 마루를 데리고 산책하는 길 맞닥뜨린 일이다. 펜스가 쳐진 마당 안에 또다시 펜스로 공간을 마련해 두고 키우던 대형견 (시베리안 허스키)이 집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다.

마루랑 부딪혔다가는 큰 사고라도 날까 싶어 한참 떨어진 거리에서 그 개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있었지만, 자기 개를 잡을 생각은 하지 않고 그냥 보고만 있었다.

다행히 그 개가 우리 쪽으로 오지 않아서 별 일은 없었지만 왜 그런 대형견을 자기 집 마당도 아닌 공간에 풀어두는 건지, 그리고 다른 개가 지나가는 데도 케어할 생각도 하지 않는 건지 너무 화가 났다.

혹시라도 그 아저씨가 견주가 아닐 수도 있어서, 그 개가 살고 있는 집에 가 보았다. 대문이 열려 있고, 그리고 그 개집의 펜스 문도 열려 있더라.

개 단속하시라는 말씀을 드리려고 문을 두드리고 한참을 기다렸지만,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아까 그 개와 우리를 번갈아 쳐다만 보던 그 아저씨가 주인이 맞는 것 같았다.       


   


그 일이 있고 며칠 뒤, 딸아이와 개 세 마리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소형견  두 마리 (포메라니안, 루루와 코코)와 대형견 한 마리 (골든 레트리버, 마루) 조합으로, 우리 개들은 각각 산책 스타일도 워낙 달라 온 가족이 다 같이 산책하는 경우를 빼면 이렇게 나가는 일이 없다.

왜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할 생각이 들었을까.

그날은 딸아이가 방학이라 코코를 담당해주기로 하고, 잘 걷지 않는 루루는 내가 아기띠에 안고 대형견인 마루는 목줄과 앞섬 방지 줄 (개들이 앞으로 튀어 나가는 등의 갑작스러운 행동을 저지하기에 유용한 줄)을 2중으로 채워 데리고 나갔다.      


우리 집 앞으로는 복숭아밭이 쫙 펼쳐져 있어, 봄이면 복숭아꽃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확 트인 복숭아밭을 따라 산책하는 일은, 이곳에 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가끔은 고라니가 겅중겅중 뛰어가는 것도 볼 수 있었다.

햇살이 따스해서, 겨울 같지 않은 포근한 날이었다.

봄을 기다리는 잎 떨어진 복숭아나무들의 설렘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산책은 좋았다.

사춘기 딸아이가 오랜만에 함께하는 산책이라 더 좋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옆집 개 순돌이(회색 늑대같이 생긴 진돗개?)를 만나기 전까지는.          


집에 거의 다 도착한 순간이었다. 우리 집 담벼락 모퉁이만 돌면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때, 옆집 순돌이가 줄이 끊어져 집 밖으로 뛰쳐나오다가 마루가 ‘컹’하고 짖자 마루에게 달려들었다.

대형견 두 마리가 대치한 상황에서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겁에 질렸다. 마루랑 순돌이가 마주 보지 않게 하려고 마루 눈이 충혈될 때까지 마루 목줄을 꽉 쥐었다.

그렇게 해서 마루를 내 앞쪽 허벅지에 밀착시키자 순돌이가 내 허벅지 뒤쪽으로 돌아가서 마루를 공격하려고 했다.  대형견 두 마리의 싸움을 말리려고 내가 중간에 낀 꼴이었다.

순돌이는 공격이 여의치 않자 마루 엉덩이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마루를 물고 뒤쪽으로 끌어내려는 순돌이를 피하려고 마루를 빙빙 돌리다가 순돌이의 굵은 쇠줄에 걸려 내가 뒤로 넘어졌고, 마루는 순돌이한테 꼬리 쪽 등을 물린 채로 뒤로 끌려가고 있었다.

그렇게 끌려가는 마루를 보고만 있을 수 없어(그 순간엔 정신이 나간 것만 같다) 왼쪽 팔과 다리로 마루를 꽉 잡고 오른쪽 팔로 순돌이 목줄을 최대한 짧게 잡아챘다.

사실 목줄을 어떻게 잡았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순돌이를 내가 잡고 있던 순간 순돌이와 내 얼굴이 맞닿아 있었다는 거, 그리고 마루와 떨어뜨려놨지만 주변에 아무도 없는 순간에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무척 두려웠다는 거였다.   

전원주택 단지라고 해도 낮에는 대부분의 집들이 비어 있는 데다가, 요즘은 어찌나 집들을 잘 지어대는지 우리 집만 해도 밖에서 나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아 누군가의 도움을 바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루루는 진작에 아기띠에서 떨어졌는지, 코코를 데려다 놓고 나온 딸아이에게 발견되어 딸아이가 집에 데려다 놓고 나왔다고 나중에 들었다.

딸아이가 루루 코코를 데려다 놓고 다시 나온 것을 보고, 마루 데리고 가라고 소리소리를 질러댔다. 딸아이가 마루를 집에 데리고 가서 상황은 일단락되었지만, 나와 누워있던 순돌이는 언제까지 잡고 있어야 하는지 모를 상황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무서운 일인데, 순돌이가 사람에 대한 공격성이 없는 아이였기 때문에 내가 지금 살아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바로 얼굴 앞에 낯선 사람이 자기 목줄을 잡고 ‘괜찮다 괜찮다’ 말하고 있으니……. 숨을 헐떡이는 순돌이를 보고 있자니 그제야 얘도 놀랐겠구나  싶었다.     

다행히 몇 분 지나지 않아 옆집 여사님 차가 돌아와 누워있던 내게서 순돌이를 받아가셨다.  연신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손에 피가 묻어있어 너무 놀란 나는 집으로 뛰어가서 마루를 진정시키고 상처를 찾아보았다. 마루 몸 여기저기 상처가 많았다.

그날 밤, 자다 놀라 침대로 와서 안아달라고도 하고, 그르렁그르렁 위협하는 소리도 내는 걸 보면서 차라리 싸우게 뒀으면 마루가 덜 다쳤을까 하는 생각에 미안해지는 밤이었다. 덩치도 훨씬 크고 힘도 센 마루가 순돌이한테 지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매일 소독약을 뿌리고, 상처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이고, 항생제를 먹이고 있다. 상처 근처에 손가락만 살짝 닿아도 다리에 경련을 일으키는데, 에탄올 소독제를 뿌릴 때 얼마나 아플까.     

어제저녁부터는 내가 소독약을 들자 도망가기 시작했다.

우리 마루는 아빠가 믿을 구석인가. 아빠 있을 때는 도망가서 아빠한테 숨어서 절대 안 돌아온다.

어쩔 수 없이 "소독약 안 할게. 연고만 바를게."라고 사정하니까 돌아와서 상처를 치료하던 그 여우가 오늘 아침엔 아빠가 없으니까 도망갔다가 돌아온다.

믿을 구석이 없어서, 저 아픈 소독약을 뿌리겠다고 돌아오는 모습이 더 안쓰럽다.     

     

그날은 너무 놀라 몰랐는데, 다음날 아침부터 내 온몸이 욱신거리고 살을 스치기만 해도 쓰라렸다.

‘내가 정말 큰 전쟁을 치렀구나.’라는 걸 내 몸의 상처들이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줄을 꽉 잡고 있던 손가락엔 상처도 있었고 손가락을 구부릴 때마 다 통증이 있었다. 겨드랑이 쪽이 부어있고, 온몸에 멍과 자잘하게 까진 상처가 가득했다. 뒤로 넘어갈 때 엉덩이로 아스팔트를 박았는지 앉을 때마다 허리를 비롯한 내 몸 구석구석 통증이 느껴졌다.     


옆집 여사님께서는 마루 치료비라도 주시고 싶어 전화 주셨지만, 그걸 받는 게 더 불편할 것 같다고 사양했다.

물론 여사님은 내 상처는 모르시지만, 혹시라도 아이들이 이런 사고가 나면 여사님도 난감하실 테니 단속 잘하십사 다시 한번 말씀드려야겠다.       

    

모두들 자기 개 조심합시다!!!

한적하고 평화로운 이 시골길을 마음 편하게 산책 다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실내에서 살면서 사고 한 번 치지 않는, 착하고 순한 우리 마루


상처 주변에 손이 닿기만 해도 경련을 일으키는데, 에탄올 소독약을 참아내는 마루가 안쓰럽기만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에게는 몇 번의 봄이 남았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