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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대노 Mar 30. 2022

시각적 거리두기

가림막을 설치하다.

우리가 사는 온도

내가 10을 주어도 상대는
1이라 느낄 수 있고
같은 10이어도 다른 사람은
그것을 100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래서 모든 관계가 어려운 것이다

우리는 너무도 다른 온도에 살고 있다

<견뎌야 하는 단어들에 대하여 中, 김준 (2017, 지식인하우스)>



이웃과의 적절한 거리는 얼마일까?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기에 '자신이 원하는 거리'와 '상대에게 편안함을 주는 거리' 사이도 다르다. 인간관계에서 적절한 선을 유지한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면서도 그 선을 넘지 않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이웃은 집을 쉽게 옮길 수 없는 만큼, 편안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하다.


어떤 전원주택 단지는 단지 내 사람들끼리 밴드 같은 온라인 소모임이 무척 활성화되어 있다고 한다. 때로는 재능기부를 하기도 하고, 아이들을 모아 등하교를 같이 시키기도 하는 등 작은 마을 공동체로 살아간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내향형인 나는 얘기만 들어도 무척 부담스러워서 그런 곳에서는 살 수 없을 것 같다.

다행히 내가 사는 곳은 시내와 가까운 전원주택 단지임에도, 길을 따라 따닥따닥 붙지 않아 적당히 거리 유지가 되어 있을 뿐 아니라, 모든 집이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어 서로의 삶이 크게 방해되지 않는다.

게다가 성향들마저 조용하게 각자의 라이프를 즐기고 싶은 사람들이라, 반갑게 인사는 하되 서로 간 왕래하는 일은 많지 않다.


나의 배려가 상대에게는 간섭이나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항상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이란 존재는 '내 마음은 그렇지 않아, 의도는 그런 게 아니었어'라는 말로 종종 선을 넘는 경우가 생긴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을 붉히게 되는, 선 넘은 경험이 내게도 있다.


옆 집에 신혼부부가 새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이다.

모습도 생각도 너무 예쁜 부부이기에, 그래도 이곳에 더 오래 터를 잡고 살아온 사람으로서 이것저것 도움을 주고 싶었다.

마당에서 예쁘게 자라는 꽃을 나눠주고, 이건 노지 월동이 되느니 마느니, 노지 월동되지 않는 화분이 많아지면 겨울에 집이 답답하다느니 어쨌다느니, 그들의 취향은 알지도 못하면서 시도 때도 없이 조언이랍시고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처럼, 그들도 자기들만의 취향으로 집을 가꾸면서 조용히 살고 싶었을 건데, 사람을 좋아하지도 않는 내가, 배려가 상대에게 불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아는 내가, 나답지 않게 왜 그랬나 싶다.

나이 좀 많다고, 이곳에 좀 더 오래 살아봤다고 꼰대 기질이 발동한 것일까.

다행히 금방 나다움(?)을 찾아, 나의 오지랖이 부담이 되어 마음을 상하게 하진 않았는지 사과했고, 이후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 착하고 예쁜 부부는 신경 써줘서 오히려 고맙다고 했지만, 누가 나한테 그랬더래도 나 역시 고맙다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미안한 마음에, 지워버리고만 싶은 불편한 기억이다.




태양광을 설치하면서 재건축한 원두막이 전에 지었던 것보다 조금 높아지면서 앞집의 2층과 눈높이가 얼추 맞았고, 오가는 도로에서도 너무 훤히 잘 보이게 되었다.  

우리가 원두막을 이용하지 않을 땐 괜찮지만, 원두막에서 놀려면 앞집과 서로 불편하겠다 싶었다.

그래서 시브로(남편 애칭)가 목공작업장을 만들고 난 이후의 첫 작업은 이 원두막에 가림막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이것저것 만들다 남은 자재들이 있어서 내가 좋아하는 건축자재 용품점에는 가지 않는다는 말에 잠시 실망했지만 (차로 2분이면 가는데, 다녀오면 안 되겠니?), 작업에 속도를 내고 싶어 하는 시브로를 조용히 도와주기로 했다.


원두막 난간에는 공중부양 딸기밭이 붙어있다. 심다 심다 심을 곳이 부족해서 공중 부양시킨 나의 딸기밭, 욕심쟁이 우후후^^

원두막까지 올라가서 물 주기가 귀찮아 겨울 내내 (사실 가을부터) 방치했더니, 딸기의 대부분이 말라죽어있었다. 그렇지만 괜찮다. 딸기는 계속 퍼지니까, 살아있는 몇 놈만 잘 관리하면 또다시 풍성한 딸기밭이 될 것이다. (그럴 줄 알고 땅에도 심어 놨지! 거봐라 남편아, 나는 계획이 다 있단다!)


태양광 지지대에 틀을 만들고, 집에 남아있던 자재를 자르고 자르고 자르고, 붙이고 붙이고 붙이고 완성!

가림막 하나 생긴 것만으로도 더 아늑한 느낌이 생겼다. 날 따뜻해지면 이곳에서 브런치 먹을 생각에 벌써 행복해진다.


실제로는 훨씬 더 아늑한데, 사진으로는 표현이 안된다. 원두막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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