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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대노 Mar 28. 2022

봄:들썩이는 마음을 부여잡아야 할 때


어젯밤부터 내린 봄비로 마당 곳곳에 시끄러운 소리가 가득하다.

봄이 왔다고, 싹이 트고 있으니 좀 나와 보라고... 기분 좋은 새들의 노랫소리 가득한 마당으로 나가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제 조금 덜 추워졌다고, 내리는 비가 쌀쌀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마당의 모습은 눈으로 보기에는 겨울과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는데, 이파리 하나 없는 나뭇가지 사이로도 봄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한 일이었다.

잘 찾아 봐야만 보이는, 삐쭉삐쭉 올라오려고 기를 쓰는 초록의 새싹들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봄이 오는 것은 땅이 가장 먼저 느끼는가 보다.     



지난했던 겨울을 견뎌내고 올라온 새싹들에 온 마음이 들썩이게 된다. 봄, 너 참 좋다



이 시기가 제일 위험하다.

땅도 나무들도 새들도 그리고 나도 봄을 느끼는 이 순간, 마음이 들썩 들썩이는 이 시기를 잘 참아내야만 한다.

따뜻해졌다고, 이제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고 섣불리 꽃망울을 달고 있는 화분을 바깥세상에 내놓았다가는 꽃샘추위에 바로 저 세상으로 보내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기간의 봄을 즐길 수 있는 건, 온전히 마당에서 겨울을 참아낸 아이들의 몫인가 보다. 온실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누릴 수 없는 특권이다.

보통 4월 중순은 되어야 안심할 수 있는데, 보름 정도를 기다리지 못해 새로 산 꽃모종을 모조리 얼려 죽이거나, 꽃 한 번 피우지 못하고 깻잎모양의 수국 이파리만 봐야 했던 몇 년 간의 경험으로, 이제는 전원생활 5년 차라고 앞서는 의욕을 잠재울 줄도 알게 되었다. 기특하다.

지금부터 그 보름간이 얼마나 지겨울지, 시간과의 싸움이다.          





마당을 둘러보다 보니, 해야 할 일들이 눈에 들어온다.

공중 부양시킨 딸기밭은 물 주기가 귀찮아 방치한 탓에 얼마 살아남지 않은 것 같지만, 커다란 화분에 심겨 있던 딸기에 새순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올해 제대로 딸기를 즐기려면 한 두 포기씩 나눠 심어놔야 할 것 같다.

집에서 만든 퇴비를 흙에 섞어줘야겠다.     


단독주택이라 음식물을 처리하는 것도 일이지만, 양념이 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음식물은  나무 밑에, 텃밭에 던져주면 천연의 영양제가 될 것 같아서 그냥 버리기가 아까웠다. 그렇다고 땅에 묻자니 집에 3마리나 되는 개들이 땅을 파헤치고 파먹을 것만 같아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마당에 공간이 있으니, 유기농 자연 퇴비를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달라고 시브로(남편 애칭)에게 부탁하였다. 이곳에서 만든 퇴비를 사용하면 영양분이 얼마나 많은지, 쌈채소도 열대우림 식물처럼 키워낼 수 있다.


퇴비를 만들기 위한 통에 과일을 버리면, 그 씨앗들이 자연 발아해 잡초처럼 뽑아도 뽑아도 계속 싹을 틔워내기 때문에, 올해는 내가 심지 않은 어떤 아이들이 저 흙을 뚫고 나올지 무섭다.  섞어 준 흙에서 토마토는 수천 개의 싹이 나오고, 심지어 멜론이 나오기도 한다. 무섭지만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퇴비를 만들어 사용하는데, 영양분이 얼마나 풍부한지 쌈채소 한 장이 5kg 강아지보다 크게 자라기도 한다.
집에서 만든 천연퇴비를 섞어 딸기 포기를 나눠심었다.


 

작년 여름, 마을 입구의 농가에서 수박을 공중에 매달아 키우는 것을 본 시브로가 올해는 우리도 수박을 한 번 키워보자고 한다. 남들 하는 건 다 해보고 싶은 우리 부부.

수박이든 토마토든 포도 줄기든 매달 수 있는 건 다 매달 수 있게 텃밭에 대를 세우고 와이어로 지그재그의 줄을 만들었다.

모종을 사면 편할 일을, 의욕이 넘친 시브로가 모종 나오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씨앗을 사버렸다. 발아는 온전히 나의 몫, 수박씨는 저면 관수로 발아시켜봐야겠다.


뭐 할 게 없나 아무리 마당을 돌아다녀봐도, 슬프게도 지금은 더 할 일이 없다.

토마토 같은 건 몰라도 쌈채소는 지금 심어도 될 것 같아 모종판매상으로 달려갔다.

흙이 별로 없어도 되는 아이들이 땅을 많이 차지하는 게 아까워 계단식으로 만든 쌈채소밭에 상추, 치커리, 겨자, 로메인을 심었다. 맨 위칸에는 엄마가 준 파를 다듬어 냉장고에 넣으려다가 뿌리가 살아있으니 텃밭에 심어버렸다(파는 개들이 뜯어먹으면 안 되어서 제일 높은 곳에 심었다.).

퇴비 저장소 옆 그늘진 땅에는 더덕과 참나물이 심겨 있는데, 이번에 곰취와 산나물(명이)을 추가하였다.


수박 매달 와이어 줄을 설치하고, 계단밭에는 쌈채소와 파를 심고, 그늘진 곳에는 곰취와 산나물을 심었다.



보름만 참자, 보름만 참자. 참겠다는 마음이 강할수록 들썩이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

차분히 기다리기는 어려울 테니, 작년에 채종한 꽃씨들이나 발아시켜야겠다. 따뜻해지자마자 마당에 심을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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