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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대노 Feb 15. 2022

마당에 무슨 일이?

롤러스케이트장 만들기 대장정

나는 성과지향적인 사람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나 업무와 연관되면 급발진의 부스터를 달고 미친 듯이 몰입하는 스타일이다. 한 번 일을 시작하면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잊고 일에 몰입하기 일쑤다. 번 아웃에 빠진지도 모른 채 일만 하다가 몸이 먼저 알아채 디스크, 근종, 대상포진 등의 질병과 동반 퇴사하는 일을 반복했다. 

지금은 전원주택에 살며 직장에 나가지 않지만, 그 탓일까? 집 안에서 수시로 급발진 하는 나로 인해 내 남편은 팔자에도 없는 인테리어업자, 조경업자가 되어 단기성과를 내야하는 ‘홍반장’이 되어야만 한다.           



딸아이가 지나가듯이 던진 한마디로 시작된 일이다.

“엄마,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싶은데, 코로나 시국이라고 안 데리고 나갈 거지?”

음…….우리 딸이 롤러스케이트가 타고 싶구나. 전원주택단지라고 해도 길에서 타는 건 위험한데 어디서 태워주지?

“오빠! 딸이 롤러스케이트가 타고 싶대. 잔디를 드러내고 마당에 롤러스케이트장을 만들어줘야겠어!”

“미친 거 아니냐? 마당에 무슨 롤러스케이트장을 만들어!”

남편은 경악했지만, 나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오빠, 봐봐. 우리는 개들 때문에 잔디에 약도 못 뿌리니까 저거 봐봐. 잔디밭이 아니라 잡초 밭이라고. 잔디 드러내고 저기 돌 깔고 시멘트로 메우면, 잔디 관리 안 해도 돼!”

잔디 관리를 안 해도 된다는 나의 말에 남편의 눈빛이 흔들렸다.

“저기 잔디가 없다고 생각해봐. 그럼 나머지는 나 혼자 관리할 수 있어. 오빠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거야!”

남편은 무엇에 홀린 듯이 내가 이끄는 대로 건축자재 판매점으로 가서 현무암 판석을 고르기 시작했다. 현무암 판석을 2 파레트 주문해 놓고, 시멘트 대리점에 갔다. 아무래도 아이가 넘어지지 않게 롤러스케이트를 타게 해주려면 표면이 매끄럽고 굳은 후 갈라짐이 덜한 제품이어야 할 것 같아, 무수축 몰탈도 30포대 주문했다.     



별 다른 어려움 없이, 주문한 물건들이 주차장 마당 쪽에 속속 도착하여 쌓여졌다. 

우리 집의 북쪽에는 주차장을 끼고 있는 작은 마당이 있고, 남쪽에는 북쪽의 주차장과 마당을 합친 것보다 넓은 크기의 안마당이 있다. 주차장에 던져진 자재들을 안마당까지 옮기는 것부터가 오롯이 우리 부부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문제는 더위였다. 한낮의 온도가 38도를 넘는 한여름에 갑자기 막노동이라니. 남편은 공사판에서도 이 더위에는 일을 안 한다며 쌓여있는 자재들을 뒤로 하고 집 안에 들어가 버렸다. 그 날의 더위는 그런 남편을 탓할 수 없을 정도로 살인적이었다. 

내가 마당에서 머뭇거리고 있자, 남편은 해가 떨어지면 다시 나와 보자며 나를 달랬다.     

집으로 들어간 남편은 바로 낮잠 시전에 들어갔지만, 나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그래. 이해한다. 그럼 너는 쉬고 있어라. 나 혼자 슬슬 하고 있을 테니.’


현무암 판석은 가볍지 않았다. 얼마 전 방영된 ‘해치지 않아’라는 프로그램에서도 장정들이 혼자서 석판 한 개를 들지 못하는 게 방송되었다. 낮잠 자는 남편이 깨서 일을 못하게 할까 봐, 난 그 무거운 판석을 큰소리도 못 내고 몰래 나르기 시작했다.      

반 파레트 정도 날랐을까? 자다 일어난 남편이 상황을 보러 나왔다가 온 몸이 땀에 젖어 판석을 나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자기 마누라가 말린다고 말려질 사람이 아니란 것을 새삼 다시 깨달은 듯, 체념한 얼굴로 아무 말 없이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나와서는 잔디를 걷어내기 시작했다.      


잔디를 걷어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롤러스케이트를 타다가 돌이 깨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5cm 두께의 판석을 구매했기에 최소 5cm 이상의 땅을 파야했다. 3년이 넘게 뿌리를 내린 잔디들은 지들끼리 어찌나 결속력 강하게 뿌리박은 채 흙을 머금고 있는지, 삽질로 그 뿌리들을 잘라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한 면을 30cm 정도로 파낸 사각형의 잔디는 판석만큼이나 무겁기까지 했다.

스핀을 돌고 싶어 하는 딸아이를 위해 한쪽 공간은 좀 더 널찍하게 파내야 하니, 걷어낸 잔디를 쌓아둘 공간도 부족했다. 쌓을 수 있는 공간이란 공간은 모두 걷어낸 잔디로 채워졌다.     



이런 잔디 무덤이 3개나 만들어졌다.

 


대충 잔디를 걷어 내고, 잔디를 걷어낸 땅에 판석을 깔기 위해서 평탄화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일반 가정집에 장비가 갖춰져 있을 리 만무하고, 남편은 각목을 적당하게 잘라 땅바닥에 비벼대며 평탄화 작업을 했다. 

평생을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하던 우리가 이런 막노동을 하게 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그러나 이미 급발진 부스터를 장착한 나는 시작한 일을 끝내야한다는 목적 말고는 눈에 뵈는 게 없었다. 남편은 쉬지 않고 잔디와 판석을 날라대는 마누라 탓에 눈치가 보여 자기도 쉬지 못한 채, 장비도 없이 계속해서 땅을 파고 갈고 파고 가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남편이 각목 나부랭이로 평탄화 작업을 하는 동안, 나는 판석 놓을 곳을 살폈다. 나름 비정형의 디자인적 요소를 가미하고 싶어 하는 남편을 위해 나는 판석을 적절히 꽃모양으로 배열했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우리만의 디테일한 작업을 추가하면서 계속해서 쉬지 않고 일했다.     



아무도 모르는 우리만의 디테일. 꽃모양으로 판석 배열하기.



이제 일은 막바지로 진행되고 있었지만, 제일 고난의 작업이 남아 있었다. 시멘트로 틈새 메우기! 시멘트로 틈새를 메우기 위해서는 시멘트를 물에 반죽해서 적절한 농도를 만들어 판석과 판석 틈새에 부어야하는데, 이게 정말 엄청 고된 작업이었다. 이 작업은 시멘트 반죽기도 없이 전적으로 남편 혼자 해야 했고, 나는 남편 입에 노동주를 부어주며 이제 다 왔으니 힘내라고 응원해 줄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온몸에 시멘트 가루를 뒤집어 쓴 채, 본인이 반죽기가 되어 열심히 개고 또 개었다. 


우리의 작업을 지켜보던 동네 주민들은 처음엔 이 여름에 웬일이냐며 그러다 죽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하더니, 이제는 한마음이 되어 우리를 응원하기에 이르렀다.     

마침내, 마지막 시멘트를 붓고, 굳기를 기다렸다가 물청소를 했다.


시멘트가 굳고 물청소 한 직후의 모습


남편은 악덕 업주(=나)를 만나, 용역업체를 불러도 3명 이상의 인부가 일주일은 걸릴 일을 우리 부부 둘이서 4일 만에 하게 되었다고 엄살을 해대면서도, 이렇게 빨리 끝내 놓고 보니 뿌듯하다고 했다. 우리가 생각해도 정말 경이로운 작업 속도였다.     


1일차. 판석과 시멘트 구매 & 계획한 공간의 절반 잔디 파내기

2일차. 잔디 파내고 편평화 작업하기 & 판석 깔기

3일차. 판석 깔기 & 시멘트로 틈새 메우기

4일차. 시멘트로 틈새 메우기     


매일 새벽 6시부터 작업을 시작해서 너무 더운 12시~4시에 잠깐 쉬었다가, 마당에 오징어 불을 밝혀 놓고 밤 11시까지 이어서 일한 덕분에, 우리 부부는 4일 만에 작업을 모두 끝낼 수 있었다. 사실 4일차 오전에 일이 끝나, 오후에는 축배를 들며 우리의 작업을 감상했다. 


비록 우리의 딸아이가 이 더위에 무슨 롤러스케이트냐며 마당에 한 번 나가보지 않아 우리 부부를 서운하게 했지만, 우리 부부는 이제 잡초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기로 했다. 지금도 딸아이가 이용하지 않는 마당의 롤러스케이트장은 우리만의 산책로가 되어 또 다른 즐거움을 주고 있다.      


비록 딸아이가 롤러스케이트는 타지 않지만, 새로운 산책로가 생긴 마당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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