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대노 Mar 23. 2022

시브로의 목공 일기 시작합니다.

마눌님께서 시브로의 업적을 치하하다.

시브로가 마당 한쪽에 작은 목공작업장을 만들었다.

(시브로는 언니 같은 남편을 이르는 애칭으로, 시골에 사는 오빠도 아니고, 남편을 욕하기 위해 부르는 말도 아닙니다^^)


전원주택에 사는 남자들이라면 다들 목공에 대한 꿈을 꾸는 것인지, 이 동네 아저씨들 모두 웬만한 업자들만큼의 공구를 보유하고 있어 주말이면 이 집 저 집에서 무언가를 만드느라 자르고 박는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시브로도 마찬가지.

처음엔 마당에 화단이나 텃밭을 꾸미고 싶어서 시작한 목공이, 담장을 만들고, 데크의 테이블이나 쓰레기통으로 슬슬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집안 구석구석 시브로의 손이 닿는 곳이 늘어날수록 집에 대한 애정도 더해졌다.


처음 이사 온 해, 잔디만 깔려있던 마당
시브로가 만든 텃밭(왼쪽)과 화단
원래 있던 담벼락을 뜯어 옮겨 북쪽 마당과 주차장을 분리하고, 한땀 한땀 자르고 붙여 만든 담장, 집안 구석구석 시브로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어릴 때, 누구나 그런 로망 하나쯤은 있지 않나? 커다란 나무 위 작은 집. 그곳에서 책도 읽고 낮잠도 자고 하루 종일 뒹굴거리고 싶다는 로망.

마당의 여백을 볼 수 없는 맥시멀리스트 마누라를 둔 시브로에게 커다란 나무 위 작은집을 지어 줄 수 없다면 원두막이라도 지어달라고 떼를 써서 결국엔 마당 한쪽에 자리잡은 원두막.

태양광을 설치하면서 처음 만들었던 원두막을 다 뜯어내고 다시 만들기까지, 마누라의 로망을 실현시키기 위한 시브로의 노력은 멈출래야 멈출수가 없었다.

동네에서 가장 넓었던 우리의 남쪽 마당은 투머치를 넘어서서 더 이상 뭔가를 심을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딸기를 심겠다는 마눌님의 한 마디에 원두막에 공중부양 화단까지 만들었다.



처음 지은 원두막 (왼쪽 위), 태양광 설치한 후 재건축한 원두막과 공중부양 딸기밭 (오른쪽 위), 원두막에서 바라보는 마당 (아래)


일머리가 좋은 시브로가 뚝딱뚝딱 제법 잘 만들어내길래, 실내 인테리어를 조금 바꿔보고 싶은 생각으로 휴양지에 온 것 같이 트윈베드의 방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침대를 만들고, 벽체를 만들고, 벽체 사이에 조명까지 제법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오올~ 제법이군!

이 참에 북쪽으로 나 있어 어둡고 답답했던 현관 인테리어도 바꿔달라고 부탁했다.

방과 통일성을 맞춰 같은 자재를 사용하여 커다란 거울만 있던 벽면 한쪽에 뚝딱뚝딱 작업을 시작했다.

시브로는 본인 스스로 배움이 부족하여 못 자국이 나 있다거나, 빼뚤빼뚤하다면서 만족스러워하지 못하더니, 목공소에 가서 공구 쓰는 법부터 배워봐야겠다고 했다.



시브로의 실내 인테리어, 처음 하는것 치곤 제법이다^^



만들다 보니 욕심이 생긴 건지, 아니면 원래 꿈이 목수였든지.

시브로는 목공 작업을 하면서 은퇴 후 목공 장인이 되고 싶다는 말을 가끔 하기 시작하더니, 목공소에 수업을 들으러 가기 시작했다.

"남편아! 너는 목공은 모르겠지만, 딸이 있으니 장인이 될 가능성은 나보다 높은 거 아니었더냐! 주말에 목공소에서 놀면 집안일은 누가 하니!"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시브로가 내게 해왔던 것처럼 나도 시브로의 꿈을 응원해 주었다.

다행히(?) 다니던 목공소에 적당한 커리큘럼이 없었던지, 선생님이 시브로를 가르치려는 의지가 없었던지 등등의 이유로 몇 달 만에 스스로 그만두고 혼자 공부하겠다고 하더라. 대신 학원비로 공구를 사들이겠다나 뭐라나. 자습은 집안일하면서도 할 수 있는 거지? 흐흐흐흐흐흐흐



목공소에서 만든 첫작품 도마, 두번째 와인 거치대. 와인거치대 디자인을 탐탁치 않아했더니 바로 책장으로 변경해주었다.



3D 프린팅을 한다며 책을 사서 공부하더니, 마루의 마당 집 공간에 목공 작업장을 만들고 싶다는 탐욕을 드러냈다.

골든 레트리버인 마루를 마당에서 실컷 뛰어놀면서 살게 해주고 싶은 생각에 거실 딸린 투룸으로 지어준 큰 집이 겁 많은 마루를 집 안으로 들이면서 할 일 없이 놀고 있던 터라, 그 공간에 작업장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네 맘대로 하세요!



거실 달린 투룸의 마루 집, 위에 장작을 쌓아놓을 수 있어서 좋았는데......
마루집을 허물고 새로 2층으로 지은 장작들의 공간, 그리고 거실 한켠에 놓인 아이들 집


마루 집이 있던 곳을 허물고 맞은편의 철제 난간을 떼어내고, 시브로의 목공 작업 편의성을 높여 줄 작업대가 설치되었다. 다리 짧은 루루(포메라니안)를 위해 낮은 계단도 같이 설치하였다.

"목공을 도대체 얼마나 열심히 하려고 이렇게까지 하는 거니!"라고 외치고 싶지만, 나는 시브로의 꿈을 응원하고 또 응원한다.

여름엔 해를 피해 가장 시원한 장소를 찾아다니는 재미도 쏠쏠한데.. 작업장으로 쓰지 않을 때는 목공 테이블을 놓은 자리에 북유럽풍의 테이블보를 깔고 커피도 마시고 낮잠도 잘 수 있겠다 싶어 마음에 든다!

작업장에 작업대까지 준비되었으니, 또 새로운 공구들이 입양되고 있다. 이 아이를 시작으로 또 얼마나 다양한 아이들이 들어올지... 두근거리네.

근데 이건 뭐냐? 복사기냐? 데크 개털 청소도 쉽게 할 수 있어서 다용도로 쓸 수 있는 집진기라나 뭐래나.



시브로의 소박한 목공 작업장, 집진기를 시작으로 새로운 가족들이 많이 생길 예정이다.



연관 글: 마당에 무슨 일이? (마당에 롤러스케이트장 만들기)

https://brunch.co.kr/@jinykoya/12


이전 14화 관장님의 말투에 홀려 검도관에 등록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