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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대노 Mar 26. 2022

고장 난 의자 수리해드립니다.

Recycle

얼마 전 지인이 다리만 남은 의자를 보여주며 수리할 수 있는지를 물어왔다.

엉덩이를 받치는 넓적 부분은 어딜 가고 다리만 남아있는지 모를 일이었지만, 하얀색 철제 다리가  튼튼하게 생겨서 그냥 버리기엔 아까웠다.

예쁘게 인테리어를 할 수 있는 의자로 쓸 수야 없겠지만, 적당한 자재만 있으면 방석을 올려 의자로 쓰거나 테이블 보를 얹어 장식품을 올려두거나 아니면 화분이라도 얹어놓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수리해주기로 하고 다리를 받아왔다.


엉덩이와 다리가 분리된 의자, 다리가 무척 튼튼해 보여 그냥 버리기엔 아까워 보였다.




시브로가(남편 애칭) 목공 작업장을 차렸다고 해도, 그동안 주로 마당에 쓰기 위한 방부목을 대부분 사용해온 터라 실내에 사용할 만한 자재는 마땅치 않았다. 쪼가리 자재로 만들려 해도 엉덩이를 받칠 정도의 사이즈는 대부분 못 자국이 남아있거나 해서 남의 의자에 쓰기에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쩔 없이 통판으로 만드는 것은 포기하고 조각을 붙여 수리해보기로 했다.


우리 집 의자가 아니었다면, 엉덩이와 다리가 분리된 의자를 두고 저렇게 고민했을까 싶었다.

집 밖에 나가길 싫어하는 나는 인터넷 구매를 많이 하는 편이다. 다른 곳보다 가격이 싸서, 행사 상품을 끼워줘서, 특이해 보여서, 하나쯤 가지고 있어도 좋겠다 싶어서 등등 내 눈에 띄는 물건은 내 손 안의 작은 세상 (핸드폰)을 통해 눈에 보이는 즉시 바로 결제를 했고, 하루에 10개 가까이 택배가 배송되는 날도 있었다.

내가 사놓고도 얼마에 뭘 샀는지 모르기 일쑤였고, 택배를 받고 언박싱을 하지 않은 채 방치하기도 했고,  배송이 늦어지는 경우에는 내가 산 것도 잊고 선물 받은 것처럼 좋아하는 날도 있었다.

싸게 샀다는 생각에 또는 싼 물건이라는 생각에, 마음에 들지 않아도 반품하는 적도 없었다. 상표도 안 떼고 방치하다가 몇 년 뒤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거나, 관심을 보이는 지인이 있으면 그냥 나눠주는 물건이 수두룩했다.

그러니 저 의자가 우리 집 의자였다면 엉덩이와 다리가 떨어진 순간에 집 밖으로 내쫓겼을 것이 분명했다.


많이 사들여 봐서 인지, 그렇게 사들이는 물건을 내가 잘 쓰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고, 사실은 내 삶에 필요한 물건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아버린 지금은 소비 욕구가 별로 없다.

전원주택에 살게 되면서 남과 비교하지 않는 삶이 가능해져서 남들 쓰는 거 다 써봐야 된다는 심리가 사라졌기 때문일 수도, 내가 의미 없이 사서 버리는 물건들이 지구 환경에 얼마나 좋은 행위인지에 아주 조금 관심을 가지면서 가능한 쓰레기를 만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 그나마 다행이다.

쓸데없는 물건을 사들이지 않는 습관만큼은 오래도록 지키고 싶다.

내 마음에 쏙 드는 물건을 골라, 쓸수록 애정을 주고 길들이면서, 손때를 묻혀 오래오래 사용하고 싶다.




저 철제 다리는 주인을 그대로 닮았다.

유행과 상관없이 본인 취향이 뚜렷하고 생각이 정리되어 있는 사람, 마이웨이이지만 일 잘하고 야무진 사람, 깔끔하고 단정한 사람,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지만 배려 깊은 사람, 담백하게 말하지만 따뜻한 사람, 물건 오래 쓰는 사람, 식탐은 없지만 음식에 진심이 사람, 무던함에 여유가 배어나는 사람......

내가 생각하는 지인은 한 마디로 담아낼 수 있는 표현이 없을 만큼 하얗고 단단하고 아름다운 사람이다.

철제 다리처럼, 단단함 만큼은 지인을 닮고 싶다.


우리 집 물건 만들 때  사포질을 저리 해본 적이 있던가! 

자재가 마땅치 않아, 쪼가리로 만들어서 좀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튼튼하니 뭐라도 올려놓을 수는 있겠다!

지인이 손때를 묻혀 오래오래 사용하면 좋겠다.

잠시만요! 바니쉬 칠 해놓을 테니 마르면 가져가세요!



다리만 남은 의자가 약간의 수고로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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