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이다.
“우리 이만하면 잘 살고 있는 거지?”
남편은 가끔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해온다.
“그럼! 난 당장 죽어도 괜찮을 만큼 행복해!”
남편은 대부분의 일에 대하여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때로는 그 유연함이 성격 급한 마눌님의 속을 뒤집기도 하지만, 또 그 유연함 덕분에 급발진 부스터와 희로애락의 감정 증폭기를 장착한 마눌님과 별 탈 없이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느긋느긋 한 남편이 유일하게(?) 귀찮아하지 않는 일은 난로에 불을 피우는 것, 그리고 뒤따라 일어나는 연속 반응의 일들이다. 가령, 밤이나 고구마를 굽는 등의….
퇴근 후 돌아와 불을 피우고, 뭔가를 굽기엔 시간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데, 남편은 난로 앞에 앉아서 보내는 시간을 정말 사랑하는 것 같다.
전원생활을 하기 전까지는 꿈꾸지도 못했을 시간들…….
난 성격이 진짜 급하다.
무슨 일이든 빨리, 제대로 해야 한다는 조급증과 강박증을 가지고 있다.
회사를 이직할 때마다 번 아웃이 이유가 될 정도로 굉장하게 몰입하고 그만큼 쉽게 방전된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고 마치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 같다고 한다.
성격만 급한가. 예민하고 까칠하기로도 세 손가락 밖으로 밀려나면 서운해할 정도이니, 내 남편을 아는 모두가 남편에게서 사리가 나올 거라고 얘기하는 건 농담으로 치부할 수만도 없는 일이다.
그나마 여유와 느긋함이 장점인 남편을 만나고 나서 많이 나아진 거라고, 지금은 좋아진 상태인 거라고 항변해봐도 아무도 안 믿지만 말이다.
항상 땅을 밟고 살고 싶다는, 큰 개를 키우며 전원에서 살고 싶다는 내 소원은 작은 수술과 함께 마지막 퇴사를 하고 나서야 이루어졌다.
전원생활을 한다고 성격이 갑자기 온순해지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갑자기 여유로워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니, 처음부터 만족스럽고 행복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나만 도태되는 건 아닐까 전전긍긍하는 나를 내려놓는 것도 어려웠고, 약대에서 10년씩이나 공부시켜 박사씩이나 된 딸이 집에서 놀고먹겠다는 걸 부모님께 이해시키는 건 더 어려웠다.
그러다가 봄에 싹이 나고 꽃이 피는 걸 기다리게 된 것이, 가을에 마당에서 딴 못난이 열매들로 과실주를 담그게 된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남의 눈치를 유독 많이 보는 내가, 다른 사람들이 아닌 내 마음에 집중하게 된 건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과의 만남이 뜸해진 시간들이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불필요한 연락처를 삭제하고, SNS를 끊으면서 오롯이 나와 내 가족의 시간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그러자 보이기 시작했다.
아침에 내려 마시는 커피 향이 얼마나 쌉싸름 달콤한지, 비 오는 날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얼마나 경쾌한지, 테라스에서 보는 석양이 얼마나 다채로운 색을 가졌는지, 불멍이 사람을 얼마나 나른하게 하는지 …….
내 강아지들이 나를 얼마나 기다리는지, 내 아이가 얼마나 잘 자라고 있는지, 내 남편이 얼마나 따뜻하고 배려 깊은 사람인지…….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것들에 대해 알아차릴수록 더 많은 기분 좋음을 만들어지고,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었다. 점점 더 감사할 일들이 많아졌다.
사람들이 복작거리는 도심에서 살았다면, 경쟁에 치여 사느라 주변을 돌아볼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 삶이 가능했을까?
이런 순간순간의 기쁨을 알아차렸을까? 이렇게 사소한 만족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을까? 당장 죽어도 좋을 만큼 행복하다고 느꼈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분명히 남들보다 더 가지기 위해, 남들보다 먼저 도착하기 위해 나 자신과 내 가족을 내몰았을 것이고, 지금 다시 경쟁과 비교의 삶을 살게 된다면 나는 또다시 흔들릴 것이다.
그렇지만 소소함 안에 행복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는 조금 더 나를 단단하게 세우고 덜 흔들릴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에게 이런 시간들을 선물해 주어, 작은 것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내 가족에게 오늘도 고마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