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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딱한 변호사 Jun 10. 2020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

형법 제250조 제2항 존속살해

자기 책임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자기가 결정하지 않은 것이나 결정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는 책임을 지지 않고, 책임부담의 범위도 스스로 결정한 결과 내지 그와 상관관계가 있는 부분에 국한됨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책임의 한정원리로 기능한다(헌법재판소 2010. 6. 24.자 2007헌바1001 결정). 이러한 원칙은 법치주의에 당연히 내재하는 원리로서, 우리가 체결하지 않은 계약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근거가 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선택을 하지만, 선택하지 못하는 것들도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부모이다. 그러나 우리 법은 우리가 부모를 결정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부모에 대한 일정한 책임을 부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민법  제974조 제1호는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 간에는 동거 여부를 불문하고 부양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서, 부모와 자녀가 따로 살든, 부모가 자녀를 폭행했든 자녀에게 부모를 부양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그렇다면 형법은 어떨까. 형법은 민법과 달리 형사처벌이 예정되어 있는 관계로, 위와 같은 자기 책임의 원칙이 더욱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할 분야이다. 헌법재판소도 "만약 법질서가 부정적으로 평가한 결과가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결과의 발생이 어느 누구의 잘못에 의한 것도 아니라면,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하였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에게 형벌을 가할 수는 없다. 물론 결과의 제거와 원상회복을 위해 그 결과 발생에 아무런 잘못이 없는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민사적 또는 행정적으로 불이익을 가하는 것이 공평의 관념에 비추어 볼 때 허용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법질서가 부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행위를 하지 않은 자에 대하여 형벌을 부과할 수는 없다"고 결정한 것처럼(헌법재판소 2007. 11. 29. 2005헌가10 결정) 민사적, 행정적으로는 자기 책임의 원칙이 어느 정도 제한될 수 있으나, 형사적으로는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형법 제250조 제2항은 아래와 같이, 존속살인을 가중처벌함으로써 자신이 결정하지 않은 부분에 대하여 더 무거운 책임을 부과하고 있다.  (참고로 존속이란 자기의 부모 또는 부모와 동등 이상의 항렬에 속하는 혈족을 의미하는 것으로, 직계존속은 자기의 부모, 조부모처럼 자신을 기준으로 직선으로 올라가는 혈통을 의미한다. 비속은 그 반대로, 자기의 자녀 또는 자녀 이하의 항렬에 속하는 혈족을 의미하는 것이다.)


제250조(살인, 존속살해) ①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②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개정 1995. 12. 29.>    


한편 위 규정은 1995. 12. 29. 개정된 것인데, 개정되기 전 규정은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살해한 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즉, 개정되기 전 규정에 의하면 직계존속이 아닌 사람을 살해한 자는 유기징역형을 받을 수 있었으나, 직계존속을 살해한 자는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무조건 사형 또는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2011. 1. 24. 갑은 아버지인 을이 자주 술에 취하여 어머니를 폭행해온 것에 불만을 가져오던 중, 그 날도 어김없이 어머니를 폭행하던 을과 몸싸움을 하던 중 을을 살해했다. 그리고 존속살해죄(형법 제250조 제2항)로 기소되어 항소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존속살해죄가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헌법소원을 하였다. 


헌법재판소 다수의견은, 위 조항이 평등원칙에 위배되는지 여부에 대해서만 판단하면서, "비속의 직계존속에 대한 존경과 사랑은 봉건적 가족제도의 유산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윤리의 본질적 구성부분을 이루고 있는 가치질서이고, 특히 유교적 사상을 기반으로 전통적 문화를 계승·발전시켜 온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욱 그러한 것이 현실인 이상, (중략) 그 차별적 취급에는 합리적 근거가 있으므로 헌법 제11조 제1항의 평등원칙에 반한다고 할 수 없다"고 하여 위 조항이 합헌이라고 보았다(헌법재판소 2013. 7. 25.자 2011헌바267 결정).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존속살인 중 그 패륜성이 명백한 범죄가 몇이나 될까. 헌법재판소가 판시한 것처럼, 마땅히 직계존속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가져야 함에도 이를 저버려서 가해자를 비난할 수 있는 경우가 몇이나 될까. 


관련 연구에 따르면, 존속살인을 저지른 사람 중 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한 비율은 44.4%에 해당한다(한국형사정책연구원, 살인범죄의 실태와 유형별 특성, 2008). 또한, 존속살해의 범행동기 중 그 패륜성이 명백한 경우는 7.1%에 불과하고, 오히려 가해자의 정신이상에 의한 경우가 36.9%, 피해자의 가해자 또는 다른 가족구성원에 대한 학대에 의한 경우가 26.2%를 차지한다(헌법재판소 2013. 7. 25.자2011헌바267결정 중 소수의견 부분). 결국, 일반적인 살해범죄에 비하여 불법성이나 책임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는 경우는 전체 존속살해 중 7.1%에 불과하고, 26.2%는 그 동기에 비추어볼 때 오히려 정상 참작되어야 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범죄 동기를 모두 차치하고서라도, 존속살해 가중처벌 위헌성의 가장 강력한 근거는 우리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는 점 아닐까. 부모는 자식을 낳을지, 낳지 않을지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기 책임의 원칙에 의해 자식에 대해 마땅히 책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자식을 살해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가중처벌을 하는 규정은 전혀 없다. 


전세계에서 거의 유일무이하게 존속살해에 대해서만 가중처벌을 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에서 존속살해가 발생하는 비율이 적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전체 살인사건에서 존속살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미국이 2%, 영국이 1%인 반면, 한국은 약 5% 전후다(정성국 외, 한국의 존속살해와 자식살해 분석, 2014).


(참고로, 우리나라 존속살해 가중처벌의 모태가 된 일본의 존속살해 조항이 1995년 삭제되었을만큼 존속살해 가중처벌 조항을 두고 있는 국가는 극히 드물고, 프랑스,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대만 등 존속살해에 관한 가중처벌을 두고 있는 국가들도 대체로 존속뿐만 아니라 비속 또는 배우자를 살해한 경우 이를 가중처벌하는 규정을 함께 두고 있다). 





불과 며칠 전, 9살 어린이가 부모에 의해 7시간 넘게 가방에 갇혀 있다가 사망하였다. 지난 3월에는 생후 7개월 아이가 어머니에 의해 바닥에 던져지는 등 학대를 당하다 사망하였다. 이때 부모들에게 적용되는 조항은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아동학대범죄에 대하여 형법보다 우선 적용되는 법인데, 제4조에서 "아동학대범죄를 범한 사람이 아동을 사망에 이르게 한 때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형법 제250조 제1항의 일반 살인죄와 비교할 때 오히려 "사형"이 빠진 것인데, 아동학대로 인한 살인에 대해서는 일반 살인죄보다 가벼운 형벌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택하지 않은 존속에 대한 살인에만 가중처벌 조항을 두고 있는 불균형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은, 죽어서까지도 상속이라는 문제로 따라온다. 얼마 전, 가수 구하라 씨에 대한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은 친모가 구하라 씨의 재산에 대한 상속권을 주장하고 나서 논란이 되었다. 이후 '피상속인의 직계존속으로서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한 사람'을 상속인 결격사유로 규정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일명 구하라법이 발의된 상태이다.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은 제한적으로만 인정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살인범죄의 실태와 유형별 특성, 2008

정성국 외, 한국의 존속살해와 자식살해 분석,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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