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2024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롤로 Aug 23. 2024

인사

무거운 메시지는 한없이 가볍게 날아온다.


금요일 퇴근 시간이었다. 자동차의 핸들을 잡은 손에 '드르르' 진동이 울리더니 애플워치 화면 위로 짧게 메시지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부...고...?' 누군가의 부고인듯한 메시지에 '아, 또 직장 동료의 할아버지나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나 보다.'하고 생각했다. 잠시 뒤 워치의 작은 화면 속에 '이ㅇㅇ'라는 너의 이름이 스쳐 지나갔다. 잘못 본 것인가 하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도 모르게 자동차의 핸들을 오른쪽으로 휙 꺾고 비상등을 켠 뒤 차를 갓길에 세웠다.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 뒤 메시지를 확인했다.


"이ㅇㅇ님의 부고입니다." 


아니길 바랐던 너의 이름이 보였다. 갑자기 목이 심하게 말라왔다. 핸드폰을 조수석에 던져놓고 자동차에 늘 가지고 다니던 생수의 뚜껑을 열어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갈증이 잦아들자 함께 정신이 돌아왔다. 날아온 부고를 보고 왜라거나 어째서라고 생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부고를 받는 순간 그 물음에 답해줄 당사자는 이미 이 세상에 없으니 답을 들을 수도 물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뒤따라올 소식들을 통해 '어떻게'에 대해 이야기하며 '왜'를 추측해 볼 뿐이다. 조수석에 던져진 휴대폰 화면에 연신 메시지들이 뜨기 시작했다.


"ㅇㅇ이 죽었대"

"방금 봤어. 무슨 일이냐"

"나도 자세한 건 몰라. 장례식장 가봐야 알듯"


그때 대학교 시절과 회장을 했던 친구가 말했다. 

"교수님 말로는 취업하고부터 힘들어했다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 시험에 합격하고 취업을 한 게 10년이 넘었는데 대체 이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왜라는 질문에 어떻게라는 답에 교통사고나 화재나 질병을 예상했는데 너는 어째서 그것이 아니라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일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아 나의 질문은 계속해서 어두운 곳으로 침잠했다. 다시 물병을 집다가 내려놓고 핸드폰으로 손을 옮긴다. 한없이 가벼운 대화 속에 나도 하나를 덧대며 장례식장 방문 일정을 조율한다. 남은 자들이 할 일은 그런 것들 뿐이다.


남아 있는 물을 다 마신 뒤 차의 비상등을 켜고 다시 출발한다. 함께 했던 시간들에 대한 소회 같은 것들을 머릿속에서 넘기며 이미 이 세상에 없는 너를 보낼 준비를 한다. 장례식이라는 행위와 형식은 죽음이라는 무형의 결과물에 따르는 슬픔과 아쉬움 등의 복잡한 감정들을 한데 모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너의 장례식에 기대 이 허무한 감정과 슬픔, 지금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감정들이 해소되기를 바라는 나의 이기심에 환멸이 느껴졌다.


집에 도착해 검은색 정장과 양말을 꺼내놓고 문득 너의 sns 프로필 사진을 열었다. 부인과 아이와 함께 활짝 웃고 있는 너의 표정이 행복해 보였다. 내가 전해 들은 그 가벼운 메시지와 믿지 못할 말보다 너의 그 행복한 표정을 믿고 싶다. 나는 내일 이 행복한 세 사람 중 나머지 두 사람을 만나리라. 둘은 세상에서 제일 슬픈 표정을 하고 나를 맞을 테고, 이제 없는 하나는 우리에게 감정의 진위에 대한 의문을 남긴 채 영영 돌아오지 않을 곳에 가 있을 테지. 


이제 영영 만날 수 없는 너에게 사진 속 행복한 미소가 거짓이 아니기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맥베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