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롤로 Nov 28. 2023

붕어빵 이야기

사라져가는 것들

"제발 가지 말아요. 지금 이 날씨에 어딜 간다고 그래요."

"말리지 마세요. 지금 아니면 또 1년을 넘게 기다려야 할지도 몰라요."

"그래도요. 밖을 봐요. 눈이 이렇게나 많이 내리는데 앞도 잘 보이지도 않을 거고 감기에 걸릴지도 몰라요."

"감기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에요. 이 계절과 이 날씨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는 거니까요."

"에휴. 더 이상 말리지는 않을게요. 그래도 갈 거라면 따뜻하게 입고 가도록 해요."

"날 이해해 줘서 고마워요."


비장하게 왼손 오른손 차례차례 장갑을 낀다. 군대를 전역하고 난 후 한 번도 끼지 않았던 귀도리와 목토시까지 장착한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아내와 함께 신기 위해 사두었던 두꺼운 털로 만든 양말까지 신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비장하게 만든 것일까. 그는 왜 눈이 몰아치고 기온이 영하 10도까지 떨어진 지금, 심지어 뉴스에서 연신 폭설과 바람에 관해 경고하며 외출을 자제해 달라고 외치는 순간에 밖에 나가기 위해 분주한 것일까. 나갈 채비에 열중하고 있는 그를 아내는 팔짱을 낀 채 지켜보고 있다. 더 이상 말리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의 행보가 여간 내키지 않는다.


"아니, 붕어빵 먹겠다고 이 날씨에 그렇게까지 할 일이에요?"


롱패딩과 두꺼운 기모바지까지 다 챙겨 입은 남자가 아내의 양 어깨를 잡고 비장한 말투로 이야기한다.

"조금만 기다려요. 내가 맛있는 붕어빵 한 봉지 사가지고 곧 돌아올 테니까."


그의 기세에 눌린 아내가 들릴 듯 말 듯 나지막이 말했다.

"나는 붕어빵 별로 안 좋..."

들릴 듯 말듯한 아내의 말을 뒤로한 채 그는 현관문을 박차고 나섰다.


붕세권이라고 하나, 그의 집은 작년까지는 가까운 곳에서 붕어빵을 쉽게 구할 수 있는 붕세권 아파트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5분 정도 걸어가면 3개 천 원이라 적힌 붕어빵 리어카가 있었다. 작은 리어카 위에 가스불로 노릇노릇 붕어를 굽는 기계가 올려져 있었다. 차가운 겨울바람 속 붕어빵 기계는 따뜻한 온기를 품고 연신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하얀 김을 내뿜으며 기계에서 주기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붕어빵을 보고 있으면 이내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그런 풍경이었다.


작년 1월 말 어김없이 붕어빵을 사 먹기 위해 그곳에 들렀던 그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하고야 말았다.


"사장님 여기 천 원이요. 붕어빵 3개만 주세요."

"예에. 한 마리 서비스까지 해서 4개 드릴게요."

"네? 갑자기 서비스는 왜요?"

"제가 아무래도 장사를 올해까지만 해야 될 거 같네요. 그동안 많이 팔아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게 마지막 붕어빵이었다. 그는 계절마다 해야 할 것들, 먹어야 할 것들, 봐야 할 것들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봄에 벚꽃과 개나리를 봐야 하고 여름에는 계곡과 바다를 보고 수박 주스를 먹어야 했다. 가을에는 전어와 꽃게를 먹고 단풍을 즐겨야 하고, 겨울에는 하얀 눈을 보며 붕어빵을 먹어야 하는 그런 남자였다. 11월이 지나고 12월이 지나고 1월 중순에 접어들었지만 그는 아직까지 붕어빵을 만나지 못했다. "인터넷으로 주문해 볼까요"라고 말하는 아내의 말에 그건 아니라고, 어딘가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 접한 붕어빵 가게에서 먹거나 집 앞에서 파는 붕어빵 가게에 맨발로 슬리퍼를 신고 나가 사 먹어야 제맛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게 겨울의 맛이라고 했다. 아내의 표정은 "당최 이해할 수 없어"였지만 그는 그래야만 했다.


1월 중순이 되어서야 그는 타협하기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 붕어빵 파는 가게를 우연히 만나기가 쉽지 않았고 더군다나 집 앞 붕어빵 가게는 사라졌기에 그는 붕어빵을 파는 곳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맙소사. 지하철을 타고 다섯 정거장을 가야 명확하게 붕어빵을 파는 가게를 만날 수 있었다. 망설이던 그는 오늘에야 실행에 옮길 마음이 생긴 것이다.


'덜컹덜컹'


눈 때문에 연착되었던 지하철이 겨우 출발했다. 창밖으로 눈이 내리는 게 보였다. 옆으로 내리는 눈을 보자니 바람도 꽤 많이 불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사람으로 꽉 들어찬 객실은 축축하고 찝찝했다. 연신 쏟아져 나오는 히터 바람에 어깨와 머리에 내렸던 눈이 녹아내려 옆사람의 옷을 적셨고, 신발에 묻어 들어온 눈과 흙들이 지하철 바닥을 지저분하게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지하철에서 만난 겨울의 모습은 그를 지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왔다. 마침내 역에 내린 그는 3번 출구 앞에 있다는 붕어빵 가게를 찾아 나섰다. 출구 밖으로 나서자 강한 바람과 두툼한 눈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얼굴만 겨우 내놓은 그였지만 추운 기운이 순식간에 온몸을 감싸고 있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내리는 하얀 덩어리 속 저 멀리에 하얀 김이 하늘로 오르고 있는 빨간색 붕어빵 가게가 보였다. 3개 천 원. 예감이 좋다.


"사장님. 여기 2천 원이요. 붕어빵 두 봉지만 주세요."

"네에. 2천 원 받았습니다. 여기 두 봉지 받으세요."

"네. 감사합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붕어빵 하나를 봉지에서 살포시 건져 올렸다. 곧 붕어빵 위로 눈이 엉겨 붙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입 속으로 붕어빵을 털어 넣었다. 바삭한 붕어 껍질과 고소하고 달달한 팥 앙금이 입안에서 폭발하듯 터져 감격스럽고 경이로운 맛으로 되살아났다. 그의 눈에 '핑'하고 살짝 눈물이 도는 것도 같았다. 붕어빵 한 마리를 다 먹고 나서 잠시 내리는 눈을 바라보던 그는 이제야 자신의 겨울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녀 여행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