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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롤로 Jan 23. 2024

호접몽(胡蝶夢)

"꿈에 내가 굉장히 아팠어"

"왜 아팠는데? 병에 걸렸어? 아니면 사고 같은 게 났어?"

"사고는 아니었어. 아마 병에 걸린 거 같아. 병명은 잘 모르겠지만"


유독 잠이 오지 않는 날이 있다. 회사 생각이 휘몰아쳐 가슴이 두근거려 잠이 안 오거나, 어릴 적 엄마한테 했던 몹쓸 말들이 생각나 얼굴이 화끈거려 잠이 안 오거나, 면허를 딴지 얼마 안 된 시기에 이름 모를 동네에서 이름 모를 꽃이 핀 작은 화분을 차로 뭉개버리고 몰래 도망쳤던 기억이 떠올라 양심의 가책 때문에 잠이 안 오거나. 이렇게 이런저런 생각들 때문에 잠에 들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런 어지러운 생각들을 모두 물리치고 쉽지 않게 잠에 들고 나면 어김없이 꿈을 꾼다.


"얼마나, 어떻게 아팠는데?"

"그게, 온몸에 수포가 돋았어. 너무 징그럽더라고, 온몸이 화끈거리고 따끔거리고, 그리고 살에 옷이 스치기만 해도 너무 아파서 비명을 질러야 했어."

"그리고?"

"그리고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팠어."

"와, 진짜 무서운 꿈이네."

"맞아 정말 무서운 꿈이지."

"근데, 갑자기 왜 그런 꿈을 꾸었지?"


꿈은 현실의 반영 또는 내밀한 욕망의 발현이다. 그러한 꿈은 가끔 너무 선명하여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고도 한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니... 그것은 너무나 무서운 이야기 같다. 특히 나같이 어지럽고 무섭고 고통스러운 꿈을 많이 꾸는 사람에게 현실과의 경계가 모호한 꿈이라면, 꿈에서 느꼈던 고통과 아픔이 현실같이 느껴진다는 이야기이니 현실 같은 꿈을 꾸게 되면 '꿈과 현실에서 이중으로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스트레스? 아마 스트레스 때문이지 않을까?"

"네가 스트레스받을 일이 뭐가 있지? 힘든 일이 많았나?"

"글쎄, 생각해 보니 그렇게 스트레스받을만한 일이 있는 것 같지는 않네, 그럼 운동을 많이 해서 면역력이 좀 떨어졌나?"

"그게 무슨 소리야 운동을 하는데 어째서 면역력이 떨어지지?"

"요 근래 운동을 무리해서 했잖아. 잘 먹지도 않고."

"아. 그래 그런 거 같긴 하다."


그럼 또 생각해 본다. 내가 만약 행복하고 즐겁고 따뜻한 꿈을 자주 꾸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현실과 잘 구분이 되지 않는 꿈이라면 과연 그 꿈이 나에게 좋은 꿈일까. 아름다운 꿈을 꾼다. 꿈속에서 나는 멋진 자동차와 큰 집을 가진 사람이다. 물론 물질적인 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꿈속에서 나는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나의 노래를 듣고 감동한 나머지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꿈속에서 나는 나를 정말 사랑하고 아껴주며 나의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람을 만난다. 꿈속에서 나는 너무나 행복하고 충만하다. 한데 이토록 현실적이고 실재(實在) 같은 것이, 한낱 주먹 안 모래와 같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 꿈이라면 그것이 꿈이라는 걸 알고 난 후의 나는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현실적인 꿈이란 건 이렇듯 나쁜 꿈이어도 좋은 꿈이어도 그 나름의 문제가 있고야 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근데 운동을 그렇게 한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다른 이유는 없을까?"

"네 말도 맞는 것 같다. 내가 운동을 그렇게 한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맞아. 보통 병의 원인은 요 근래 바뀐 생활 습관에서 찾아보는 게 좋아."

"바뀐 생활 습관이라... 설마... 불면(不眠)? “

"맙소사 또야?"


꿈인지 현실인지 잘 모르겠을 때가 있다. 작은 햇살이 커튼 틈을 파고드는 것이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그 작은 눈부심에 내가 눈을 뜬 것인지 아니면 꿈이기 때문에 그 작은 햇살이 그토록 따스한 것인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또 어떨 때는 꿈속에서 느낀 행복과 슬픔에 먹먹해진 가슴의 두근 거림을 간직한 채 눈을 뜰 때도 있고, 현실의 고통과 행복과 슬픔과 기쁨 때문에 흘린 눈물 가득 머금고 꿈에서 눈을 뜰 때도 있다. 어느 것이든 꿈과 현실은 서로의 슬픔과 기쁨과 행복과 고통을 적절히 나눈다. 그것이 너무 과하면 '이것은 꿈이구나'하고 느낄 때가 있고 '이건 꿈이었으면'하고 생각할 때도 있다. 나는 어찌어찌 꿈과 현실을 구분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모르겠다.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이토록 고통스러워하는 내 모습이 꿈인지 현실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근데, 나랑 얘기하고 있는 너는 누구야?"

"나?"

"그래. 너 말이야 대체 누구야?"

"누군지 모르겠어? 뭐야 아직도 눈치 못 챘구나. 그럼 이렇게 말해주는 게 낫겠다. 네가 지금 이렇게 아픈 건 꿈이 아니야"

"뭐라고?"


어떤 현실은 꿈이길 간절히 바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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