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적(문제) vs 영웅(해결책)
열아홉 번째 이야기
몇 달 전에 마블에서 만든 영화 '어벤저스'를 본 적 있다.
영웅이 등장하는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데, 얼마인지 감도 잡을 수 없는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 마케팅으로 눈에 띄지 않는 곳이 없고, 귀에 들리지 않는 소리가 없으니, 왠지 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마지막 자존심은 지켜야 했기에 극장보다는 OTT 서비스를 선택했다.
누군가는 공공의 적(타노스)을 물리치는 슈퍼히어로들에게 열광을 할지 모르나, 난 개인적으로 우리가 사는 삶의 진짜 영웅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야기들이 좋다. 아이언맨이나 캡틴 아메리카가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그들은 왠지 우리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 거리감이 들어서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영화에서 적대자(공공의 적)를 등장시키면 보는 이들은 영웅의 편이 된다.
영웅의 편에 서서, 그들과 함께 싸우고, 감정을 이입한다. 히어로 영화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프레젠테이션에서도, 가끔 영웅이 필요하다. 바로 우리가 이루려고 하는 '목적', 그 목적이 영웅이 되는 것이다.
국내 화장품 원료업계에서 매출 2위 그룹에 있는 한 업체를 방문하여 프레젠테이션을 한적 있다. 업계 1위 업체에 대한 의식을 상당하게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프레젠테이션을 구상하는 회의에서 우리는 공공의 적(문제)을 내세우기로 했다. 우리가 그들에게 영웅(해결)이 되기 위해선, 공공의 적(문제)을 내세우는 건 당연한 논리이다. 문제는 공공의 적을 어떻게 내세울 것인가~이다. 너무 드러내 놓고 고객이 지금껏 해왔던 것들에 대해서 문제를 삼게 되면, 자칫 질책이나 비난으로 들릴 수 있다. 고객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하러 가서 고객을 비난하는, 그런 일을 할 순 없지 않은가..
우리는 그들이 잘못하고 있는 점들을 부각하는데, 업계 1위 업체를 이용하기로 했다. 1위 업체가 그동안 해온 방식에서, 지금은 하고 있지 않지만 과거에 했었던 지금의 고객사와 비슷한 문제들을 끄집어냈다. '그들도 1위를 하기 전에 고객사와의 같은 방식을 구현했었고, 그 부분에서 느낀 문제들을 보완하여 지금의 1위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라는 방식으로 내용을 전개했다. 덧붙여, 우리는 그런 분석을 통해, 1위로 발돋움하고 있는 고객사에게 약간의 프라이드를 심어주면서, 프레젠테이션 내내 고객사는 더 이상 2위 그룹이 아닌 것처럼 유도를 해 나갔다. 공공의 적(문제)을 내세우는 데 있어 비난이 아닌 당연한 수순으로 매듭이 지었던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지적을 좋아하지 않는다.
실제로 문제라고 인식이 되어도, 스스로 깨닫기 전까지는, 아니, 스스로 깨달은 후라 하더라도 지적을 좋아할리는 없다. 하물며 '을'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갑'의 문제를 끄집어내 방법을 바꾸라고 한다고 하면, 그 방법이 아무리 좋다 할지라도 충분히 거부감이 들 수 있다. 고객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꺼내려한다면, 그 문제는 고객사의 문제만이 아닌 공공의 문제로 이슈화 해야 한다. 그래서 문제에 대한 범위를 공공으로 만들어 보편화를 시킴으로써, 영웅의 출현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주는 것이다. 해결책을 가지고 있는 우리와 고객사는 이제 '타노스'를 물리칠 수 있는 단결력을 갖게 된 것이다.
"공공의 적을 제시하면 믿음을 드러낼 기회와 함께 같은 신도들끼리 단결할 명문이 생긴다.."
20년 가까이 프레젠테이션을 해 오면서 수많은 방법과 전략으로 접근을 하지만, 공공의 적(문제)을 내세우는 것은 늘 조심스럽다. 자칫 잘못하면 비난처럼 들리기도 하고, 또 문제라고 생각되지 않는 부분을 끄집어낸 것처럼 설득이 되지 않을 때도 있다. 때로는 가지고 온 제안이 해결책과 같은 임팩트를 주지 못하여, 영웅이 되려던 의도와 다르게 말만 번지르르한 사기꾼의 모습으로 그려질 수도 있다. 제일 걱정이 되는 건, 그 문제라고 얘기하는 시점에 함께 했던 수주업체에 대한 비난으로까지 이어져, 경쟁업체를 뒷담화나 하는 업체로 비치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될 때도 있다.
그 모든 리스크를 떠안지 않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가진 해결책에 대한 확신이다.
내가 고객사에게 제안하는 제품이나, 디자인, 서비스 등이 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는 확신. 그 확신이 바로 섰을 때만이 할 수 있는 전략일 것이다.
'타노스'를 물리치러 가는데, 얇은 갑옷과 무딘 무기를 가지고 있다면, 애초부터 '타노스'라는 인물을 만들지 말고, 아이언맨 흉내도 내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