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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요 Apr 02. 2024

나의 힐링 스폿, 한의원

따뜻하고 말랑한

 지난 2월, 이 동네에 마지막 폭설이 내렸다. 10cm나 되는 눈이 쌓여 회사 주차장에 진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겨우 주차를 하고 내렸는데, 우리 과 직원들이 일제히 눈삽을 들고 나타났다. 아, 주차장 한가득 쌓인 눈을 치워야 했다. 주택에 살아 종종 눈을 치우기도 하고, 읍면동사무소에 근무하며 힘쓰는 일을 꽤 해본 덕에 피하고 싶지 않았다. 얼른 직원들을 따라 너까래를 들고, 신나게 눈을 쓸어냈다.

 

 눈 치우는 작업은 한 시간이나 걸렸다. 내내 눈을 밀어내고, 퍼내고, 얼음을 깼다. 한동안 운동을 하지 않았던 터라, 오랜만에 몸을 쓰니 개운하기까지 했다. 아침 운동을 한 셈 치고 발개진 얼굴로 사무실에 들어와 앉았다. 점심즈음이 돼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아뿔싸, 허리에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다. 


 컴퓨터 앞 의자에 앉아 일하는 사무직에게 허리는 소중한 신체 재산이다. 허리디스크라도 생기는 날에는 일단 앉는 일 자체가 괴로워서, 업무는 둘째치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조차 힘이 들 정도다. 재작년에 받은 건강검진에서 허리디스크 소견이 나와 열심히 등과 배 근육을 키웠는데, 그러다 보니 아프지 아 지속할 필요를 잊어버렸다. 한동안 운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근육은 다시 말랑한 살이 되었을 테고, 허리에 무리가 가는 눈 치우는 동작을 반복해서 생긴 통증일 게 분명했다. 하루 이틀 정도 스트레칭을 하면 나을 줄 알았으나, 앉고 일어서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통증이 계속됐다.


 결국 며칠을 더 참다가 한의원에 갔다. 정형외과에서는 다시 검사를 할 테고,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으라는 처방을 내릴 것이 뻔했으나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 대신, 한의원에 가면 다른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새로 개원한 한의원을 추천받아 갔더니 체격이 좋은 젊은 의사가 진료를 봐주었다, 근골격계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한 것 같았다. 이렇게 저렇게 움직여보라고 하더니 침과 부항 치료를 하고 다시 진료를 들어오라고 했다. 나는 간호사를 따라 향긋한 기운이 느껴지는 치료실로 자리를 옮겼다.


 한의원은 정말 따듯하고 말랑한 곳이다. 심신이 지친 직장인의 힐링 스폿으로 딱이다. 일단 정형외과에서 사용하는 온갖 검사장비가 없으니 큰돈이 들지 않는다. 한 시간에 걸친 치료를 받고도 만원 내외의 진료비가 청구될 뿐이다. 또, 말을 잘 들어준다. 한의원의 주요 이용층인 어르신들의 수요에 맞춘 서비스라고 생각된다. 어디가 아픈지 세심히 물어보고, 따듯한 말투로 응대해준다. 대기시간 또한 길지 않다. 초진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각종 따뜻한 것들로 몸을 달궈준다. 찜질이 끝나면 물리치료도 해준다. 아픈 곳은 시원하고, 침대는 뜨끈하니 시간이 아주 잘 간다.


 살짝 잠에 들 참이면 침을 놓겠다고 자세를 잡게 한다. 처음 한의원을 갔을 땐 침이 놓이면 깜짝 놀라서 움찔거렸다. 여러 한의원을 다녀본 결과 좀 더 세심한 선생님들은 침이 들어가기 전에, 먼저 손으로 꾹 압력을 준다. 놀라지 말라는 예고 정도로 생각된다. 이런 배려가 있으면 또 제가 이 한의원을 더 좋아하게 되잖아요. 그러다 또 까무룩 졸음이 오고……. 그렇게 한 시간 정도가 지나고 치료실을 나오면, 무겁던 몸이 한결 가뿐해진다. 몸이 따뜻해지니 기분도 좋다. 


 의사가 다시 진료를 봐야 한다 해서 진료실에 들어갔더니, 침대에 천장을 보고 누우라고 했다. 왼쪽 다리를 번쩍 들어 세우고는 최대한 수직으로 자세를 유지하라고 했는데, 그 순간 무지막지한 진동의 마사지건으로 허벅지 뒤쪽 근육을 박살 냈다. 눈물이 날 정도로 큰 고통이 느껴졌다. 또 이런저런 자세를 해보라고 하더니, 등 뒤쪽의 한 부분을 만지면서 이 부분이 허리 통증의 문제가 되는데, 그 통증을 잡기 위해서는 앞에 복근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지금은 복근이 없는 상태라 허리로만 지탱하고 있기 때문에 허리가 다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고 했다. 복근이 약하다, 적다도 아니고 없다는 말을 썼다. ‘근수저’라고 자랑하던 나였는데 운동을 안 한 새 이런 굴욕을 당하다니. 이어서 허리 근육을 키우는 운동을 하는 방법을 배웠다. 혼자서는 운동 방법을 잘 터득하지 못할 것 같아서 앞으로 열 번 더 오라고 했다가, 제법 잘 따라 하니 다섯 번만 오라고 할 테니까 혼자 많이 해보라고 했다.


  그럴 수 있을까? 혼자 운동을 할지도, 다섯 번이나 더 올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날이 갈수록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기는 한다. 컴퓨터를 자주 쓰는 탓에 어깨가 결리거나 등과 허리가 아프고, 때로는 손목과 팔, 목까지 통증이 생긴다. 간단한 스트레칭조차 하지 않은 탓이다. 때로는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어져서 퇴근하고 나면 저녁식사도 잊은 채 지쳐 쓰러져 잠들기도 한다. 체력을 기르려면 운동을 해야 하는데, 아뿔싸, 운동을 시작할 체력조차 없는 것이다……. 


 사무직은 몸을 쓰지 않는다고 쉽게 생각할 테지만, 천만에! 앉은 자세로 컴퓨터 작업을 하는 일 또한 몸에 무리가 간다. 오래 일하려면 체력 자산은 필수다. 앞으로 30년은 더 일해야 할 텐데, 그러려면 지금부터 튼튼한 몸을 갖춰놔야 한다. 당장 오늘부터 운동을 시작... 하려고 노력하겠으나, 만약에 오늘도 게으른 나에게 져버린다면, 가끔은 한의원에서 힐링하게 될 것이다. 아프지 않은 것이 최선이지만, 만약에 아프게 된다면 여지없이 찾게 될, 나의 힐링스폿 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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