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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비 Oct 16. 2023

야생마와 달팽이

김범_자신이 새라고 배운 돌

김범 <자신이 새라고 배운 돌> 2010, 돌, 나무, 목재 탁자
김범 <자신이 새라고 배운 돌> 12인치 평면 모니터에 단채널 오디오(87분 30초)



공룡, 호랑이, 용, 치타, 코끼리. 어린 두 아들이 좋아했던 동물이다. 지금은 스무살이 된 큰 아들, 세 살 때 꿈이 아빠코끼리였다. 그 아이가 지나온 시절을 돌아본다. 아빠 코끼리를 꿈꾸던 귀엽던 아이는 얌전하게 컸지만 사실 그 속에는 야생마가 살았다. 몰랐다. 착한 코끼리인 줄로만 알았는데 자유롭게 날뛰던 야생마였다니. 한국 교육 시스템과는 맞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었음을 중학교 3년을 모두 보내고 나서야 알았다. 그 때라도 알았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아이들은 나에게 거울이다. 뒷모습을 보고 크는 아이들은 나의 앞과 뒤를 거울로 훤히 비춰준다. 내가 용맹한 호랑이 또는 재빠른 토끼라도 되는 줄 알고 살았지만 아니었다. 나는 아주 느린 달팽이었다. 1등부터 100등까지 한 줄 세우는 시스템에서 살아남기 위해 엉뚱하게 채찍질했을 뿐이었다. 나는 치타. 나는 토끼. 나는 호랑이. 되뇌이고 외우고 흉내내면서 착각하고 살았다. 빨리 앞서가지 않으면, 안 돼. 토끼 탈을 쓰고 치타 쯤 되고 싶어 용을 쓰며 달렸다. 소용없다는 걸, 마흔이 넘어서야 알기 시작했다. 두 아이 성장과정을 옆에서 지켜 보며 엄마인 내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루소가 말한 인간 본성론에 고개 끄덕이기도 했다. 아무리 애써도 야생마를 코끼리로 만들 순 없는 법. 더 이상 치타를 꿈꾸지 않는 달팽이는 한결 가볍게 기어간다. 느릿느릿 여유 만점 달팽이와 자유롭게 내달리는 야생마를 사랑한다. 달라도 사랑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새해 첫 기적


반칠환


황새를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한시 새해 첫 날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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