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놀데 (Emil Nolde)
20세기 초 독일 표현주의 화가 에밀 놀데(Emil Nolde, 1867~1956)는 어떠한 미술 단체에도 가담하지 않은 자수성가한 예술가이다. 당시 독일에서는 급속한 변화에 대한 요청이 빈번하여, 드디어 1905년 일군의 독일 화가들은 과거와 완전히 결별하려는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투쟁하기 위한 다리파(Die Bruecke)라는 독일 최초의 표현주의 그룹이 탄생한 것이다.
특히 독일의 표현주의는 사실상 보잘것없는 인간의 분노와 복수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하며 가장 풍요롭게 전개될 무렵, 1933년 나찌스가 권력을 잡게 되자 퇴폐 예술로 낙인찍어, 압수하고 일체 금지되고, 이 미술운동에 참여한 위대한 지도자들은 추방되거나 창작활동이 금지당했다.
1912년에 제작한 <예언자(The Prophet)>는 놀데의 가장 인상적인 목판화로서 다리 파 화가들이 목표로 했던 거의 포스터와 같은 강렬한 효과를 잘 보여준다.
그들이 추구한 것은 장식적인 것이 아닌 형체의 단순화로 표현을 한층 더 강렬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놀데는 다리파에 가담하지 않았으나 그들이 추구하는 목적 에는 동조하였다.
놀데의 표현주의는 단순, 소박한 근원적인 자연을 매체로 내면적 생명감을 강렬한 색채로 승화시키고 있다. 또한 판화는 순수한 정신의 조형 작가임을 보여준다. 놀데는 1867년 북 독일 노르트슐레스비히의 농가에서 태어났다. 1892년부터 스위스의 산크트가렌 공업학교에서 교직생활을 6년간 하다가 1898년 그만두고 뮌헨, 파리, 코펜하겐 등지로 유학하여 인상파 풍의 화법을 익혔다. 그는 34세인 1901년에 화가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다. 독일 북변의 황량한 풍토화와 범신론적인 종교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작품을 하던 중 1909년 그의 종교화 <성령강림제>를 인상파적인 베를린 분리파 미술전에 제출했으나 전시를 거부당하자 분리파와 인연을 끊었다. 그러나 이보다 먼저 드레스덴에서 개최한 개인전을 관람한 브뤼케파(派)의 화가들과 분리파 혁신적인 신세대들 사이에서 관심을 받았으며 그들은 놀데를 표현주의 맹장으로 추앙하였다.
1937년 놀데의 작품은 독일 나치스에 의해 퇴폐 예술로 낙인이 찍힌다. 그 후 그는 안타깝게도 북독일의 제뷔르에 은신하여 1956년 생을 마칠 때까지 작품을 공개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