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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새로 나온 면을 소개합니다.

하늘나라와 다음 세상의 사이

by 완자 Mar 21. 2025

‘난 이대로 계속 서 있을게 긴 긴 한숨 속에

 조금은 힘들지만 꿈속에선 볼 수 있잖아

 넌 모른 척 그대로 살아가 너의 눈물까지 내가 다 흘려줄게

 이런 나의 맘 헤아려만 줘'

마지막 소절이 끝나기가 무섭게 카세트테이프를 꺼내 B면으로 돌린다.


‘모든 시간 끝나면 세월의 흔적 다 버리고

 그때 그 모습으로 하늘나라에서 우리 다시 만나자'


015B의 4집 앨범 A면 3번째 곡 ‘어디선가 나의 노랠 듣고 있을 너에게’와 B면 3번째 곡 ‘세월의 흔적 다 버리고’는 카세트테이프만 뒤집으면 곡 중간 부분이 연결되는 무한 도돌이표가 가능한 나의 최애곡 메들리였다. 수동이라 다소 손이 갔지만 귀찮다는 생각 하나 없이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A면, B면을 바꿔가며 질리도록 들었었다.


015B의 시작은 이름만 써도 눈물이 줄줄 나는 마왕 신해철이다. 무한궤도로 시작된 나의 가요 사랑은 신해철 솔로데뷔 후 015B로 번져 이후 토이, 그리고 롤러코스터로 연결된다. 그때만 해도 5천 원 주고 콘서트에 갔었는데 (립싱크를 해서 놀랐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적은 돈으로 감성을 켜켜이 쌓을 수 있었던 좋은 시절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 시절 가요 가사들은 연애를 해서 행복하다는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세상의 어두움과 무거움을 짊어지고 가는 행위라는 것인지 헛갈리게 하는 가사가 많이 있었다.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자는 둥, 꿈속에선 볼 수 있다는 둥. 하나도 잊지 말고 이 세상 동안만 간직해 달라는 둥. 꼭 그렇게까지 슬퍼야만 했냐라고 묻고 싶지만 지금 다시 들으면 다소 거슬릴 뿐 모든 단어 하나하나가 아름답고 애틋하게 느껴졌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그저 슬픈 가사 주인공의 행복을 가슴 깊이 진심으로 빌곤 했다. 그런 감성 때문인지 개인적으로 젊은이에 대한 기준은 노래방에서 랩만으로 구성된 노래를 부르느냐, 아니냐로 구분 짓는다. (너무 늙고 말았다.)


발라드 가수인 성시경은 요즘 세상에 발라드가 예전만큼 사랑받지 못하는 점에 대하여 "예전에는 헤어짐이 단절이던 시대여서 애절하게 들렸던 게 아닐까 싶다"라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었다. 지금은 헤어지고 난 후에도 SNS로 친구의 친구의 친구 정도만 건너면 소식을 알 수 있는 세상이다. 그때의 나처럼 카세트테이프를 A면 곡이 끝나면 손으로 꺼내서 B면으로 직접 뒤집으며 노래를 들을 필요도 없는 세상이니 말이다. 일본의 한 세대 간 인터뷰에서 'A면'이라는 단어를 아는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그 질문에 대해 한 젊은이는 "A면? 새로 나온 면인가요?"라고 답했다. (진짜 너무 늙고 말았다.)

  

A면의 첫 번째 곡이 아닌 3번째 노래, 그리고 B면 역시 첫 번째 노래가 아닌 3번째 노래를 좋아하는 나는 아마도 대부분의 취향이 대중적이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남편도 그래서 만난 거겠지. 그런 의미로 보자면 대중적인 취향을 가진 편이 좋은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   


+ B면 '세월의 흔적 다 버리고'의 가사 중 '하늘나라'는 리메이크되면서 '다음 세상'으로 개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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