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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이 가르쳐준 마음을 보는 법

겉모습이 다가 아닌

by 꽃하늘
빛깔보다 중요한 건, 사과가 견뎌온 시간. 10월의 어느 멋진 날 과수원에서
과일은 나와 먼 존재

솔직히 말하면, 나는 과일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깎아야 하고, 씨를 골라야 하고, 껍질도 많다.

그 수고로움이 나에겐 크게 느껴졌다.

어린 날 소원 중 과일은 내 소원 목록에 없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과일을 고를 때는 더 맛있는 것을 고를 줄 안다.
모순적인 말 같지만 사실이다.

모든 과일은 아니고,
사과, 자두, 토마토 정도?
내가 1년 중 과일을 스스로 챙겨 먹는 시기는 많지 않다.

제철 과일의 진짜 맛

지금은 제철과일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이제는 누군가에겐, 딸기의 제철이 겨울인 세상이다.
하지만 내가 자라던 시절,
딸기는 조금 더워질 무렵에야 먹을 수 있었다.

자고로 제철에,

따가운 햇빛을 받으며 열린 열매는
아무리 발달한 농업기술도 따라갈 수 없는 맛을 낸다.

빨갛게 빛나는 건 껍질, 진짜 맛은 그 안에
새콤 달콤 아삭 자두

딱, 지금의 계절엔 자두가 주렁주렁 열렸다.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다가 목이 마르면
자두를 따서 옷에 슥슥 닦고 한입 베어 먹었다.

풍부한 과즙, 새콤달콤하고 아삭한 맛.
그걸 잊을 수 없다.

자두는 햇빛을 잘 받아야 한다.
햇빛과 가장 가까이 있는 자두는 빨갛지만,
그게 꼭 맛있는 자두는 아니었다.

빨간 자두는 오히려 너무 익어서
단단한 과육보다는 물컹함에 가까웠다.

맛있는 자두는
갓 비를 맞은 자두나무에서 열린,
살짝 노란빛이 돌면서 적당히 큰 크기.
손으로 살짝 눌렀을 때
아주 살짝 말랑한 것이 맛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어떤 과일이든 물에 씻으면 맛이 떨어진다.
옷에 ‘슥슥’ 닦아야 제맛이 난다.

토마토는 햇빛을 먹고 자란다

토마토는 한여름의 뜨거운 햇빛을
많이 받을수록 더 빨갛게 익는다.
그리고 특유의 짭짤한 맛이 난다.
어른들 말로는 ‘간이 된 토마토’다.

비가 한동안 내리지 않은 여름 날,

햇빛이 뜨겁기 전 이슬이 걷힌 오전에
가장 빨갛고 모양이 고른 것을 골라
먼지만 닦고 그 자리에서 베어 먹는다.

그게 제일 맛있다.

물론 썰어놓은 토마토에 설탕을 뿌려
국물까지 들이킬 때—
그때의 맛은 정말, 세상에 또 있을까 싶었다.

사과는 보기 좋은 게 답이 아니다

사과는 아주 빨갛고 크다고
무조건 맛있는 건 아니다.
빨간색을 내려고 반사필름을 깔아
햇빛을 고르게 반사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진짜 맛있는 사과는
일교차가 큰 곳에서 서리를 맞고,
늦가을까지 햇빛을 듬뿍 받은 사과다.

그런 사과는 새콤달콤한 맛이 난다.

단맛만 나는 사과는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새콤달콤이 어우러진 맛은
그 땅의 기후와 토양이 맞아야 한다.

그리고 아주 빨갛지 않아도,
크기가 크지 않아도 괜찮다.
외관상 큰 흠집만 없다면 대부분 맛있다.

특히 까치가 한입 베어 먹은 사과는
정말 맛있다.
까치가 먹은 반대편을 베어 물면
먹어본 사람만 아는, 놀라운 맛이 있다.

하지만 이런 사과는 색이 예쁘지 않고
흠집이 있어 등외품으로 밀린다.
그래서 떨이로 팔린다.
과일 본연의 맛은 훨씬 좋을 수 있는데도 말이다.

과일이 가르쳐준 것

매년 사계절마다,
그 자리에 열리는 과일을 보며
나는 삶의 태도를 배웠다.

타인을 바라볼 때,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으로 보고 있는 건 아닐까?

과일을 고를 때도
우리는 대부분 색이 곱고 모양이 고른 것을 고른다.
사람을 사귈 때도 그렇다.
예쁘고 빛나는 친구를 원하는 건 우리 모두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내가 가진 편견으로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거나 단정짓지 말고,
그 사람의 내면을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과든 사람이든,
하나의 열매를 맺기 위해 쌓은 시간은
모양이 다를지라도 함부로 평가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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