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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하 Jul 15. 2023

허락된 과소비

자식은 왜 이렇게 이쁜가


나는 명품백이 하나도 없다. 부끄럽지만 새치 염색도 집에서 하고 앞머리정도는 스스로 자른다. 꽤 만족스럽다. 지인들이 미용실에 다녀왔냐고 물을 때마다 머리를 혼자 했다고 하면 놀라곤 한다. 내 사전에 과소비를 하지 않음은 물론 쓰는 것은 오로지 커피값정도. 그것도 거의 홈카페용 캡슐이다.

  이런 내가 흔들리는 경우는 바로 딸아이의 옷을 살 때다. 옷가게에서 사장님이 권하는 대로 다 골랐다가 옷값이 30만 원이 나온 적이 있다. 예쁜 옷은 얼마나 많은지 금액은 보지도 않고 죄다 샀다. 그럴 때마다 소풍 전날 입고 갈 옷이 없고, 소풍용 가방이 없어서 책가방을 메고 가는 것이 당연했던 어린 시절을 보상받은 듯했다. 중학교 때 옆으로 메는 조그만 가방을 사달라고 했지만 엄마는 사주지 않았다. 진짜 못 사준 것이었다면, 엄마도 참 힘들었을 것이다.

 

"너네 아빠 술 좀 그만 마시라고 말 좀 해"

“아빠 팔짱 좀 끼고 애교 좀 부리면서 술 좀 그만 마시라고 해”

내가 망설이면 엄마는 

“가시네가 왜 그렇게 주변머리가 없어!”라고 핀잔을 줬다. 

그냥 아빠가 아니라 너네(너희의) 아빠였다. 엄마는 종종 너희들 때문에 안 도망가고 아빠하고 사는 것이라고 했다. 너희만 아니었으면 진작에 이혼했을 거라고 밥 먹듯이 말했다.


안타깝지만 사랑만을 받고 자란 여리여리한 여자 아이처럼 자라지 않았다. 어느 순간 말이 없는 아이가 되었고, 사춘기 아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줄 어른들도 없었다. 그래서 엄마가 원하는 집안의 분위기 메이커가 될 수 없었다. 

 엄마는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너네 아빠한테 말해”라고 핀잔을 주었다. 그러면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빠에게 돈을 달라고 했다. 아빠는 엄마에게 미용실은 차려주었지만 생활비는 주지 않았다. 서로 공유하지 않는 것들이 많아지자 더 불같이 싸웠다. 내가 커가면서 엄마는 나에게 아빠 욕도 하고 할머니 욕도 했다. 엄마의 힘든 마음을 감당하기엔 나는 너무 어렸다. 나는 엄마의 화풀이 대상이기도 했고,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기도 했다. 이상하게도 엄마에게 자꾸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엄마와는 좀 친해진 기분이 들었고, 엄마말만 듣고 아빠를 미워하기도 했다.

 어느 날 아빠가 술을 먹고 와서 엄마와 또 싸우고 집을 나갔다. 엄마는 내게 당장 아빠를 따라가 보라고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어두운 저녁길에 흔들리며 걷는 아빠의 뒤를 따라갔다. 모래내에서 안덕원을 지나서 백자동으로 가고 있었다. 놀랍게도 우리가 살던 시골 동네였다. 족히 한 시간은 걸리는 거리였다. 예전엔 내가 마음껏 뛰어놀던 동네였지만 몇 년 만에 간 곳은 나의 고향이 아니었다. 도로가 뚫리고 못 보던 건물이 생기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이었다. 지나다니던 자동차들이 점점 없어졌고 암흑만 존재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따라가다가 그만 아빠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띄엄띄엄 있는 시골집들 사이를 어린 학생이 들어가 일일이 물어보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고, 그땐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다.


아무리 찾아봐도 아빠를 찾을 수가 없었고, 깜깜한 밤 나는 혼자였다.


 다시 돌아갈 길이 걱정스러웠다.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 중간쯤 오니 불 켜진 파출소가 보였다.  파출소에 들어가 전화를 한통 하겠다고 부탁하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경찰 아저씨는 나와 엄마의 통화를 듣고는, 아빠를 같이 찾아주겠다고 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내가 살던 시골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아담한 한옥 집. 엄마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경찰 아저씨에게 그 집으로 가자고 했다. 예쁜 신발들이 있었지만 아빠 신발은 없었다. 아빠가 엄마에게 생활비만 안 준 것은 아니었나 보다. 일면식도 없는 두 모녀에게 근무시간을 내어준 경찰 아저씨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따듯하게 느껴졌다. 


긴장한 채 밤거리를 헤매서 그런지 다음날 등굣길이 유난히도 힘들었다.


 엄마는 왜 엄마가 따라가지 않고 나를 보냈을까? 나라면 어땠을까? 지금도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아빠가 갔을 법한 집을 단번에 지목한 걸 보면, 엄마도 짐작은 했을 것 같다. 


 흔들리는 부모와 함께 한다는 것은, 그림자조차 없는 아이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과 같다. 누구에게나 그림자가 있다. 그림자는 숨겨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림자조차 숨겨야 한다. 천진난만한 감정도 슬픈 감정도 모두 없는 것처럼 숨겨야 한다는 의미다. 


어린 시절 결핍의 흔적은 가끔 과소비의 형태로 나타난다. 하지만, 꼭 가난하다고 해서 자식에게까지 가난한 마음을 물려줄 필요는 없다. 가난하지만 화목한 가정이 얼마나 많은가? 불행히도 나의 부모님은 물질적인 가난과 정신적인 가난 속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던 사람들이었고, 이제 나는 성인이므로 내 삶을 다시 밝은 곳으로 끌고 갈 힘이 있다. 

내 아이들에게만큼은, 감정을 쏟아내지 않고 그늘진 아이가 아닌 

밝은 아이, 아이다운 아이로 키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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