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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나비 Aug 16. 2022

쉰 중년 아니고 신나는 중년

인생 터닝 포인트 배드민턴 

거기서 멈춰 있지 마 그곳은 네 자리가 아냐 

그대로 일어나 멀리 날아가기를

얼마나 오래 지날지 시간은 알 수 없지만

견딜 수 있어 날개를 펴고 날아 

날아 - 이승열 -      

 

40대 초반 비교적 젊은 나이에도 건강이 썩 좋지 않았다.

원인불명의 어지러움 증으로 병원에 입원에 열흘간 입원 치료를 받은 적 있고 35살에 당뇨 진단을 받아 일 년 넘게 보리밥을 먹어야 했다.    

  

아내 역시 힘든 육아와 직장 일을 병행하면서 시시때때로 우울증을 호소했다. 어떤 식으로 든 케어가 필요한 시간이 나에게 다가왔다. 매사 의욕이 없고 예민해지면서 주변 사람들과 사소한 일로도 자주 부딪쳤다.  

     

마흔두 살 이 되던 가을날. 계절이 깊어 가니 마음에도 쓸쓸함 이란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아내와 집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을 돌며 저녁 운동을 하고 있었다.

     

                                                 환상의 짝꿍 유연성 이용대


초등학교 별관 건물 체육관 창문 너머로 네트를 사이에 두고 네 사람이 땀을 뻘뻘 흘리며 죽어라 셔틀콕을 쫓아다니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코트를 뛰어다니느라 힘들어 보이는데 환하게 웃으며 건강한 에너지를 뿜 뿜 하고 있었다.


 내 눈빛이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반짝 빛이 났다. 민턴을 시작하면 웃을 일 이 많아질 것 같았다.     

야간 교대 근무 맞벌이로 인한 두 아이 육아와 집안일에 많이 지쳐 있었고 매일 반복되는 파출소 민원업무와 사람 대하는 것에 염증을 느끼고 에너지 지수가 평균 게이지를 한참 밑 돌던 때였다.  

      

조심스럽게 체육관 문을 열고 들어가 낯선 사람들에게 꾸벅 인사를 건네고 가입은 어떻게 하고 운동은 일주일에 몇 번이나 하는지 물어봤다. 돌아온 반응은 생각보다 시큰 둥 했다.


‘응?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왜 저러나?’ 단 한번 방문으로 이 바닥 분위기를 100% 알 수는 없어 살짝 기분은 상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나중에 알았다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에 방문을 하지만 실제로 클럽에 가입을 해서 운동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을)     

두 번을 더 찾아가 구경했고 망설이다가 세 번째 방문 때 익산 희망동 하늘 초등학교 달빛 클럽에 가입을 했다.     

가입한 첫날 클럽 회장이 말했다 “ 운동 좀 해보셨나요?”

"아니요. 학교 다닐 때 잠깐 쳐본 왕 초보입니다."

"그럼 저쪽에 앉아 계시는 분 들이랑 한게임 해보세요." 한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60대 후반의 노신사와 같은 또래 여자 한분이 좌대에 앉은 생불처럼 온화한 미소를 지며 반겨 주었다. ‘아무렴 내가 한참 젊은데 저 사람들을 못 이길까’? 생각하고 자신 있게 코트에 들어섰다. 웬걸 그 근자감이 엄청난 만용이었음을 깨닫는데 그리 오래 걸지 않았다.  

    

네트 앞에 살짝 놓는 정교한 헤어핀, 뒤로 밀어내는 하이클리어, 짧고 간결한 드라이브, 거기다 허를 찌르는 롱서브 까지 두 사람의 플레이는 완벽했다. 10년 넘은 구력들이 날카로운 보검처럼 빛을 뿜어 내고 있었다.       

도무지 빈틈이 없었다. 거친 숨을 내쉬며 코트를 죽어라 뛰어다녔지만 결과는 25대 12. 큰 점수 차로 패했다. 바짝 약이 올라 한 번 더 도전을 했지만 무참하게 박살이 났다.  

   

생활체육 동호회 민턴은 흔히 말하는 약수터 배드민턴, 학교 체육시간에 부담 없이 웃고 즐기던 친구 우정 민턴 과는 확실히 차원이 달랐다. 그날의 참패가 나에게 오기를 불어넣고 중년에 들어선 나에게 새로운 승부욕을 자극했다.  

    

생활체육 동호회 민턴은 혼자 하는 단식이 없고 둘이서 짝이 되어 운동을 하는 복식만 있다. 좋은 복식 짝을 만나 코트 안에서 한마음으로 플레이를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레슨을 받지 않고는 두 선배님 들을 이길 날이 결코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나름 운동신경도 가지고 있고 부평 경찰 종합 학교에서 동기들과 민턴을 종종 즐겼던 터라 약이 바짝 올랐다. 

    

운동을 마치고 밤 9시경 집에 돌아와 목소리를 높여 씩씩거리며 그날의 게임 상황을 생중계하는 나에게 아내가 말했다. “어이구 그런 오기로 공부를 했으면 진즉 경정(5급 사무관) 은 달았겠네” 하며 웃는다.     

‘두고 봐라 내 기필코 저 두 사람을 넘어 서고 말 테다.’ 다음날 클럽에 나가 8만 원을 주고 민턴 레슨을 정식으로 신청했다. 운동을 배우기 위해 돈을 써본 것도 내 평생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천명을 넘어선 지금, 십 년째 즐기고 있는 배드민턴. 생활체육이라는 배드민턴 코트에서 벌어지는 또 하나의 세상.     

허리 디스크에 시달리고 운동을 과하게 하는 날은 병원에 가서 침으로 쑤시고 불 부항으로 지지고 저주파 치료기로 찌릿찌릿 전기 고문을 당하면서도 빵 하고 터지는 경쾌한 소리 손끝에 전해지는 기분 좋은 타격감에 민턴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라켓을 휘두르면 마음이 날았다. 

벌처럼 “붕! 붕! 붕! ”

올해로 십 년째, 지천명에 들어선 나의 배드민턴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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