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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나비 Nov 01. 2022

가을! 춘포로 가는길

미술작가와 시인을 만났다


조덕현은 1990년대부터 주로 오래된 흑백사진 속 인물을 연필과 목탄을 사용, 캔버스에 정교하게 옮겨 그림으로써 사진 속 과거의 인물을 지금 이곳으로 소환하여 재조정하는 ‘사진 같은’ 회화 작업을 지속해 왔다. 사진은 작가의 작업의 시작점이자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매체이다.   

        

    조덕현 미술작가  1관  바람


해상종합훈련과 불시 훈련 등 중요한 일이 끝나 업무로서는 1년이 거의 마무리가 되어 가고 있다.

모처럼 정박기간에 휴무가 좀 길게 허용이 되어 밀린 집안 일과 아이들을 돌보며 느긋하게 휴식을 취했다.     


10월의 마지막 날, 파도에 시달려 허해진 몸을 보양하고 산책도 할 겸 익산 집에서 가까운 춘포면으로 길을 나섰다.


익산시 춘포면에는 현재는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이 있다. 옛 영화를 뒤로하고 허전함을 간직하고 있는 춘포역과 호소카와 농장 가옥, 일제 강점기 춘포 일대를 소유했던 일본인 대지주인 호소카와 모리 다치가 인근 농토에서 거둬들인 벼를 현미로 가공하여 일본에 보내기 위해 세워진 도정공장이 있다.

      

   대장 도장공장 입구


식민지 시대 애초 춘포역의 명칭은 대장 역이었다. 춘포면 일대에는 일본인 농장과 이주민 촌락이 들어서며 마을이 형성됐다. 구마모토에서 200여 명이 농장 관리인이나 노동자로 이주해 전체 주민의 10%가 일본인이었다고 한다. 일본인은 새로 개설한 마을을 대장촌 (大場村)이라고 불렀고 대장 역이란 이름도 여기서 유래됐다.
너른 들판이라는 의미다 지금도 중촌이라는 일본식 지명이 남아 있고 1902년에 문을 연 대장교회도 옛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다.      

춘포는 마을이 아담해서 문화재 몇 점을 구경하고 산책을 하다 보면 1시간 정도 소요되어 체력적으로 무리가 없고 카페에 앉아 독서를 하면 가을 햇살과 함께 보내는 찬란한 오늘을 만끽할 수도 있어 좋다.

    

춘포에는 대장촌이라는 영양탕집이 있다. 선선한 가을바람을 맞고 따뜻한 흑염소 탕을 한 그릇 들이키니없는 힘이 불끈 솟는 것 같다. 소화도 시킬 겸 식당에 비치된 관광안내도를 펼쳐 보니 전에 없었던 혹은 몰랐던 멋진 곳이 몇 군데 눈에 띈다.

카페 춘포


관광안내도를 길잡이 삼아 궁촌 경로당 입구에 차를 세우고 동네를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뭐랄까? 잘 알려지지 않은 고즈넉한 이곳이  유년시절 내 고향 실개천 신작로 같은 평화로운 시골 풍경이 가을 햇살과 함께 곱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연인 혹은 친구 두 사람이 손을 잡고 걸으면 딱 안성맞춤인 천변길을 따라 걷자니

담장 없는 조그만 텃밭들에 여인네의 고운 입술연지 같은 짙은 주황색 빛깔의 고운 홍시들이 가지 끝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텃밭에서 밭작물을 수확하고 있는 시골 아낙의 손길이 꼭 한 폭의 풍경화 같다.


누군가 정성 들여 가꾸어 놓은 꽃밭에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곱게 피어있고 닭 벼슬을 닮은 새빨간 맨드라미가 어른 주먹보다 더 큰 모습으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가을 햇살에 붉게 물들어가는 대추와 아직은 붉은 속살을 터뜨리지 못한 매끈한 연두색 무화과가 건강하고,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가을 햇살에 살을 맞은 듯 널브러져 게으른 하품을 하고 있고 밭 한편 닭장 속에서는 지렁이라도 잡아 올리는 건지 부리를 땅에 박고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꼬꼬 거리며 암탉들의 고갯짓이 분주하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농수로 건너 연밭에 잎사귀가 주저앉은 퇴색한 연꽃 가지가 보이고 갈대꽃을 흩뿌리며 어른 키 만한 갈대와 둑에 잔뜩 흐드러진 은빛 억새가 낯선 나그네를 반기며 춤을 쳐댄다. 완연한 가을의 평화로운 시골 풍경이다.  

   

아무 생각 없이 하늘을 보고 볕을 쪼이며 걷다 보니 어느새 춘포 초등학교 앞 도착  팔각형 나무 정자와 붉은 단풍나무 한그루가 쉼터를 제공해준다. 운동장에서 시름없이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활기차다.


사브작 사브작 40여분 정도 길지 않은 여유로운 산책을 마치고 젊은 청년들이 커피도 팔고 민박도 친다는 청년 카페에 들렀다.  시골에 자리한 카페는 역시나 도심 한복판에서 가지지 못한 넓은 대지의 넉넉함이 있다.


보이차를 한잔 시키고 카페를 한 바퀴 둘러보고 사장님을 만나 아직 젊은데 춘포 이곳에 자리를 잡은 연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서울에서 사업을 하다 코로나 때문에 매출 급감으로 사업을 접고 6개월 전 고향으로 내려와 숙박사업과 카페를 차리게 되었다고 한다. 숙소 이름은 금촌, 카페 이름은 춘포 카페

마당 여기저기에 쉼 공간이 많아 도시락을 싸 와서 먹어도 좋고 카페에 배치된 몇 권의 책과 만경강 햇볕과 바람을 맞고 자란 보석 같은 질 좋은 쌀을 한가 마 사가도 행복하겠다.


실제 물이 담긴 깊은 샘이 있는 것도 정겹고 고양이 세 마리가 기지개를 켜는 모습도 나른하여 보기가 좋다.

지역민들과 소통하고 지금은 쇠락한 춘포를 살리는데 조금이라도 도움 되기를 바라는 소박한 꿈을 가진 두 젊은 내외를 응원하며 카페를 나섰다.

      

이춘기 옹이 살아생전 30년간 쓴 일기


카페 바로 옆에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녹이 슬어 새빨개진 양철지붕의 대장 도정공장 외관이 보였다.

사실 춘포를 서너 차례 방문했지만 한 번은 도장공장을 찾지 못해서 헛걸음을 했고 또 한 번은 휴관일이라 내부를 둘러볼 수 없었다.  입구에 그럴듯한 입간판도 없고 친절한 안내인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누가 봐도 황량하고 퇴락한 시골 폐건물이다 보니  아마 몰라서도 안 찾아오지 싶다.


일제 식민지 만경 평야의 질 좋은 쌀들을 수확해 현미로 가공해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하던 도장공장이 세월이 흘러 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을 했다. 사는 건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출입문은 열려는 있는데 안내하는 사람도 없고 건물도 썰렁하고 입구 왼쪽에 티켓팅하고 결재하는 시설은 있는데 오늘 전시관을 열었나 기웃거리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 트렌치코트를 입고 바람머리를 하신 멋진 중년의 신사가 한분 오시더니 "입장료는 만원입니다" 하신다. 잉 생각보다 비싸네 그래도 왔으니 티켓팅을 해야지 일반인 말고 예술인은 5천 원 문구가 있다.


 " 히야 제가 글 쓰는 예술인입니다." 당당하게 뻔뻔하게 말씀드렸더니 수던 분하게 웃으시더니 그럼 그걸로 끊던가 하신다. ( 나중에 이 츤데레 형님의 매력을 아시게 된다)     


과거와 예술이 공존하는 조덕현 미술작가의 개인전 익산 춘포 도정공장 전시회 주제는

"108 and  -어둠과 빛, 바람과 비의 서사"

조덕현 개인전 22.4.23~ 23. 4.22일 까지, 월요일은 휴관    

 


전시관이 7개로 이루어져 다 돌아보는데 개인적인 성격과 미술에 조예가 깊으시다면 한 시간 가까이 소요가 된다.


1 전시장에 전시된 바람은,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경이로운 시각을 눈뜨게 해주는 것 같다. 마치 사람도 오래 보아야 자세히 보아야 이쁜 것처럼.


2 전시장은 비, 물속에 투영된 예술작품이 세상을 정면으로만 보고 살면 볼게 뻔한데 거꾸로 바라보면 새로운 것이 보이듯 인생에 대한 시선과 통찰을 일깨워 주는 것 같았다.      


3 전시장 기억은, 실제 거주했던 거주민들의 1930년대 의복들을 연필과 목탄을 즐겨 쓰며 사진 같은 회화 작업을 지속해온 작가 특유의 감성으로 표현해 놓은 마을분들의 표정이 정겨웠다.      


7 전시장까지 관람하면서 글쟁이인 내가 가장 반갑고 기뻤던 것은

익산 춘포면에서 복숭아 농사를 지으며 30년간 쓴 이춘기 옹의 빛바랜 일기장 들과 김용택 시인의 시들이었다.


이춘기 옹이 쓴 일기를 토대로 펴낸 책" 목련꽃 필 무렵 당신을 보내고"라는 책도 알게 되었다.

하나의 전시장 전면 사방에 붙여진 그 시절 일기가 만년필로 정성 들여 쓴 그 내용들이 웬만한 글쟁이 뺨칠 정도의 글솜씨는 물론이고 그날그날의 일기에 주제를 담아 문두에 그려놓은 흑백의 그림이 단연 압권이었더.


채색도 하지 않은 그림들이 주제를 딱표현해 주고 있어 굳이 글을 읽지 않아도 지은이가 무엇을 알리고 싶은지 금방 알 수 있어 좋았다.

     


전시장 바깥 출입문에 붙은 새빨간 담쟁이덩굴과 짙은 노란색을 띠며 물들어가는 아담한 메콰타세이어가 가을 하늘과 어우러져 한 폭의 멋진 그림 같다.  미술 분야에 지식이 많이 부족해 그림이나 조각 이런 분야를 잘 모르지만 옆에 훌륭한 가이드가 계셔서 오늘의 미술작품 전시관 투어는 대 성공이었다.

    

관람을 마치고 이 츤데레 (?) 안내인과 간단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사실 오늘은 월요일이라 문을 닫는 날인데 사정이 있어 열게 된 거고 손님이 오신 거고 캠핑카 속에 들어가더니 아메리카노를 맛있게 하잔 타서 또 내주신다.


 입장료 속에 커피 값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괜히 입장료는 깎아가지고 공짜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지 말씀을 듣고 나니 머쓱해진다.  오늘 베풀어 주신 친절과 커피는 오래도록 못 잊을 것 같다.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다음에는 가족들과 다시 올 거라며 인사를 드렸다.


말수는 별로 없으신데 작품들에 지식도 해박하시고 인심 좋으시고 멋지게 나이 들어가시는 모습까지

 사람이 참 다시 없이 좋은 분이셨다.

     

일상에서 별 기대 없이 떠난 춘포 나들이. 내가 본  오늘 춘포의 시골 풍경은 가을 그 체였다. 뻔한 춘포 여행 말고

사브작 사브작 시골길을 걸으며 사색을 즐기며 텃밭 주인의 넉넉한 인심과 달콤한 홍시가 그립다면 춘포 산책로를  한번 다녀가세요

2전시관  레인


만경강 둑길에서 기차 철길 너머로 떨어지는 만경강 갈대밭 낙조도 제법 볼만하고  산책하시다 배고프면 영양탕도 드시고 싱그랭이 칼국수도 맛보시고 춘포 카페 가셔서 브런치도 드시고 책도 읽고 하룻밤 민박집서 자고나면

힘든 일상과 번아웃들이  저 멀리 사라져 삶의  에너지가 다시 뿜 뿜 해 지실 것입니다.

대장 도장공장


      

벌써 11월. 만추로 가는 길목에서 뻔하지 않은 익산시 춘포면 동네 마실 여행을 추천해 드립니다.

이 가을 모두 모두 행복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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