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먹고 싶은 게 뭔지 알아채고,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알맞은 요리를 해서 나를 먹일 수 있는 능력은 굉장히 소중합니다. 나를 달랠 수 있는 방법을 하나라도 더 가지는 건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 무엇보다 중요하거든요. 내 입에 딱 맞는 간과 선호하는 재료들, 조리(라고 쓰고 노동이라고 읽어봅니다)하면서 몸을 움직여 얻는 에너지, 맘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에서 익숙한 접시에 담아 먹는 좋아하는 음식은 종종 요긴한 스트레스 해소제가 되어줍니다.
이런 저도 가끔은 뭘 요리해야 좋을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라면보다 파스타를 자주 볶아먹는 사람인데도 도통 뭐가 당기는지 모르겠는 거죠. 잔뜩 늘어놓고 이런 말로 끝맺기 허무하지만, 그럼에도 결국은 파스타이긴 합니다. 콕 집어 이야기하자면, 토마토 파스타요.
런치팝 스파게티를 아시나요? 제 파스타 사랑은 이 간편식 스파게티 전후로 나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때, 아무도 없는 집에서 아주 맛있는 걸 먹고 싶으면 찬장 구석에서 며칠간 아끼고 아끼다가 꺼내 먹었던 런치팝 스파게티. 전자레인지에 2분만 데우면 완성되는 그 간단한 스파게티가 얼마나 맛있던지요. 뜨끈하게 데워진 스파게티의 비닐을 다 떼어냈을 때 진하다 못해 구수하게 느껴지던 미트소스 냄새. 저는 어제 먹은 것도 물어봐야 더듬더듬 짚어내는 사람이지만 어렸을 때 먹었던 런치팝 스파게티 맛은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 소스가 아까운 마음에 접시를 핥아 싹싹 해치우곤 했어요. (엄마가 있을 땐 혼나서 차마 그렇게 못했지만요) 마치 라면처럼 혀를 쪼아주는 가공식품 스파게티가 얼마나 저를 행복하게 만들어 줬는지, 그리고 얼마나 인상 깊게 남아 그 이후 쌓아 올린 제 입맛에 큰 지분을 차지했는지. (아직도 혀를 때리는 묵직한 맛을 좋아합니다) 돌이켜 보면 웃기고도 소중한 추억입니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영화에서 예상치 못하게 토마토 파스타 장면을 보고서는 한동안 또 토마토 파스타에 빠졌더랬죠. 파란색으로 가득할 줄 알았던 영화에 붉은 토마토 파스타를 맛있게 먹는 장면들이라니 반칙이지 뭐예요. 파스타 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토마토소스를 가득 올린 영화 속 파스타는 식욕을 돋우고도 남는 비주얼이었습니다. 시리게 파랗던 바다 장면과 대비되어 더 붉게 빛나는 파스타였어요.
그런가 하면 맛있는 마르게리따 피자를 처음 먹었을 때의 충격 또한 꽤나 생생합니다. 마리나라나 마르게리따는 토핑이랄 게 없는 피자이기 때문에 토마토소스의 맛이 관건입니다. 신선하다는 표현이 가장 먼저 떠오를 정도로 토마토의 산미 가득한 쥬시한 맛은 런치팝 스파게티로부터 파생된 "토마토소스=미트 소스"라는 제 편협한 시각을 깨 주었는데요. 덕분에 제 토마토 파스타의 지평도 넓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토마토소스는 곰탕처럼 푹 끓여서 신맛을 다 날리고 진득하게 먹어야만 맛인 줄 알았는데, 아작 깨물면 즙이 흐를 듯한 상큼하고 향긋한 토마토 파스타도 행복해지는 맛이라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평소에 저는 오일파스타를 가장 많이 해 먹는데요, 오일파스타나 크림파스타는 가끔 질릴 때가 있다는 사실에 동감합니다. 그렇다가도 토마토 파스타를 떠올리면 뭐랄까, 빵을 먹다가 밥을 먹는 느낌과 얼추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좀 웃긴 비유이긴 하지만 이를테면 파스타의 근본 같은 느낌이랄까요. (참고로 저는 밥 체질입니다) 실제로도 역사상 가장 처음의 파스타 소스는 마리나라 소스라고도 하니 아예 뜬구름 잡는 감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더욱이 요즘은 파스타 면과 시판 토마토소스만 있으면 조립식으로 뚝딱 만들어 먹기도 쉬운 세상이니만큼 얼마든지 원하는 만큼 토마토 파스타를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입맛 없을 땐 토마토 파스타를 떠올려 보세요. 묵직한 풍미의 토마토 파스타, 산뜻한 미감의 토마토 파스타, 이도 저도 아니라면 맵싸한 향신료와도 잘 어우러지는 토마토 파스타까지 드넓은 선택지가 펼쳐질 테니까요. 입맛이 없어도 스스로를 챙기는 일에는 소홀하지 말자는 무엇보다 중요한 마음가짐을 더해서요.
[해당 내용은 담파스타 레터의 일부입니다. 원문은 아래에서 확인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