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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 Nov 18. 2021

사십춘기 엄마가 사춘기 아들에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암흑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엄마에게 할머니에게 이모와 삼촌들에게 너는 빛이었고 꿈이었고 희망이었고 사랑이었어. 꼬물거리는 너를 가운데 두고 삶을 충전했지. 힘을 얻었고, 웃을 수 있었고, 밥을 넘기고,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어.

 

옹알이 하나에, 꿈틀거림에, 눈을 마주쳐 주는 것에 감사했어. 목을 가누고 뒤집기를 하고 물건을 잡고 서더니 어느 날 우뚝 서서 한 발짝 한 발짝 걸었을 땐 얼마나 기특하던지 엄마와 아빠는 그런 너를 보며 한참을 울었지. 제발 건강하게만 자라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지.

 

립스틱으로 거울에 그리고, 식당에서 뛰어다니고,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도록 말썽을 부리고는 금세 씩 웃어 보이는 널 보며 화보다는 웃음이 났지. 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아이였어.

 

유치원에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생겼다고 고백하는 너는 세상 어떤 남자보다 남자다웠고 멋있었어. 태권도장에서 노랑 띠를 따고 좋아했던 모습이 아직도 선한데 제 몸만큼 커다란 가방을 메고 씩씩하게 등교하던 모습이 아직도 선한데. 시간은 너에게도 엄마에게도 참 빠르게 흐르는 것 같아.

 

어느새 엄마보다 키가 훌쩍 커버렸고 목소리도 굵어지고 힘도 세졌지. 생각도 많아지고 모든 것에 의문을 품고 왜 해야 하는지 답을 찾기 위해 애를 쓰기 시작했지. 엄마의 말이 잔소리가 되고 엄마의 걱정이 한숨이 되기 시작했으니까.

 

근데 아들, 엄마도 마흔이 되면서 너의 사춘기만큼이나 힘든 시기를 겪고 있어. 너의 몸은 혈기 왕성해지고 엄마의 몸은 여기저기 고장 나기 시작하지. 너는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지며 존재에 대한 해답을 찾으며 꿈을 꾸지만 엄마도  다른 존재 이유를 찾아야 하고  다른 꿈을 찾아야 . , 답을   없는 미래에 불안하겠지만 미지에 대한 희망과 설렘이  클거야. 엄마도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길을 찾기 위해 애쓰는 중이야.

 

아들은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엄마는 엄마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해. ‘나는 왜 살지? 나는 언제 행복을 느끼지? 나는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나는 저 사람이 왜 싫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뭐였더라?’ 


아들은 세상에 묻고 세상에서 답을 찾아야 하고 엄마는 엄마에게 묻고 그 답을 스스로에게서 찾아야 해. 너는 그럴 나이고 엄마도 그럴 나이야. 우린 그냥 우리가 할 일을 하는 중이야. 걱정할 것 없어.

 

아들, 엄마가 안 된다고 하면 그냥 무시하고 해. 엄마는 그게 엄마의 일이니까, 너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고 엄마의 의견을 말해줄 의무가 있어. 하지만 아들, 너는 너의 길을 가야 해. 엄마의 말도, 친구의 말도, 선생님의 말도 듣고 참고는 할 수 있겠지만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 그게 맞아.

 

아들, 아들 안에는 어마어마한 것이 있어. 무슨 일이든 다 해낼 수 있는. 누군가의 눈치를 보느라 한 번도 꺼내 쓰지 못한 어마어마한 것 말이야. 그것은 최고의 친구일 수도 있지.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어떤 상황 속에서도 다 이겨버리게 하는 것이 네 안에 있어. 그 녀석과 잘 지내야 해. 두려워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네 안에 있는 그 녀석을 믿어 봐. 그 녀석이 누구냐구? 바로 "용기"야.

 

<톰 소여의 모험>을 쓴 마크 트웨인은 “20년 후 당신은, 했던 일보다 하지 않았던 이로 인해 더 실망할 것이다.”라고 말했어. 지금 엄마 아빠의 반대로 망설이고 있는 것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시작해. 언젠가 엄마처럼 마흔이 되어서 하지 않았던 일을 후회하지 않게. 네 안에 있는 용기라는 녀석을 믿어봐. 불안은 너에게도 있고 엄마에게도 있고 세상 모든 사람들 마음속에 있어. 하지만 용기라는 녀석은 불안을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 지금은 아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고 기도해. 물론 건강하게 자라는 게 먼저지. 기억해. 너는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야.

 

마흔, 엄마도 사랑하는 것을 지키고 , 엄마가 옳다고 믿는 그 모든 것들 또한 지켜내고,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사람들의 눈치 따위 보지 않으려고. 엄마가 하고 싶은 대로 했다고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면 어때? 괜찮아. 엄마는 이제 그런 시선쯤은 이겨낼 수 있는 튼튼한 마음을 가졌어. 용기도 좀 생긴 것 같고. 후회하지 않는 진짜 나다운 엄마가 되어 볼 거야. 사춘기 아들과 사십춘기 엄마, 우리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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