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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 Nov 27. 2021

마흔, 딸에게 쓰는 편지

앵두에게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일일이 보살필 수 없어 엄마를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내 경우는 다르다. 하나님은 혼자 외롭고 울고 있을 나를 위해 딸을 보내주셨다.

 

학원을 시작하고 1년쯤이 지난 어느 날 아침 느낌이 이상하다. 까칠하고 예민한 나는 임신 테스트기도 잡아내지 못 한 내 아이를 감지했다. 아이가 자라기 시작했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당황했다. ‘어쩌지? 학원을 시작한 지 1년밖에 안 됐는데, 이제 자리를 잡기 시작했는데.’ 잠깐 스쳐간 생각이었지만 아이가 들었을까 봐 무서웠다. 힘겹게 자리를 잡고 있는 녀석에게 엄마의 생각은 얼마나 힘 빠지는 소리였을까. 다시 배 위에 손을 얹고 말했다. ‘엄마가 미안해. 엄마에게 와줘서 고마워.’ 그 순간부터 우리의 의리는 시작되었다.

 

 

아이존재를 알고 바로 태명을 지었다. “앵두남편은 아들일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나는 알았다.  녀석은 딸이다. 아마 평생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첫째와는 다르게 앵두는 밤늦게까지 일하는 엄마를  참아 주었다. 입덧도 하지 않고  먹고,  자고, 수업도  열심히 했다. 막달까지 수업을 하고 학원 문을 닫았다. 내가  아이에게 해줄  있는 최고의 선물은 모유 수유와 함께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1 동안 모유 수유를 하고 24시간을 함께 했다. 하지만 돌이 지나고부터 앵두는 시댁에서 컸다. 일요일  헤어질  뽀뽀도 하고 ‘빠이빠이인사도 하며 엄마를  보내줬다.

 

 

2년이 지난 후 앵두가 울기 시작했다. “엄마, 가지 마. 엄마, 앵두가 말 잘 듣을게. 엄마, 왜 오빠는 가고 나는 안가?” 헤어지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앵두를 재우고 가면 좀 더 나을 것 같아 함께 누워 토닥토닥 등을 두드리는데 앵두가 눈물을 그렁거리며 말했다. “엄마, 나 자면 나만 두고 갈 거지?” 지금 껏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앵두를 안고 곧장 집으로 왔다. 기저귀도 갈아입을 옷도 챙길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힘들게 시간을 만들어 부산으로 첫 가족 여행을 갔다. 큰 아이랑 앵두랑 커플 옷도 사고 맛있는 사탕도 초콜릿도 사고 두툼한 털모자도 샀다. 차 안에서는 팝송 대신 동요가 흘러나왔다. 뽀로로와 노래해요는 그때 다 외운 것 같다. 앵두가 돌아왔다. 집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앵두의 애교에 아빠는 쓰러지고, 보호해야 할 동생이 생긴 오빠는 더 름름해졌다. 이 아이는 얼마나 이 순간을 상상했을까? 그리워할 것도 없는 추억을 그리워했을 아이가 너무 아팠다. 아빠와 오빠 사이에서 자고 있는 앵두를 보며 편지를 썼다.

 

 

너와 처음 눈을 마주쳤을 때 알았어.

네가 얼마나 특별한지를.

 

온 우주를 다 담은 것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너는 세상의 모든 아픔과 슬픔을 다 사라지게 하는 것 같았어.

 

너는 온 세상을 밝힐 수 있을 거야.

반딧불이가 여름밤을 밝히듯

환하게 비추며 우리에게 희망을 가져다줄 거야.

 

엉뚱한 말로 유쾌한 행동으로

어둠 속에서 웃음을 잃고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어줄 거야.

 

넌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을 거야.

어린 왕자와 함께 온우주를 여행하며 별을 모으고

흰 수염 고래를 타고 잭 스패로우가 되어 바다를 평정하고

달나라 토끼를 만나 탱고 춤을 추고

나무늘보와 늘어지게 잠을 잘 수도 있어.

 

때론 넘어지기도 할 거야.

너무 아파 엉엉 울고 싶어 질지도 몰라.

 

하지만 걱정할 것 없어.

너에게는 아주 아주 강한 힘이 있거든.

그 힘은 너를 다시 일으켜줄 거야.

그러니까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더 많은 것을 상상하고,

더 많은 꿈을 꾸렴.

 

너는 세상 모두와 친구가 될 수 있어.

언제나 너와 함께 하고 싶어 하고

항상 널 응원하고

늘 다정한

친구들이 너의 주변에 넘쳐날 거야.

 

너의 마음속에는 엄마도 아빠도 알지 못하는

엄청난 것들이 숨겨져 있어.

매일매일은 그것을 찾는 보물찾기 게임과 같아.

너에게 숨겨진 보물을 찾아내며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용기와 믿음이 생겨날 거야.

 

이것 봐.

네가 존재하기 때문에

세상은 이 만큼 더 밝고 즐겁고 행복해졌어.

네가 있어서 엄마는 행복해.

 

 

마흔, 믿고 의지할 친구가 필요하다. 인디언들에게 친구란 자신의 슬픔을 자기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이라고 한다. 친구를 얻는다는 것은 하나의 세상이 오는 것만큼 대단한 일이다. 더군다나 자신의 슬픔을 대신 짊어지고 가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진정한 친구를 얻는 것이 천금을 얻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늘 어린아이인 줄 알았던 아이가 어느새 자라 나를 위로한다. 편이 되어주고 든든한 아군이 되어준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가 옳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하나 더 생겼다. 까칠하고 예민해 친구도 제대로 사귈 줄 모르고 관계를 잘 맺지도 모르는 나에게 하나님은 앵두를 보내주셨다. 나의 딸, 나의 친구가 있어 마흔도 문제없이 버텨낸다. 누가 뭐래도 내편 되어줄 사람 하나만 있으면 성공한 마흔이다. 앵두, 엄마를 성공한 사람으로 만들어줘서 고마워. 네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엄마는 널 응원해. 사랑해,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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