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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 Nov 05. 2021

마흔, 나는 그냥 나로 살기로 했다

#마흔 #마흔의깨달음 #마흔이어때서 #자신과마주하기 #마흔의품격

내가 가진 것은 뒤로한 채 남이 가진 것만 동경하며 내가 갖지 않은 것을 가지려 노력했다. 나와 다른 사람들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나에게 상처를 입히고 그 상처를 치료하기는커녕 오히려 덧나도록 내버려 두며 모른 척했다.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내가 미워 더 상처를 내기도 했다. 여전히 그런 나에게 화가 나고 짜증이 나지만 어쩔 수 없음을, 나는 그런 사람임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이젠 내가 갖지 못한 것들과 내가 가진 것의 부족함에 더 이상 나를 아프게 하고 싶지 않다. 40년을 그렇게 살았으면 이젠 됐다 싶다. 그래서 "내가 가진 것”을 즐거운 시선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아이들이 내 손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컸고  잘 사는 것은 아니지만 사는 형편도 좀 나아졌다. 나에게 눈을 돌릴 수 있는 틈이 생기기 사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 또한 마흔이라는 시간이 부리는 마법 같다.


예민한 성격 덕분에 남들이 그냥 지나치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혼자 감명을 받아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남들이 웃지 않은 일에도 박장대소하고 만화 영화를 보면서도 눈물 콧물 흘리며 울기도 한다. ‘노팅힐’, ‘트와일라잇’, ‘어바웃 타임’을 열 번도 더 봤으면서도 여전히 눈물 콧물 범벅이 된다. 뭐 하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는 까칠한 성격 탓에 같은 상황도 이해가 될 때까지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모든 사람이 좋아할 성격이 아닌 것은 확실하고 사회생활을 하는데 적합한 성격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예민하고 까칠한 성격은 제법 도움이 됐다.


책을 읽을  작가의 의도를 살피는데 촉을 세웠고 글을 쓰기 위한 소재를 생각해 내는데 세상에 예민한 것보다 좋은 방법없었다. 그냥 지나쳐버릴  있는 것들을 잡아내는 까칠함이란. 글을   있는 소재를 발견하는 기쁨은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힘들게 했던 까칠하고 예민한 성격 덕분이었던 것이다.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에 소개된 ‘봄날의 개’는 슈퍼 옆 공터에 작을 목줄로 묶여 있다. 낮 동안은 동네 아이들과 신나게 놀지만 밤만 되면 낑낑 거리며 울었다. 사실 봄날의 개는 목줄을 풀고 봄 햇살 가득한 들을 뛰어다니고 싶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줄에 묶여 있던 봄날의 개는 목줄을 끊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봄날의 개는 너무 마음이 아파 밤마다 낑낑 거리며 울었다.


오랫동안 숨기고 싶었던 예민함과 까칠함은 봄날의 개 목줄과 같았다. 너무 한참을 숨기고 살아서 그것이 나만의 비기였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예민함으로 보통의 것에서 새로움을 찾아냈고 까칠함으로 지나칠 수 있는 좋은 소재들을 건져 올릴 수 있었다. 그런 비기가 장착된 나를 숨기고 탓하며 살아왔으니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끙끙댔던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매일 새로운 시선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같은 모습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그래서 글을 쓸 소재가 끊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끙끙 앓는 소리를 낸다. 하지만 전혀 다른 모습의 앓는 소리다. 새로운 것들을 느끼고 생각하고 써내느라 앓는 소리다. 복에 겨운 앓는 소리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행복한 앓는 소리를 내며 나는 진짜 나로 살 수 있게 되었다.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으므로 타인과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나답게 살게 되었다.


이젠 너무 익숙해 목줄이 있어야 안심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목줄을 맨 채로 온전히 자신으로 살 수 없다. 진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진짜 가고 싶은 곳에 가기 위해서는 목줄을 인식하고 끊을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평생 끊을 수 없을 것 같던 줄을 끊고 나면 너무 아무것도 아니라 오히려 허무하기까지 하다.


숨기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꺼내어 보인다는 것은 발가벗겨지는 것과 같은 수치심이나 부끄러움을 갖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감당하고 나면 자유롭고 온전히 나다운 삶을 살게 된다. 목줄을 끊어냄으로 나다움을 지켜내는 것이다. 나는 그냥 나로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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