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작가 Nov 15. 2021

마흔, 고길동이 애틋해지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아기 공룡 둘리>를 봤다. 전에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둘리의 행동을 즐거워하며 봤다. 둘리처럼 마법을 부릴 수 있다면 어떤 마법을 부릴까? 어쩜 매일 저렇게 새로운 놀잇거리를 찾아 놀 수 있을까?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그리고 기쁨을 주는 만화라고 생각하며 감탄하곤 했다. 하지만 마흔을 넘어선 지금 내 눈에는 둘리가 아니라 고길동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 내 나이쯤으로 보이는 고길동과 같은 입장이 되어 둘리를 보고 있었다. 전엔  둘리에게 화를 내고 고함을 지르고 짜증을 내는 고길동이 답답하고 미웠다. 하지만 지금은 고길동의 입장과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둘리뿐만 아니라 도우너, 또치까지 알지도 못하는 동물들이 나타나 자기 집인 것처럼 행동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말썽을 부린다. 갑자기 굴러들어 온 객식구가 셋이나 생겼다고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 거린다.

 

 마흔, 보이지 않던 게 보이는 나이.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을 느끼는 나이. 이해할 수 없었던 일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나이. 알 수 없었던 일을 알아가게 되는 나이.

 

마흔의 언덕을 넘어선 지금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지키고 보호하며 먹이고 입히는 (입히지는 않았다. 그 애들은 옷을 입지 않으니까.) 고길동이 숭고하고 대단해 보이기까지 하다. 고길동이 불쌍해지기 시작하면 어른이라고 하던데 나는 어른이 된 것일까? 고길동은 인간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고 알지도 못 하는 말썽꾸러기들을  받아준다. 당장이라도 쫓아낼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고길동은 그들에게 보호자고 어른이 되어주기로 한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냥 나이만 먹는 것이 아니다. 보호자로서 누군가를 지켜낼 수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고 가족이 아니어도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라면 자신을 희생하고서라도 지켜내는 것이 어른이다. 고길동은  갈 곳 없는 말썽꾸러기들을 내치지 못하고 그들을 먹이고 재우며 보호하고 있었다. 어른이었던 것이다.

 

 

마흔, 어른의 나이. 가족도 친구도 아니지만 보호가 필요한 누군가를 위해 희생과 책임을 다 할 수 있어야 한다. 이타적인 마음이라 이름 붙이고 나면 부담이 될 테니 스스로 마음 편하고자 하는 숙제 같은 거라고 생각하자. 하고 싶지 않지만 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자신의 삶이 혼자만의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가 하고 있는 행동이 지금 나의 삶을 한층 풍요롭게 한다는 것쯤은 알 수 있는 나이다.

 

 오늘도 고길동은 둘리 무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겠지만 여전히 어른의 마음으로 그들을 기꺼이 품어낼 것이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는 그리고 40 문턱을 넘어서고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품을  없을  같은 마음을 품을  있게  된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품을  없는 것까지 품어내는 오늘의 고길동들을 응원한다.

이전 08화 마흔, 빌리 아빠의 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