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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 Nov 16. 2021

마흔, 빌리 아빠의 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에는 의미를 두지 않고 넘겼을 것들이 마흔을 넘긴 나에게 새롭게 다가와 닻을 내리기도 한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다시 보며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것보다 더 깊은 감동을 느꼈고 그때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게 되면서 그 감동이 더해졌던 것 같다. 빌리의 표정, 빌리의 행동, 빌리의 상황, 빌리의 마음에만 온통 신경을 쓰며 그 어린아이가 꿈을 이루는 과정을 지켜보며 즐거웠다. 너무 가난해 추위를 피하기 위해 아내가 유품으로 남긴 피아노를 부숴 땔감으로 사용하는 아빠가 빌리의 꿈을 좌절시킬까 봐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영화를 봤는지 모른다. 가난한 사람은 꿈을 꿀 수 없다고 이야기할까 봐 두렵기까지 했다. 하지만 영화는 세상 모든 어린이들에게 꿈을 꿔도 된다고 말해줬다. 참 대견하고 뿌듯한 영화였다. 그렇게 빌리는 가난했지만 꿈을 이뤄낸 멋진 소년으로 마음속에서 오래오래 함께 했다. 그런데 지금은 빌리보다는 빌리의 아빠 입장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답답하고 고지식하던 아빠의 눈빛이 자꾸만 생각났다. 엄마의 피아노를 부수던 아빠의 눈빛, 빌리가 발레 하는 모습을 본 아빠의 눈빛, 빌리를 이해하게 된 아빠의 눈빛, 빌리가 합격했을 때 아빠의 눈빛, 버스를 타고 떠나는 아들을 보는 눈빛, 배신자가 되어 다시 탄광으로 향하던 아빠의 눈빛, 빌리가 하늘 높이 점프했을 때 아빠의 눈빛이 내 마음에 닻을 내렸다. 

 

 

마흔이 넘어선 나는 이제 그를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눈빛의 의미를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땔감이 없어 아내의 피아노를 부셔야 했고 자식에게 좋은 교육을 시킬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고 무지했고 무감각해 보였던 아빠. 가족을 지켜내기 위해 어떻게든 혹독한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내의 피아노를 부수는 일 밖에 없었을  때 아빠의 마음이 어땠을지. 모두를 배신하고 아들의 교육비를 내기 위해 혼자서 탄광에 들어갈 때 아빠의 마음이 어땠을지 그 마음을 알 것 같아 영화가 더 깊이 다가온다. 

 

도시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냐는 빌리의 물음에 “그곳엔 탄광이 없잖아.”라고 말하던 아빠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그는 태어나서 한 번도 탄광을 벗어나 살아본 적이 없다. 그에게 탄광은 세상이고 전부였던 것이다. 고향을 떠나본 적도 없고 탄광 밖에 모르는 고지식한 그에게 남자가 발레 복을 입고 발레를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어 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식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세상을 무너뜨리고 지금까지 지켜오던 가치관을 깨고 받아들인다. 


빌리는 자신의 꿈을 찾아 더 높이 더 높이 점프할 수 있었지만 빌리의 아빠는 다시 탄광 속  아래로 아래로 더 깊은 밑바닥으로 내려 갈 수밖에 없었다. 빌리 아빠의 기쁨과 탄식을 그리고 그의 외로움과 아픔을 더 깊이 공감할수록 <빌리 에리어트>는 내 가슴속에 더 깊이깊이 닻을 내린다.

 

 마흔, 전보다 더 예민하게(아니 섬세하다고 해야 하나) 더 깊이 있게 그리고 폭넓게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되고 느낄 수 없었던 것을 느끼게 된다. 내가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다는 오만 속에서 살았지만 사실 세상이 나를 봐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누군가에게 욕먹을까 두려워하지 못했던 일들을 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나이 드는 것은 그렇게 두렵고 무서운 것만은 아닌 것같다. 오히려 상처를 받아들이고 치유할 수 있는 지금의 나이가 좋아진다. 오롯이 지금에 존재하며 살아갈 수 있는 마흔의 내가 기특하고 이쁘고 애틋하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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