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눈부셨다”는 대사를 남긴 도깨비는 내 삶이 좋아서 때론 좋지 않아서 그리고 적당이 좋아서 눈부셨다는 것을 알게 한 드라마다. 드라마를 좋아하진 않지만 한 번 꽂힌 드라마는 보고 또 보고 또 또 또 본다. 도깨비는 그런 몇 안 되는 드라마 중 하나다.
“망각은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배려다.” 신은 우리에게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주고 또 그 시련이 닥쳤을 때 그 피할 길을 예비해 놓으셨다고 한다. 거기다 망각할 수 있는 축복까지 선물해줬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뭐가 있을까? 어차피 실현은 예고되어 있고, 그 시련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힘이 우리 안에 존재한다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도망치기가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몸과 마음을 최대한 가볍고 편안하게 내버려 두는 것이다. 잊어버릴 것은 빨리 잊고, 보내냐 할 것 또한 보내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느라 애쓰지도 말고 지금을 그냥 사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불행만 계속되지도 않고 끝나지 않는 고통은 없다.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 만큼 커다란 고통이 닥쳐와도 우린 여전히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이야기하고, 때론 웃기도 하며 잊고 또 살고 또 잊고 하며 살아간다. 우리에게 망각이 없었다면 지금 느끼는 행복도 희망도 기쁨도 즐거움도 삶도 지금의 나도 현재도 있을 수 없다. 좋은 것을 추억하며 기억하는 것도 좋지만 때론 잊어야 할 것을 잊고 보내야 할 것을 보내는 망각이 필요할 때가 있다.
어니 젤린스키 <모르고 사는 즐거움>에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을 했다. “걱정의 40퍼센트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 일이고, 30퍼센트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며 22퍼센트는 너무 사소한 것이고, 4퍼센트는 우리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4퍼센트만 우리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하루 종일 밥을 먹으며 사워를 하며 커피를 마시며 걸으며 때론 일을 하면서도 하는 모든 걱정거리들이 사실은 하나마나한 것들이었다니 배신감마저 들었다.
마흔,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걱정해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4퍼센트라면 머리에 쥐가 나도록 고민하고 애쓰고 걱정해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인가? 이미 지난 것에 대한 후회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아까운 내 4퍼센트를 포기할 순 없다. 잊을 것은 잊고 보낼 것은 보내버려야 내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4퍼센트에 집중할 수 있다.
“신은 그저 질문하는 자일뿐,
운명은 내가 던지는 질문이다.
답은 그대들이 찾아라.”
마흔, 이제 더 이상 내 삶에 대한 답을 다른 것으로부터 얻으려 하지 않는다. 내 삶의 주인은 나고 나에게 던져진 질문에 대해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나에게 주어진 답은 내 안에 있고 오직 나만이 답할 수 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가벼워진 나로 오늘을 사는 일뿐이다. 나는 그저 나 자신이 지금 살 수 있는 삶을 살며 지금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고,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