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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 Nov 06. 2021

마흔,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도

내 마음이 몇 평인지 가늠이 되지 않지만 그 안에는 역시 가늠이 안 되는 여러 개의 방이 있다. 새로운 생각이나 가치가 생겨날 때마다 마음속 방은 늘어난다. 설레는 마음으로 입주를 시작하지만 입주했다고 해서 그 감정이나 생각 그리고 가치가 바로 자리를 잡지는 않는다. 입주 청소도 해야 하고 필요하면 리모델링도 해야 한다. 이사를 했을 때 잠도 설치고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듯 마음속에 방을 차지한 생각이나 관념 그리고 가치는 그 성격에 맞게 방을 꾸미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방만 크게 차지하고 아직 도배도 하지 못한 운동이 있다. 일단 방은 배정받았으니 차근히 자리를 잡기만 하면 된다. 언젠가는 운동방이 가장 활기찬 방이 되길 바란다.


아직도 마음속에는 뭐라 이름 붙이기 어려운 것들이 자신의 방을 갖기 위해 서성이고 있다. 아마 시간이 지나 그 알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하게 되면 그것들에 이름을 붙여 방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방을 차지하고 있지만 전에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개념, 가치 그리고 많은 감정들이 있다.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때 알았더라면 지금 내 삶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지금 알 수 있는 감정들을 그때 말해줬다면 알았을까? 가슴이 하는 말에 더 귀 기울이고 더 즐겁게 살고 고민도 덜하며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하며 살 수 있었을까?


지금 내가 새로운 감정의 방을 내어줄 수 있었던 것은 세상을 살아가며 고민도 하고, 초조해하며 덜 놀고, 덜 자고, 덜 쓰며 튼튼히 다져 놓은 내공이 쌓인 덕분이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의 나에게 말해줘도 그때의 나는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고 세상을 살아내느라 바빠 들으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20,30대 전투적인 삶을 살았다면 마흔이 되면서 조금은 안정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 여러 가지 감정들에게 방을 내어줄 수 있을 만큼 마음의 크기가 넓어졌다. 아마 전쟁 같은 삶을 살아내며 조금씩 마음을 넓히는 연습을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전 같았으면 자존심 때문에 누구에게도 나의 실패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실패에 대해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함께 나누고 함께 고민하며 다음에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실패를 아무렇지 않게 고백하고 나눌 수 있는 방을 하나 더 만든 것이다.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은  그때의 나에게 말해 준다고 해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은 지금이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들이다. 누군가 말해준다고 해서 알아지는 것이 아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마흔이라는 시간의 무게를 받아들이고 즐기기로 했다.


마흔,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에 충실하며 지금 해야 할 고민들을 미뤄두지 않을 것이다. 진정 잘 사는 삶이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것임을 기억하며 마흔이 된 삶 안에서 진정한 나로 바로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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