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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 Nov 23. 2021

마흔, 나에게 안부를 묻다

요즘 아침에 일어나 하는 일은 나에게 안부를 묻는 일이다. “잠은 잘 잤어아픈 곳은 없고기분은 어때오늘은 좀 쉬엄쉬엄 할까?” 전보다 더 자주 아프고 더 많이 아프다. 그리고 낫는 속도는 한없이 더디다씩씩하고 어른스럽게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몸보다 마음이 더 문제다상처를 덜 받는 방법을 터득해서  쉽게 상처 받지 않고, 전보다 덜 아프고, 덜 상처받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나 보다. 언제나 그랬듯 마음은 연기를 아주 잘한다. 자신은 괜찮은 척 아프지 않은 척 연기를 한다. 몸은 아프면 눈물도 나고 피도 흘리며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하지만 마음은 늘 괜찮은 척 아프지 않은 척 거짓말을 한다그리고 모두 잠든 조용한 밤이 되면 그제야 혼자 앉아 끙끙거린다. 밤새 아무도 모르게 끙끙거리다가 아침이 되면 아무렇지 않은듯 일어나 연기를 시작한다언제나 '괜찮다'는 자기 최면에 걸려, 괜찮지 않은 마음은 있을 곳을 찾지 못하고 깊이 숨었다가 모두가 잠이 든 밤이 되면 끙끙거리며 스스로를 치유한다


혼자 아파하는 나를 발견한 것은 마흔쯤이다몸이 아픈 것인 줄 알았는데 몸이 아니었다. 자신을 들켜버린 마음은 지금까지의 서러움과 원망을 한꺼번에 터트린다. ‘이거 오래가겠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결심했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바뀌는 녀석의 투정을 다 받아주기로 한다화를 내면 그 화가 풀릴 때까지 맛있는 것도 먹고짜증을 내면 그 짜증이 풀릴 때까지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외롭다고 하면 훌쩍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런 호사를 누려보지 못했던 녀석은 처음엔 당황하며 적응하지 못했다. 자신을 위해 이렇게 시간을 써도 될까? 자신을 위해 이렇게 돈을 써도 될까? 자신을 돌보느라 다른 사람을 돌보지 않아도 될까? 기쁘고 좋은 마음과 불안하고 걱정되는 마음이 공존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제대로 누리지 못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마음도 자신을 위한 시간을 온전히 누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마음은 스스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엄마는 사춘기 때도 부리지 않는 성질을 낸다고 유난스럽게 마흔앓이 한다고 핀잔을 하셨지만 몸과 마음이 성장하기 위해선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을 피해 마음에 이곳저곳 피난처만 만들지 않고 그 마음을 들여다보고 알아봐 주는  또 다른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내가 만약 외로울 때면 누가 나를 위로해 주지?' 복희 언니는 위로해줄 '여러분'이 있지만 나에겐 내가 있다. 내가 외롭고 아프고 쓸쓸하고 힘들 때면 누구에게든 달려가 주저리주저리 읊어대며 의지할 곳을 찾았지만 마흔, 이제 나는 스스로를 치유하고 위로할 수 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나를 지킬 수 있는 자유의지가 생겼다. 

 

 

나 이제 어떻게 하지나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맞아나 이대로 괜찮을까?’라고 묻고 싶지만 쓸데없는 자존심에 도움을 구하지도 못 한다도대체 어디서부터였을까언제부터였을까아무리 마음속 시계를 되돌려봐도 알 수가 없다공연히 들여다본 마음속에는 공허함과 실패감이 이었다허무한 생각만 들고 공허한 마음만 들고 실패한 것들만 힘들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만 잔뜩 보였다그런 오만가지 것들을 마음에 품고 나는 또 연기를 한다괜찮은 척 아프지 않은 척 끄떡없는 척. 인생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숨기며 일도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 앞에 서서 모노드라마를 찍는 것이다


마흔, 매일 아침 나에게 안부를 묻는 것은 더 이상 혼자 모노드라마를 찍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누가 날 들여다 봐주지 않아도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위로도 하고 격려도 하고 칭찬도 해줘야 한다. ‘오늘 기분은 어때? 나가서 드라이브라도 할까? 돈 걱정하지 말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 마실까?’ 이제부터 나는 내가 지킨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고 내 드라마의 조연들도 내가 정한다. 드라마의 모든 과정을 내가 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는 건 많은 것을 의미한다. 내 삶을 내가 정할 수 있고 되지도 않는 연기를 할 필요도 없다. 선택에 대한 책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남을 탓할 궁리부터 하지 않게 된다. 언제나 그랬듯 삶은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다 이루어져라. "디비디 바비디 부" 마법을 걸어도 소용없다. 스스로 선택해야 하고 행동해야 하고 책임져야 한다. 그래서 내 삶을 계획하고 선택하고 매 순간 노력하는 나에게 오늘도 안부를 묻는다. 아프지 말고 우리 오래 함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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