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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한 달빛 Jul 27. 2021

가끔은, 원초적 질문

문학아! 너라면? ⑥ - 파블로 네루다 시집 <질문의 책>

평소 질문을 하는 것과 질문을 받는 것에 익숙지가 않다. 질문을 한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관심과 궁금증이 있어야 한다. 질문을 받는다는 것은 상대방이 원하는 답에 가까운 대답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긴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는 것은 분명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어째 호기심의 범위는 점점 협소해지고 엉뚱한 상상들은 어느새 타인을 의식하며 진부해진다.


또한 '질문'을 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에 반기를 드는 것이고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는 고정관념을 밀어내는 순간이 된다. 그래서 적잖은 용기가 필요하고 무덤덤해진 감각을 깨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상을 볼 준비를 해야 한다.


'시'를 좋아하지만 한 편의 '시'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은유적 표현의 시적 언어가 나의 상황과 맞닥뜨리면 한 편의 시는 여러 말보다 깊은 울림을 준다. 파블로 네루다의 316개의 물음. 각각의 물음들이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이 신비롭다.


눈물은 아직 풀지 않은 채
작은 호수들에서 기다릴까?

아니면 그들은 슬픔을 향해 흐른
보이지 않는 강들일까?

- <8> -


질문을 던지는 순간은 관습으로 무장한 두꺼운 갑옷을 벗어던지고 날 것 그대로의 순수했던 어린아이가 되기도 한다.


태양은 어제와 같은 것일까
아니면 이 불은 그 불과 다를까?

우리는 구름에게, 그 덧없는 풍부함에 대해
어떻게 고마움을 표시할까?

뇌운은 그 눈물의 검은 부대들을
가지고 어디서 오는 것일까?

작년의 과자처럼 달콤한
그 모든 이름들은 어디 있을까?

- <9> -


늘 그 자리에 존재해서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새삼스럽게 내 마음속으로 다가오면 그래도 이 세상은 살만하다는 생각으로 또 그렇게 살아진다.


지상에서 누가 일을 더 열심히 할까 인간일까
아니면 곡식의 태양일까?

전나무와 양귀비 중 누구를
땅은 더 사랑할까?

난초와 밀 중에서는
어떤 걸 더 좋아할까?

왜 꽃은 그렇게 풍부하고
밀은 지저분한 금빛일까?

가을은 합법적으로 들어서나
아니면 그건 언더그라운드 계절인가?

- <73> -


생의 마감을 앞둔 시인은 자신에게 '죽음'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죽음은 피할 수 없기에 두렵고 무섭다. 하지만 질문을 던지면서 죽음도 삶의 일부이고 지금의 삶과 맞닿아있음을 느끼게 된다.


죽음의 통로를 끝까지
간다는 건 뭘 뜻하나?

소금 사막에서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바다에서
입고 죽을 옷은 있을까?
 
뼈들도 사라져 버리면
마지막 먼지 속에는 누가 사나?

- <62> -



파블로 네루다 <질문의 책>



네루다의 질문들을 읽으며 엉뚱한 상상력을 가진 아이가 되어 본다. 그리고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그의 깊은 사유에 감탄하게 된다. 무엇보다 나에게는 없다고 느꼈던 상상력 충만만 어린아이가 잠시 되살아나서 적어도 읽는 동안만큼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 모리스 샌닥은 내 안에 존재하는 어린아이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한다.


"나는 그 옛날 어린아이였던 내가 지금의 나로 자라났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 아이는 여전히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내게는 가장 생생하고, 구체적이고, 육체적인 방식으로 말입니다. 나는 그 아이에 대해 엄청난 관심과 흥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 아이와 대화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내게 가장 두려운 것은, 그 아이와의 소통이 단절되는 일입니다." <이봉희, ⟪내 마음을 만지다⟫>



천장에 붙어서 꼼짝 않고 있는

달팽이는 지금 행복할까?


평온해 보이는 숲 속의 생명들은

침입자가 나타나면 어떤 기분이 들까?


새들은 하늘을 날 때 사람들이

자신을 우러러보는 것을 알까?


더러운 연못에서 핀 연꽃은

정말 자신의 운명을 좋아할까, 싫어할까?



평소라면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엉뚱한 생각들이 네루다의 '질문의 책'을 읽으니 저절로 생긴다. 문득 '나만의 질문 책'을 만들어 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가끔은, 어른인 내가 아이처럼 엉뚱한 질문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질문을 던진다고 해서 반드시 답을 찾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답을 찾는 일보다 단단하게 굳어 버린 사고의 틀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줄 질문들이 나에게는 더 필요해 보인다.


네루다의 질문처럼 내 안에 있던 그 아이를 찾아보는 일, 꽤 흥미롭고 즐거운 일이 될 것 같다.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 <44> -





참고 도서

이봉희, 내 마음을 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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