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여자가 내가 사는 빌라 건물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준이 가영이네 집의 벨을 눌렀을 때는 이미 가영이네 엄마가 집에 도착한 이후였다. 결국, 이준은 그날 가영이네 집에 들어가지도 못했고, 문 앞에서 명함을 하나 건네주고 왔을 뿐이었다.
“엄마는 아마 평소와 좀 다를 거예요.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꼭 내게 전화하세요.”
이준은 가영이가 자신을 경계한 것은 아마도, 폭파범들이 입고 있던 것과 같은 수도사 복을 입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했다. 서울 시민 대부분 이 옷을 입은 사람들을 경계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이 올 거야. 돌아온 실종자들은 대부분 다시 사라지니까. 서류에 보니까, 가영 씨 엄마도 고아였고, 가족이 따로 없어서 도움을 요청할 만한 데가 없어. 일단 명함을 주고 가야겠어. 다시 전화하기 전까지만 나를 신뢰하게 살짝 수를 써놓고 가는 게 낫겠네.’
가영은 명함을 받는 순간, 명함 끝 부분이 어쩐지 반짝 거린다고 생각했고, 이상하게도 이준에게 믿음이 갔다. 그래서 명함을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준이 예상했던 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가영이가 전화를 했다.
“엄마가 또 사라졌어요!”
오늘에서야 이준은 가영이네 집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가영이 말을 들어보니, 살아 돌아왔던 엄마는 다른 생존자들의 행동과 아주 비슷한 양식을 보였고, 사라질 때도 마찬가지였다. 집 안에는 싸운 흔적과 핏자국이 있는 채로 엄마가 갑자기 사라졌다고.
이준은 집안을 둘러 보았다. 손톱과 비슷한 것으로 방문을 긁은 자국도 사진을 찍고, 문 부스러기를 채취했다. 바닥에 튄 그 핏자국은 역시나 201호 바닥에 흥건했던 피와 아주 유사해 보았다.
‘분홍색 피다.’
이준은 샘플을 채취하였다. 그리고 벌벌 떨고 있는 가영에게 말을 걸었다.
“가영 씨. 이 집에 있는 게, 위험할 수도 있어요. 강도인지 테러범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또 올 수도 있어요. 오늘은 저와 함께 협회로 가시죠.”
가영이는 순순히 따라 나왔다. 이준은 가영을 협회 관악지부 라운지로 데려왔다.
주민 씨는 다 알고 있다는 듯, 쪽지와 키를 가영에게 건네 주었다. 쪽지에는 ‘11층’이라는 글자와 함께 방 번호가 적혀 있었다.
“아, 11층은 손님들을 위한 방들이 있어요. 호텔하고 비슷할 거에요. 가영 씨처럼 돌연변이 때문에 위험해진 사람들을 위한 숙소예요. 올라가셔서, 거기, 방번호 적혀 있지요? 그 숫자가 적인 방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언제까지 있어도 되나요?”
“하루 이틀 묵어도 되고, 몇 년이고 묵어도 됩니다.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학교에 가야하는데요.”
“일상 생활은 똑같이 하세요. 여기서 학교에 다녀도 됩니다. 여기서 출퇴근하는 사람도 있어요. 안전해질 때까지 여기서 생활하세요.”
울먹이는 가영이를 뒤로하고 이준은 밖으로 나왔다. 라운지에는 여전히 주민 씨가 정보를 취합하고 있었다. 개자식은 퇴근했는지 자리에 없었다.
“주민 씨! 가영 씨 잘 부탁해요!”
부탁해서 달라지는 게 있을까. 가영이는 그냥 이 시간을 견뎌내는 게 전부일 것이다. 다만 이준이 조금이라도 빨리 정보를 찾고, 일을 해결하면 가영이의 슬픔이 끝날 수도 있다.
‘이제 밤샘 작업이라도 해서 빨리 끝내야 겠다!’
빠른 걸음으로 집에 돌아온 이준은 분석 자료를 보며, 비슷한 사례들을 찾고 찾았다.
그러다 새벽 1시가 되기 전, 잠시, 이 좁은 빌라 내부가 너무 어지럽다고 생각했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유품, 할아버지의 유품까지 오롯이 보관하고 있는 이 좁은 집에, 서류 뭉치가 돌아다니니, 여간 복작복작한 게 아니었다.
‘할아버지 방까지 어지러워지겠어. 살아 계실 때에도 깨끗한 거 좋아하셨는데 말이야.’
이준은 파쇄한 서류들을 한번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종이조각들을 분리수거 봉지에 담아 터덜터덜 분리수거장으로 가서 쓰레기를 버릴 때였다. 이상스레 썩는 냄새가 났다. 이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때였다. 얼마 전 죽은 201호 여자가 이준 눈 앞으로 지나갔다. 여자는 이준과 눈이 마주칠 듯 말 듯 스쳐 지나갔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준 눈은 절대 속일 수 없다. 분명, 201호 그 여자였다.
설마, 설마 하며 다시 휴대전화를 켜 보았다. 여전히 ‘샤로수길 살인사건’이 게시판 마다 난리였다. 범죄 현장 사진도 숱하게 돌고 돌았다. 이 정도 대량 출혈이면 확실히 죽은 게 맞다. 분명 죽었을 것이다. 그 죽은 여자가 방금 자기가 살던, 그러니까 이준도 살고 있는 빌라 건물로 들어간 것이다.
착각일 리가 없다. 딱 이준이 사는 빌라에 살던 그 여자. 어느날 누군간에게 무참히 살해되어 바로 이 쓰레기장 앞으로 실려 갔던 그 여자. 현관문이 온통 폴리스라인으로 폐쇄된 그집에, 바닥에 온통 고여 있던 피가 이상해서 이준이 조사 중인 그 여자.
여자가 지나간 곳마다, 센서등이 켜지는 것을 이준은 지켜 보았다. 주출입구에서 켜진 등은, 1층 복도에서 켜지고, 1층에서 2층을 오르는 계단실에서 켜졌다. 둥그런 계단실 창문엔 사람의 그림자는 비치지 않고, 등만 켜졌다. 여자가 살던 2층까지만 불이 들어왔다.
이후로는 더 이상 반응이 없었다.
이 번화가에 있는 빌라는 오늘따라 대단히 고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