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4 : 샤로수길 살인 사건-(3)
다음날 아침, 이상스레 웅성웅성한 소리에 이준은 깨어났다. 거실 창문으로 빌라 마당을 내다보니, 경찰들이 잔뜩 오가고 있었다. 유튜버들도, 동네 사람들도 와글와글했다.
예상했던 일이다.
이준은 담배 하나를 피우며 그 광경을 보고 있다가, 슬며시 옷을 입고 계단을 내려갔다. 둥그런 창문이 달린 계단실엔 전에 없이 사람들이 잔뜩 들어차 있었다.
201호 현관문은 폴리스 라인으로 폐쇄되어 있었다.
‘201호 여자, 아주 폐쇄적이었는데, 그렇지 않아도 빌라 사람들이 자꾸 괴롭혔었는데…. 죽어서까지 사람들이 귀찮게 하네.’
아직 협회에서 팩스가 온 것이 없었다. 보통 몇 시간이면 분석이 다 끝나고, 간단한 것은 몇분이면 끝나는데, 이번 건은 좀 오래 걸리나보다. 이준은 주머니에서 수도승 옷을 꺼내어 입고 협회로 갔다.
‘흔치 않은 액체라는 뜻이겠지. 역시, 그냥 피가 아니었어.’
협회 라운지에 들어서자마자 이준은 또다시 주민 씨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늘도 주민 씨는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상관 없었다. 이준은 그저 주민에게 반갑고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을 뿐이니까. 그것만 전달되면 되는 것이라고, 이준은 생각했다.
“주민 씨! 혹시 결과가 나오면 알려주세요!”
대답 없는 주민 씨를 뒤로 하고, 이준은 라운지에 있는 커피머신에서 에가체프 커피 한잔을 받아 얼음을 잔뜩 부은 뒤 창문 앞 의자에 앉았다.
핸드폰을 켜보니 블로그와 유튜브, 인스타그램 할 것 없이 ‘샤로수길 살인사건’ 소식이 쏟아져 나왔다. 워낙 요란하게 실려간 데다, 현관문이 뜯겨져 실내가 훤히 보이는 터라 벌써 구경꾼 여럿이 다녀 간 것 같다.
‘당분간 시끄럽겠어요. 201호. 유미 씨 던가? 이건 제 힘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인간의 소문이란, 아주 특이해서 어지간한 약으로는 잠재울 수가 없거든요.’
커피를 마시면서 창문을 내려다보려는데, 협회 연구원인 ‘지환’이 말을 걸었다.
지환은 절반 쯤은 프리랜서 개념인 일반 협회원과는 달리 일종의 직책이 있는 연구원이었다. 매일 출근도 했다. 9살 때 대학 과정을 마친 천재라고들 했다. 원래는 새로운 생물을 연구하려고 협회에 들어왔다가, 연식이 오래되다 보니 승진을 거듭하다가 이제는 관악지부장이 된 것이다. 매일 출근해서 새로 들어온 모든 정보를 검수하고, 협회원들에게 지령을 전달하기도 하고, 업무를 나누어 주기도 하고, 새로운 가상 세계를 만들고 탐구해서 현 세계의 해답을 찾아 내기도 하는, 여러모로 바쁜 연구원이었다.
워낙 바쁘다보니, 보통 협회원들과 말을 잘 섞지 않는다고 하던데, 의외였다.
“이준 씨! 여기 계셨네요!”
“아, 지환 씨, 무슨 일인가요?”
“어제 접수하신 그 샘플, 제가 받아봤어요. 아주 독특하던데요?”
“결과가 아직 안 나왔길래, 뭔가 특이한 게 있구나 했어요.”
“그거, 변종 생물의 피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게, 못보던 게 아니예요. 아주 잘 알려진 곤충의 피와 사람의 피가 섞인 것 같아요. 거의 반반씩 섞여 있는 통에, 색이 흐렸던 겁니다.”
“바닥이 온통 피범벅이었는데, 그 중 절반이 곤충의 피였다구요?”
“맞아요. 흔한 변종은 아닌 것같고, 일부러 만든 변종 같습니다. 그래서, 상부에서 지령이 하나 나왔습니다.”
“지령이요?”
이준은 지환이 건넨 종이를 열어 보았다.
■ 이번 폭파된 비행기에는 주로 [산타 세데스] 고아원 출신들이 많이 타고 있었습니다. [산타 세데스]에서 성인이된 고아들을 불러 모은 뒤, 그들을 살해한 것 같습니다. 그중 일부는 실종 상태입니다. 고아들의 소재와 [산타 세데스] 내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조사하시오. 특히 지하 실험실을 유의 하시오.
‘그럼, 이번 비행기 폭파 사고가 산타 세데스 수도승들의 짓이었구나. 그 범인들, 일부러 우리랑 비슷한 옷을 입은 게 아니라, 진짜 수도승들이었어.’
하지만, 산타 세데스는 대부분의 협회원들이 꺼려 하는 곳이다. 만용을 부리며 거기에 쳐들어 갔다가 무사히 나온 협회원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문에, 일부러 돌연변이를 만들어 낸다는 의심을 받는 산타 세데스였지만, 여태 건드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여긴, 전부터 골치 아프던 데 잖아요? 그걸 왜 난데 없이 저에게 주세요?”
지환은 호수같이 고요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준 씨. 예전에 혼자서 퇴마사 하실 때에는 많이 힘드셨다고 들었어요. 점심 사먹을 돈을 아끼려고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셨다고 하셨지요? 그런데, 요즘은 이렇게 성공하셔서, 편안하게 잘 지내시죠? 부족한 것 없이?”
“네.”
“특히, 경제적으로는 전혀 부족한 게 없겠네요?”
“맞아요.”
“그게 누구 덕이라고 생각하세요?”
당연히, 협회에서 매주 나오는 보조금 덕이었다. 연구비, 활동비, 생활비를 하고나서도 남아 돌았으니까.
지환은 천사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원래 직장 생활이란 그런 겁니다. 먼저 말 하면 내 일이 되고, 먼저 발견하면 내 일이 되고, 먼저 물어 보면 내 일이 되지요.”
짜증나는 눈으로 지환을 보는 준에게 지환은 더욱 환하게 미소 지으면서 이렇게 말해 주었다.
“눈이 마주치면 바로 내 일이 되는 게 직장 생활입니다.”
하지만 저딴 바보 천사 같은 미소에 굴할 준이 아니었다.
“아니, 일이 너무 많아요! 전 지금 샤로수길 우리 빌라에서 난 살인 사건을 막 조사하려는 건데요? 이것도 돌연변이 문제 같아요!”
“네! 두 가지 다 응원합니다!”
둘 다 열심히 하라는 소리다. 어이가 없었다.
“아니, 저 진짜 힘든데요. 둘 다 동시에는 진행 못한다구요. 게다가 산타 세데스는 들어갔다가 죽지 않으면 다행인데! 저 진짜 힘들어요!”
이준은 지환의 눈을 똑바로 보며 최대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난 정말 진심으로 말하는 거라고!’
그걸 본 지환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가셨다. 그래도 이준은 똑바로 눈을 뜨고 계속 진지 텔레 파시를 쏘아대며 지환을 쳐다보았다.
자리를 뜨려던 지환이 다시 이준 가까이로 왔다. 지환도 제법 진지한 표정이었다.
“네. 정말 힘드시겠어요. 새로운 변종 발견에, 살인 사건에, 이것만으로도 머리 아프실텐데, 세상에 산타 세데스라니. 일도 많고, 위험도 많아 정말 힘들겠어요.”
이준의 얼굴에 은근한 미소가 피어오르기 직전, 지환이 말을 이었다.
“근데, 제가 더 힘듭니다. 정말, 너무 힘들어요.”
할 말을 잃은 이준에게 지환은 아주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럼 안녕히. 성공 하시길. 전 가상 세계 시뮬 돌려보며 해결점을 찾아볼께요!”
말 끝내기가 무섭게 정말 빠르게, 너무나 빠르게 사라지는 지환을 보며, 이준은 잠시 저 놈은 축지법이라도 쓰나 싶었다.
그리고, 깜박 했는데, 지환의 별명은 협회원들 사이에서 ‘개자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