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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짧은 두루미 Nov 18. 2024

story 4 : 샤로수길 살인 사건-(2)

분명 죽었다던 그 여자가, 방금 내가 사는 빌라 안으로 들어갔다 

이준은 201호 현관문 안에 있던 여자의 슬리퍼를 신었다. 너무 작아서, 신었다기 보다는 자기 신발 끝에 여자의 슬리퍼를 간신히 걸쳤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어쨌든 불편하지만 최대한 자연스러운 걸음을 걸으려 노력하면서, 그 이상한 액체가 그득한 201호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품 안에서 작은 병과 액체를 집을 수 있는 집게를 꺼내어, 아주 조심스럽게 그 액체를 담은 뒤, 빠르게, 빠르게 걸어나와 버렸다. 

이준은 채취한 액체를 곧바로 [돌연변이 연구소]로 가져갔다. 이준네 집에서 뛰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그러니까 관악산 끄트머리에, ‘이런 데에 무슨 이런 건물이 다 있어?’ 싶은 곳에 연구소의 관악 지점이 있었기 때문에, 직접 가져가는 게 가장 빠른 선택이었다.       

‘협회 옷을 입지 않으면 여기 들어갈 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하긴, 이 옷의 진짜 용도는 따로 있긴 하지.’      

연구소 문은 24시간 열려 있었다. 물론, 아무나 들어올 수는 없다. 먼저 협회 공식 수도승 복장을 하지 않은 사람은 문앞에서 경비원이 제지한다. 제복을 위조할 수는 없다. 협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의 특성에 맞게 각기 다르게 제작된 원단으로 만든 옷이기 때문에 천 자체가 협회원 고유 신분증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래서, 옷 없이 신분을 확인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그 다음, 건물 현관을 들어설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협회에서 제작한 천이 아니면 내부 카페테리아에서 음료를 살 때에도, 건물 안으로 들어설 때에도 확인 시간이 너무 길어진다. 

건물 내부에 들어서서, 13층이 바로 이준의 목적지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마지막 문이 있다. 엄지 손가락에 작은 카드를 심은 사람에게만 자동으로 열리는 문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벽처럼 보일 것이다. 

이 문이 열리면, 넓은 라운지가 있고, 협회원들은 바로 여기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고, 공짜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새로운 돌연변이를 보고하고, 검색한다. 

라운지 데스크엔 24시간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여자가 있다. 아니, 솔직히 여자인지 남자인지 불분명하지만, 사람들이 ‘여자’라고 부르니 이준도 그렇게 알고 있다. 워낙 독특한 돌연변이라, 성별이 무의미 하지 않나, 라고 생각했지만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그럴 필요도 없고.      

“주민 씨, 오랜만이네요.”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보통의 사람들과 좀처럼 소통하지 않았다. 돌연변이라서 소통을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소통하지 않는 것인지는 이준도 잘 모른다. 어쨌든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잠을 자지 않으면서 24시간 협회로 들어온 자료를 분석하고, 정보를 공유해 주고 있다. 사람들과 소통하지도 않지만, 협회 사무실에 들어오면 언제라도 주민 씨를 만날 수가 있다. 

협회원들 모두 그녀를 안쓰럽게도 생각하지만 또한 고맙게도 생각하고 있다. 어떤 위급한 상황에서도 관악지부 라운지로 달려오면 주민 씨가 있다. 주민 씨를 만나면 문제가 빠르게 해결되고, 협회원들은 주민 씨의 보호 아래 안전해진다. 주민 씨 덕에 관악지부가 24시간 운영되고, 주민 씨와 같은 돌연변이 몇몇 덕에 다른 어떤 나라보다 한국 협회의 정보 전달이 빠르고, 협회원들도 항상 안전한 것이다.      

‘한국은 유독 주민 씨 같이 24시간 일만하는 돌연변이가 많다고 했어. 개화기 때부터 생겨났다고 했던가?’      

주민 씨가 있는 이상, 협회원들은 항상 안전하고, 민첩하다. 주민 씨가 없으면 협회도 절대로 지금 같을 수가 없지만, 그런 건 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녀는 협회가 처음 생긴 19세기 말부터 여태까지 협회에서 일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니까. 협회에서 해주는 일은 딱 한 가지, 주민 씨의 의자를 항상 영하 1도 이하로 유지해 주는 것뿐이다. 그것 하나면 주민 씨는 불편한 것이 없다고 하니까. 원체 수명이 긴 돌연변이인 데다가, 항상 제자리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책 음식을 적게 먹고, 낮은 온도를 유지하니, 신진대사가 느려 오래 산다고 연구원들은 추측하고 있다.      

“샘플을 하나 가져왔어요.”      

이준이 샘플병을 내밀자, 주민 씨는 그걸 집어 빠르게 안내데스크 옆에 달린 분석함으로 넣어 버렸다. 바로 분석이 시작된다. 분석이 끝나면 이준에게 팩스가 오겠지만, 만일 저기서 분석에 실패하면 연구원들이 직접 분석해 줄 것이고, 그중 설명이 필요한 것이 있다면 이준에게 전화를 걸어 알려줄 것이다.      

이준은 주민 씨가 잘 먹는 간식 하나를 인포데스크에 두고 연구소 관악 지부 건물을 나섰다. 아무도 주민 씨가 무얼 먹는 것을 본 적은 없지만, 이걸 좋아한다는 것은 분명 알 수 있다. 건넬 때 눈이 반짝거리니까.      

‘생물은 누구나 표정이 있어. 종이 다르면 서로 눈치채기 어려운 게 문제지만. 그런데 주민 씨는 뭔가 우리와 약간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인간과 똑같은 표정이 있는데, 그럼, 인간과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뜻인가? 그럼 어떻게 움직이지 않고 하루 종일 일만하지? 인간은 그게 불가능한데 말이야.’      

협회 건물을 나서면서 이준은 수도승 옷을 벗어, 아주 작게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평상복을 입고 내리막길을 걸어,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이준은 다시 아주 평범한 소시민이 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작은 빌라에 사는 백수가 된다. 거리를 지나는 잘 차려 입은 사람들은 대개 이준에게 관심이 없다. 이준은 슬리퍼를 질질 끌며 자신이 살고 있는 빌라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건물 현관문 안으로 들어와, 1층을 지나, 1층과 2층을 잇는 계단실을 지나자마자, 이준은 101호에 사는 중학생 녀석이 휴대전화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당연히, 그냥 들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201호 여자가 떠나간 자리, 어쩌면 사람이 살았는데도 가구 하나 없는 집에 바닥은 온통 피떡인 그 집안을 촬영하고 있었다.      

“야, 너 뭐하냐?”

“틱톡 찍어요.” 

“뭐하러?”

“이거 라방 대박났었어요. 틱톡도 조회수 올라가게요.”     

101호 중딩 녀석의 히죽거리는 표정을 보면서, 이준은 사람들이 돌연변이를 경계하는 이유가 뭘까를 생각했다.      

‘돌연변이가 위험해서? 악랄해서? 그럼 돌연변이가 아닌 정상인은 다 선하고 무해하다는 믿음이라도 있는 걸까. 진짜 위험한 것은 저렇게 겉보기에만 정상인으로 보이는 사람일지도 모르잖아.’      

이준은 소매 안에서 아주 작은 선물을 꺼내어 아이에게 보여주었다.


“핸드폰 잠시 끄고, 이거 봐봐. 이거 줄께”     

아이는 뭔가 반짝이는 선물을 보고는, 이준의 말대로 휴대 전화를 껐다. 이준의 손바닥 위에 날카롭고도 반짝이는 물체를 본 아이는 갑자기 동공이 풀리고, 표정도, 몸짓도 사라졌다.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을뿐이었다.      

‘돌연변이와 정상인의 차이점은, 그냥 정상인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압도적 다수고 돌연변이는 적다, 이 정도가 아닐까?’      

이준은 작게 속사였다.      

“그거, 버려.”      

아이가 갑자기 휴대 전화를 집어 던져 버렸다. 

이준은 그걸 주워 아이에게 건네는 척하면서 201호와 관련된 사진을 다 지워버렸다. sns 계정에 이미 올린 것도 지웠으나, 이미 퍼질대로 퍼져서 소문이 퍼져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미안해요. 201호. 고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주고 싶었는데, 너무 늦어버렸네요.’      

이준은 아이의 손에 휴대전화를 쥐어주며 속삭였다.


“이제 내려 가. 집에 들어가자마자 누워서 잠들어.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너는 방금 나와 함께 있었던 모든 일은 다 잊어버리게 되는 거야. 넌 그냥 죽은 사람이 움직이는 걸 봐서, 너무 무서워서 사진을 다 지운 거야.”      

멍하니 휴대 전화를 집어 주머니에 넣고, 계단을 내려가는 아이를 보며 이준은 자기 집 현관문을 열었다.      

‘자기들도 원래는 다 돌연변이였던 주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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