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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짧은 두루미 Nov 11. 2024

story 2 - 수도사의 묘지에서 잠들다 (3)

       

이준은 가영이네 집에 가기 전,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것은 어떤 유형인지 확인해 봐야 겠어.’     


이준은 책상 위에 가득 쌓인 서신들을 읽으며 몇 군데에 밑줄을 쳤다. 이 많은 서신들은 죄다 [돌연변이 협회]에서 팩시밀리로 보낸 것들이었다. 그걸 출력해서 하나하나 정리하는 이준은 가끔씩 한숨을 쉬었다.      


‘요즘 시대에 웬 팩시밀리냐. 팩시밀리는. 모양 빠지게.’     


협회는 여전히 주요 전달 수단이 팩스였다. ‘전통’이라는 이유였다. 원본이 그대로 전달된다는 장점도 있었고, 게다가 요즘엔 휴대전화 어플로도 팩스 수신함을 수시로 확인할 수 있으니 전달 속도가 떨어진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젊은 퇴마사로 활동 중인 이준은 불만이 많았다. 전화도, 문자도, 카톡도, 이메일도 아니고, 팩스라니. 모양 빠지게.      


‘내가 임원이 되면 꼭 바꿔버려야지. 임원 되는 게 단지 연봉의 문제가 아니야!’      


서신에는 다소 심각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비행기 폭파, 수도승, 실종자들, 죽은 자들의 활동, 길거리 폭파, 가상 세계의 현실화와 현실의 가상 세계화 등등.      

[돌연변이 연구소]라는 괴랄한 이름을 내걸고, 까다롭고 탈 많은 문제들을 깔끔하고도 가볍게 뒤처리하던 본부이지만, 이번에는 본부 측에서도 사태를 꽤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문제의 수도승들이 [돌연변이 연구소]의 퇴마사들이 입는 복장과 교묘하게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중대한 문제였다. 

본부는 진짜 문제를 숨기기 위해, 그러니까‘그건 돌연변이예요. 지구엔 아주 가끔 돌연변이가 있어요. 우리가 그걸 이제야 발견할 것 뿐이지요.’라고 대충 얼버무리기 위해 이름까지 [돌연변이 연구소]로 짓고 암약하던 연구소이자 협회였다. 

고도의 과학 기술을 가진 연구소가, 스스로가 기괴한 곳이라고 일부러 소문은 냈지만, 나쁜 짓은 하지 않으려 노력해왔다. 최대한 양심껏, 그리고 일반인에게 민폐 없이, 혹시 도울 수 있으면 도우면서 활동해 왔다. 그래서 최고의 과학자, 교황청이 인정한 퇴마사 및 독특한 능력을 가진 연구원들이 기꺼이 협회에 등록한 것이며, 따라서 고객들이 더더욱 연구소를 신뢰하고 은밀하고도 기괴한 일들을 처리해달라고 의뢰해 왔던 것인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정체불명 수도사들의 복장만 보고서는 돌연변이 연구소 회원들이 저 난리를 주도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이미 일부 말 지어내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든 것이 은밀하게 활동 중인 어떤 연구소의 소행이라고 이미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 이후로 회원 하나가 협회 특유의 수도승 복장을 입고 일을 처리하러 길을 가다가, 행인들이 던진 돌에 맞는 사건이 생겼다. 너네 협회가 이 모든 사태의 흑막이라고 소리소리를 지르는 통에 사람들의 이목이 회원에게 집중되었다. 곧이어 비명을 지르며 악마 집단이 나를 죽일지도 모르겠다며 도망치는 사람도 있었고, 침으 뱉는 사람도 있었다. 

여론이 협회에 대단히 불리하게 형성된 것이다. 

전체 회원이 비상사태로 인식하고 있었다. 협회는 이제 불명예와 공격, 회피 등에 대처하면서 진짜 흑막을 찾아내야 했다.      


하지만, 본부에서 서신을 받기 전에도 이준은 이미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아마도, 이준이 가장 먼저 느끼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시작은, 그저 쓰레기를 버리러 집 밖에 나가면서였다. 

쓰레기 버리는 곳에 봉지를 던진 순간, 어디선가 썩은 내가 확 끼쳤다. 쓰레기에서 나는 게 아니었다. 이준은 협회에서 가져 온 물과 커피 외에는, 집에서 아무 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다. 출장이 많아 집에서 좀처럼 생활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이준의 쓰레기라고 해봐야, 본부에서 온 문서를 파쇄한 쪼가리 종이들, 잡다한 포장 박스 정도였으니 썩은 내가 날 리가 없었다.      


‘뭐지? 이 지독하고 더러운 냄새는?’     


아직 판단 내리기는 좀 어려웠지만, 이건 아무래도 시체에서 나던 그 냄새같았다. 과거 이준이 질리도록 맡았고, 절대로 잊을 수 없었던 그 냄새.  

천천히 고개를 들고, 무심한 척 주변을 살피던 이준은 분명 보았다. 며칠 전 죽은 여자가 이준을 스쳐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아랫층 여자잖아? 죽었다고 분명, 뉴스에 나왔었는데?’     


이준은 혹시라도 자기가 착각한 것인가 싶어서 아주 뚫어지게 여자를 바라보았다. 분명, 죽었다던 그 여자였다. 긴 머리에 호리호리하고, 이웃들과 인사하기 싫어하던 사회성 제로의 그 여자. 

여자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건물에 달린 유리문 안에서 빛이 새어나왔다. 사람이 지나가면 켜지는 센서등이 켜진 거였다.   

   

‘죽은 사람이 지나갔는데 센서등이 켜져? 그럼 분명 유령은 아니잖아. 내가 방금 잘못 본 건가?’   

  

1층 현관에서 켜진 등은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중간 계단에서도 켜졌다. 누군가 계단을 올라갈 때마다 켜지는 등이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중이야?’


이준은 3층에 살고 있었다.    

  

‘혹시 3층 불이 켜지면, 앞집 노인들이 올라갔단 소리인데, 아무리 봐도 방금 지나간 사람은 젊은 여자인데?’      

결국, 3층에는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2층 현관문 앞 등까지 켜진 이후로, 다시는 인기척도 나지 않고, 센서등도 켜지지 않았다. 누군가 2층의 자기 집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죽은 여자는 2층에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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