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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짧은 두루미 Nov 04. 2024

story 2 - 수도사의 묘지에서 잠들다 (2)

          

가영이는 엄마의 변화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실종 후 가까스로 돌아온 엄마가 가영이를 반가워하지 않는 것은 둘째 문제였다.


엄마가 어떻게 되돌아 왔는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았지만,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게다가 집안을 깔끔하게 관리하던 엄마가 살림은 아예 내버리고, 매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밖에 있다가 뒤늦게서야 들어왔고, 이유는 말해주지 않았다. 가영이가 말을 건네도 건성으로 대답하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요즘은 가영이가 학교에 다녀오면 집안은 항상 엉망이었다. 가영이가 대충 정리를 해도 엄마는 외출하기 직전에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 꼭 외출 준비를 처음하는 아기같아 보였다.      

원래 엄마는 저렇지 않았다.


엄마는 혼자서 가영이를 키우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했다. 새벽에는 우유나 신문을 돌리고, 아침과 낮에는 어린이 집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동네 식당에서 설겆이를 했다. 그러면서도 중간중간 집에 돌아와 가영이의 식사를 챙기고, 집안 정리를 하고, 숙제를 봐주기도 했다.


고단한 몸으로 집으로 돌아올 때, 엄마 손엔 항상 가영이의 간식이 들려 있었다. 때때로 식당에서 남은 반찬거리를 싸가지고 집에 올 때면 엄마는 어쩐지 신이 나서 큰 소리로 가영이의 이름을 부르곤 했다. 이것 먹어봐라, 가영아. 얼마나 맛있는 줄 아니? 라면서. 그때마다 가영이는 음식보다 엄마에게 폭 안기기를 더 좋아했다. 유치원 다니면서부터 그랬고,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는 나이까지도 그랬다.


가영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쯤, 엄마는 겨우겨우 낡고 작은 집을 장만했다. 방이 두 칸 딸린 작은 빌라였다. 남들은 ‘아파트를 사야지, 왜 저런 집을 사? 저건 절대로 집값 안 올라.’라고 했지만 엄마와 가영이는 상관이 없었다. 그저 행복하고 신이 났다. 고급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새로 산 집을 자랑하기도 했다. 친구들은 떡볶이를 먹으면서 ‘좋겠다’라는 말 외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갔다.      


가영이를 대학에 보낸 후 엄마는 일을 줄였다. 건강도 예전 같지 않았고, 어린이집에서는 원장직을 맡게 되었고, 가영이가 장학금을 받고 입학한 덕에 학비도 들지 않았고, 꽤 좋은 학교에 입학한 덕에 과외로 자기 용돈 정도는 자기가 벌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이제는 엄마와 가영이는 가끔 외식도 했고, 엄마도 어린이집 근무를 마치면 집에 돌아와 TV를 보며 쉬기도 했다.


그러던 중 엄마는 자신이 어릴 적 지내던, ‘수도원에 딸린 고아원’에 갔다가 사고로 실종된 것이다. 며칠 실종되었다가 엄마는 다행히도 돌아왔으나, 돌아온 엄마는 전과는 너무나 달랐다. 살갑던 엄마가 아니라 영 모르는 사람처럼 굴었고, 매일 밤 어디론가 나가서,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엄마, 나 학교 갔다 올께요.”     


어제 저녁을 먹고 나갔던 엄마는 가영이가 학교 갈 시간이 되어서야 돌아와, 가영이 인사도 받는 둥 마는 둥 하고 방으로 들어가 잠들어 버렸다.      


‘아무리 봐도 이상해.’      


그런 엄마를 본 가영이는 얼마 전 집으로 찾아온, 수도승 복장을한 남자가 건네 준 명함을 꼭 쥐었다.

이름이 이준이라고 했던가. 자신은 만일 엄마가 이상해지면, 꼭 자신에게 알려 달라고 말을 했다. 원래라면 이상한 놈이라며 쫓아냈겠지만, 그날, 엄마가 정말로 이상했다. 그리고 이준의 설명을 들어보니, 명함쯤은 보관해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가영 씨!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사실, 진짜 이상한 것은 저희가 아니라 요즘 일어나는 기현상들이거든요. 그것도 그 수도원에 관계된 사람들에게만 일어나는 이상한 일들이 있어요.”

“관심 없는데요?”

“엄마가 오늘 돌아오셨지요? 혹시 좀 이상해지지 않았나요? 평소와 좀 다르지 않나요?”     

 

다르긴 달랐다. 며칠 실종되었던 엄마가 집으로 돌아와서는 가영을 냉대하고 있었으니까.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하긴 그 사고에서 털끝 하나 다치치 않고 무사히 돌아왔다는 것이 이미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뭐라 설명하기 어려워 가영이는 그저 명함만 받아 들었던 것이다.

가영이는 학교에 가는 길에 남자의 명함을 들여다 보았다. [돌연변이 연구소].


‘돌연 변이 연구소? 뭐야? 이 신뢰와 기대를 한방에 깰 수 있는 작명은?’


순간 가영이는, 자신이 여태 그 남자에게 작게나마 기대를 걸고 있었다는 사실이 창피했다. 연락해볼까 하던 마음도 싹 사라져, 가영이는 명함을 다시 지갑 속에 넣었다.

하지만 바로 그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가영이는 이준이라는 남자에게 바로 전화를 해야했다. 집에 엄마가 없었다. 그냥 없는 게 아니었다. 집안은 그냥 지저분하게 방치해 놓고 나간 정도가 아니라, 몸싸움을 한 흔적이 역력했다. 게다가 안방 문은 누군가 박박 긁어 놓은 것처럼 긁혀 있었다. 아무리 봐도 사람의 손톱 자국 같은데, 대체 어떻게 하면 손톱으로 방문에 이런 자국을 낼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엄마 방 안에는 이상한 약품 냄새 같은 것이 가득했다. 어디선가 맡아 보았지만, 어떤 약품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고 가영이는 생각했다. 더 이상한 것은 부적같은 것이 벽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던 것이다.

가영이는 처음에 경찰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경찰은 와주지 않았다.


“최근 실종되었다 돌아온 사람들에게 이상한 바이러스가 검출되었다는 내부 보고가 있습니다. 당분간 관여하지 않는 것이 저희 지침이라서요.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엄마 외엔 가족도 없고, 일가 친척도 없는 가영이였다. 가영이는 바로, 수도승 옷을 입고 찾아왔던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이상한 [돌연변이 연구소]라는 상호가 적힌 명함을 가지고 왔던 그 사람.     

 

“안녕하세요? 저 진가영이라고 하는데요, 실종되었던 엄마 문제로 전화 드렸어요.”

“아, 전화를 하신 거면, 혹시,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요?”

“맞아요. 혹시 저를 도와주실 수 있나요?”

“제가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차분하게 말하는 가영이의 눈엔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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