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지환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지환도 여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놀라고 무서워서 몸이 굳어버려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했던 것이었다. 지환은 움직이지도 못한 채 점점 더 심한 혼돈의 회오리에 빠져버렸다.
목 위로만 있는 여자가 가만히 자신을 들여다 보고 있는 것도 미칠 지경인데, 심지어 그 여자는 지환에게 말을 걸었다.
“너, 왜 여기서 안 나가?”
대답해야 하는데 지환의 입은 떨어지질 않고, 머릿 속은 혼란으로 소용돌이 쳤다. 머리 속으로 폭발 때문에, 폭발 때문에 나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자는 지환의 생각을 알고 있다는 듯이 대답했다.
“폭발 다 끝났어. 너도 알잖아? 아까 창문도 내다 봤잖아. 아무 일 없어.”
하지만 폭발 뒤에 수도승 옷을 입은 괴한들이 돌아다니고, 그들이 몹시 위험하다고 지환은 생각했다. 이번에도 여자가 지환의 생각을 읽은 듯이 대답했다.
“위험한 거 확실해? 어떻게 위험한데?”
그러고 보니, 위험하단 말만 들었지, 어떻게 위험한지는 잘 모르고 있었다. 그저 사람들이 ‘위험하다’라고 말했고, 무작정 피하니 공포심이 생겼을 뿐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문이 폐쇄되지 않았는가. 지환은 겨우 입을 떼어 여자에게 말을 했다. 슬슬 몸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문이, 캐비닛으로… 사람들이 막아서….”
여자는 무표정하게, 그러나 빠르게 대꾸했다.
“혼자서 문 열고 나가면 되지. 못 나가는 게 아니라 안 나가는 거잖아.”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지환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여기서 나갈 수가 없는지.
여자는 지환에게 작은 끈 같은 것을 보여주었다. 끈에는 구슬이 몇 개 달려 있었고, 끝에 작은 나팔 같은 것이 달려 있었고, 상당히 오래된 물건 같아 보였다.
“이 끈을 잡아. 그러면 여기서 나갈 수 있어.”
지환은 순간, 저 손을 잡으면 영영 이곳에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건 추리나 짐작 같은 거시 아니라, 본능이 말해주는 직감이었다.
지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달아나고 싶었으나, 그러질 못했다. 움직이기가 영 싫었다.
‘내가 지금 제 정신인가? 이런 상황에서 일어나기 싫어서 안 움직여? 꼭 핸드폰 중독된 아이가 학교 갈 시간에도 핸드폰 하고 앉아 있는 것 같네.’
지환은 어쩌면 자신이 이 공유 오피스에 중독된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 중독이면 못 나가지, 못 나가고 말고, 이렇게 백 번은 되뇌이다가 다시 위를 쳐다 보았다.
여자는 없었다. 굳었던 몸도 완전히 풀렸다.
지환도 이제 여기서 나가서 집으로 돌아갈까를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빨리 마무리해야할 아주 중대한 프로젝트고 있었고, 공유 오피스의 음악은 감미로웠으며, 공기는 쾌적하고, 인테리어는 지극히 아름답고, 커피와 간식은 입에 딱 맞았다.
지환은 새삼 이 공간에 대단한 애착을 느꼈다.
‘그래, 귀신까지 방해하는 걸 보니까, 이 프로젝트만 완료하면 대박이 날 것 같아. 노래 같은 거 녹음할 때도 녹음실에 귀신 나오면 대박 난다고 하더라. 완료하기 전까진 집에도 가지 말자. 트기 오늘은 절대로 집에 가지 말아야지. 잘되려니 귀신이 방해하는 것일 수도 있잖아?’
주변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아까 무단으로 들어온 사람들도 각자 자기 칸막이 안에서 잠이 들었고, 한참을 일하던 지환도 자기 칸막이 안에서 잠이 들었다. 지환은 어쩐지 자신이 대단히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주변에 위험한 것은 아무것도 자신을 건드릴 수 없는 상태니까 말이다.
다음날 아침에 지환이 눈을 떴을 때, 이미 공유 오피스 안에는 젊은 사람들이 꽤 많이 와 있었다. 나름 바쁘게 일을 하고 있었고, 개 중엔 낯익은 얼굴도 있었지만, 서로 인사하지는 않았다.
‘상황이 대충 정리가 된 모양이네. 어제 보이지 않던 사람들도 출근을 한 걸 보니까.’
지환은 아침 식사 대용으로 공유 오피스에서 무료로 주는 씨리얼을 먹었다. 우유는 어플로 계산한 뒤에 냉장고에서 꺼내서 먹으면 되는 거였다.
‘이 정도면 아침 식사 대용으로 나쁘지 않지.’
지환은 공유오피스의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물티슈로 머리를 닦았다. 양치질은 가지고 다니던 칫솔 치약으로 해결했다. 발도 대충 씻고, 양말을 세면대에서 세탁한 후에 자기 책상 구석에다가 널어 말렸다.
‘이까짓 거. 전쟁 났을 때보단 훨씬 더 편안한 삶이 아닐까? 난 버틸 수 있어.’
지환은 저녁 식사 시간에도 밖에 나가지 않았다. 오직 이 프로젝트만을 완료하고 밖에 나가야 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배는 고팠다.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까도 생각 했으나, 냄새 나는 음식은 내부에서 먹을 수 없다는 규정이 생각나서 관두었다. 결국, 내부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공유 오피스에서 간식으로 주는 오트밀 과자를 지환 혼자서 다 먹어 버렸다. 나중에는 무료 간식 코너에 있는 모든 간식을 다 먹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일을 했다. 그러면서도 지환은 사무실이 어제와 사뭇 다르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상한데? 이 시간에도 원래 이렇게 사람이 많았나?’
퇴근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사람들은 가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지환이 다 먹어버린 간식 코너 앞에 내내 사람들이 왔다갔다 했다.
‘왜 다들 안 가고 저 간식을 먹으려고 안달들이지? 꼭 나를 따라하는 것 같네. 나랑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밤 늦은 시간에도 사람들은 가지 않았다. 여기서 밤을 샐 모양이었다.
‘어제 무단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아직 안 나간거야? 아니면 오늘 새로 온 사람들이 많은 거야? 무슨 일이지?’
피곤해서 잠을 자고 싶었으나 쇼파는 이미 다른 사람이 차지해 버렸고, 지환은 오늘도 책상에 엎드려 잤다
그 잠은 길지 않았다. 새벽에 웅성거리는 소리에 지환은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였다.
‘이 시간에 무슨 소리야?’
지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오피스 안을 둘러보았다. 빨간 유니폼을 입은 여자가 들어와서 청소를 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어제도, 그제도 이 시간 즈음에 소음 때문에 슬쩍 깨어났다가 다시 잠들었던 것 같았다.
‘아, 원래 이 시간이 청소하는 시간이었나?’
밤새도록 집에 가지 않은 사람들이 자기 책상에서 하나 둘 일어났다. 사람들은 커피와 간식이 있는 싱크대 쪽으로 몰려 갔다. 굉장히 이상해 보였지만, 지환도 따라갔다. 몹시 배가 고팠던 것이다.
유니폼을 입은 여자는 청소를 마친 후에 작은 가방을 열더니 간식함에 간식을 채워 넣었다. 간식함이 가득 차기가 무섭게 사람들이 너도 나도 손을 뻗어 간식을 가져 갔다.
여자는 다시 가방에서 간식을 꺼내 또 채워 넣었다. 하지만 스무명은 됨직한 사람들이 저 가방 하나로 배가 찰 리가 없었다. 간식함은 금새 텅텅 비었다.
여자는 잠시 종업원만 출입 가능한 방으로 들어가더니, 쟁반에 간식을 잔뜩 쌓아서 들고 나왔다. 씨리얼과 오트밀 과자, 그리고 커피와 허브티 정도이지만, 사람들을 그걸 퍽 맛있게 먹었다.
지환도 마찬가지였다.
이 꼴을 보던 여자는 입을 열었다.
“고생들 많으시네요.”
사람들은 겸연쩍어 허허 웃었다. 웃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여자가 말을 이었다.
“그러게, 제가 여기서 나가자고 했잖아요.”
순간, 지환은 여자 얼굴을 바라 보았다.
목 아래가 보이지 않던, 자신과 숨바꼭질을 하던 바로 그 여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