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환은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생각하다가, 뒤로 돌아섰다.
돌아서는 데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뒤를 돌아보면 대단히 흉측한 것이 있을 것 같은 느낀 때문이었다.
‘흉측한 게 있으면 어쩌지? 뭐, 바퀴 벌레 같은 거나, 강도나, 아니면, 그 여자라던가. 그래. 특히 그 여자.’
정신이 혼미하다는 것을 지환 스스로도 느꼈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머릿 속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눈이 핑글핑글 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지환은 혼돈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쨌든, 뒤를 돌아보기는 싫었다.
‘이래서 뒤를 돌아보면 돌이 된다는 신화도 있는 게 아닐까? 아니, 경전이던가?’
뒤를 돌아보았다가 돌이 된 여자의 이야기가 마치 인류를 향한 신의 경고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지환은 결국, 마음을 가다듬고 뒤를 돌아보았다. 이대로 가면 영영 이 미로같은 공유 오피스에 갇힐 것 같은 불안감이 더 컸기 때문이다.
‘휴 다행이다.’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당연한 것인데도 안도감이 들었다.
‘그래. 별 일 아닌데 내가 왜 이렇게 예민하지? 그래. 얼마 전부터 그랬었는데, 그게 언제였더라?’
지환은 다시 터벅터벅 걸어서 자신의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그래, 여기서 출발해서 다시 밖으로 나가보자.’
지환은 다시 자신의 자리 바로 앞에 서서, 그 여자가 있던 자리를 슬며시 바라보았다. 칸막이 위로 또 여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제길, 깜짝이야!’
여자의 긴 머리카락이 지나치게 검다고 지환은 생각했다. 먹물을 뿌려 놓은 듯이 검었다. 전깃불 하나 없는 산 속의 밤이 저리 어두울까. 저 깊은 어두움이, 그만큼이나 깊은 공포가, 지환의 판단력마저 어둡게 만들어버리는 듯했다.
‘별 일 아닐 거야. 확인하지 말자. 화장실이라도 갔다가 돌아왔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지환은 확인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칸막이는 저렇게 여자의 머리가 다 보일 수 있는 높이가 아니다. 어지간한 여자들의 키로는 안에서 똑바로 서도 아예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머리가 보이다니, 절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닐 것이다.
‘별 일 아니겠지. 설마 유령이나 이런 것일 리가 없잖아. 그래도 들여다 보지 말자. 그냥 빨리 나가자.’
지환이 조심스레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 순간, 여자는 또 뒤를 돌아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지환은 저도 모르게 몸이 굳어버렸다.
여자는 지환을 아예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이리로 오라는 듯 고개를 까닥거리기도 했다.
지환은, 혼란스러운 와중에서, 마치 저 여자에게 허락을 받아야 이 공간을 나갈 수 있을 듯 한 이상한 불안감에 빠졌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이성이 아직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조금은 생각할 수 있었다.
‘그래. 뭐. 어쩔 건가. 만일 무슨 일이 생기면, 물리력으로 이겨내 보자. 어쨌든, 그냥 여자잖아? 난 남자니까 뭐, 어떻게든 되겠지.’
지환은 홀린 듯이 옆자리로 가서, 문을 열었다.
또 여자가 없었다.
‘잘됐다. 그냥 빨리 나가버려야지.’
하지만, 처음 저 여자를 만난 이후부터 계속 느껴졌던, 그러나 애써 무시하던 이물감은 여전했다. 그리고 이젠 더 이상 그 이물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지환은 고개를 들어 천장쪽을 보았다.
여자가 있었다. 그것도 몸체도 없이 목 위쪽만 있는 여자가 마치 수도승 같은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지환과 같은 칸에서 지환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여자는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그녀가 지환에게 손을 대자마자 이상한 스파크가 일어났고, 지환은 곧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