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환은 이번에 새로 계약한 공유 오피스가 대단히 마음에 들었다.
가격은 그리 비싸지 않은데도 인테리어가 상당히 고급스럽고 안정감이 있었다. 사무실 내부에 들어오면 고급스러운 프라이빗 카페에 들어선 느낌이 들었고, 개방감도 좋았다. 잔잔한 음악이 나와 집중도 더 잘 되는 느낌이었다.
공유 오피스의 이름은 [안식]. 그 이름답게 안에 있으면 상당히 편안했다. 책상도 큼직하고, 책상과 책상 사이에는 높은 칸막이가 있어서 옆 사람이 뭘 하는지 잘 알 수 없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성인 남자가 일어서야 얼굴이 절반 정도 보이는 높이였다. 게다가 칸마다 작은 폴딩 도어가 달려 있어서 문을 닫으면 완전히 개인 공간이 되었다. 책상에 엎드려서 자버려도 아무도 모를 정도였다.
‘거의 개인 사무실이나 다름 없잖아? 이 가격에!’
그야말로 가성비 최고의 업무 환경이었다.
샤로수길 주변이라 점심 식사하기도 상당히 괜찮은 편이었다. 수많은 맛집 중에 하나 고르는 재미도 쏠쏠했다. 서울대입구역이 가까운 덕에 교통도 상당히 좋고, 주변에 필요한 건 다 있었다.
‘여기서 대박 내야지!’
지환은 새로운 게임을 기획하고 있었다. 게임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게임의 공간 안에 실제로 들어가는 것’으로 기획했다. 최근 상용화된 인간의 정신을 이식할 수 있는 기술을 적용한 게임이다.
인간의 정신이 게임 안으로 이식된 후에, 수수께끼를 다 풀기 전까지는 게임이 끝나지 않는다. 위험한 점은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는 인간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럼 영원히 못 나올 수 있으니, 게임 중간중간에 NPC를 만들어 아주아주 간단한 과제만 마치면 게임을 끝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미 투자도 받았고, 함께 일할 사람들과도 모두 이야기를 마쳤다. 기술적인 문제도 거의 완성되어 테스트 중이다. 이제 지환이 몇몇 서류만 완성하면 빠르게 멋진 게임이 완성될 것이다.
제목은 아직 완전히 결정한 것은 아니지만, [이 공간의 문]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이건 분명, 출시하자마자 대박이야.’
아침 일찍 공유오피스로 출근하는 지환은 오피스에서 간식으로 나오는 씨리얼을 아침 식사 대신 먹고, 점심은 사무실 내의 휴게실에서 간단한 샌드위치를 사먹고, 저녁은 샤로수길 맛집에서 사먹었다. 그리고 밤늦게까지 일을 했다. 그러니까, 거의 잠만 집에서 자고 하루종일 공유오피스에 있는 셈이다.
어차피, 원룸은 좁고, 물건이 많아 복닥복닥하고, 집에 가봤자 아무도 없다. 오피스는 넓고, 쾌적하고, 인테리어도 예쁘고, 천장도 높고, 공유 공간을 넓게 만들어 두어 개방감도 있고, 사람들이 왔다갔다 해서 적막하지 않아 좋았다.
오늘도 지환은 밤늦게까지 오피스에 남아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오후 6시가 지나면서부터 사람들이 하나 둘, 집으로 갔다. 하지만 지환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 쓰지 않았다기 보다는 알 수가 없었다. 칸막이가 높고, 칸마다 문이 달려 있어서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한눈에 알 수가 없으니까. 다만 잔잔한 음악 사이로 간간이 들리는 키보드 소리, 조곤조곤 속삭이는 통화 소리, 커피잔을 채우기 위해 움직일 때의 인기척 정도로 사람이 있나 없나를 가늠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유난히 조용했다. 마지막으로 커피 머신 앞에 사람이 다녀간 것도 두 시간은 족히 지난 듯했다. 하지만 어디선가 키보드 소리가 계속 났다.
‘원래 음악 소리 때문에 키보드 소리가 이렇게 잘 들리진 않는데, 음악을 작게 틀었나? 그리고, 오늘은 유별나게 춥네. 온도 조절기가 고장 났나?’
무인 시스템으로 자동으로 온도가 조절되는 공간이라, 이렇게 추울 리가 없었다.
‘관리자에게 지금 톡을 보내봤자, 다들 퇴근했겠지? 아니, 다른 사람들은 다 괜찮아? 안 추워? 진짜 사무실에 나만 있나?’
그때였다. 지환의 화면에서 마우스가 제멋대로 움직였다. 이상하다 싶어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마우스는 지환의 뜻대로도 움직였지만, 지환이 가만히 있을 때도 산만하게 움직이고, 바탕화면에 있는 파일들을 클릭해댔다. 심지어 바탕 화면에서 작업 중이던 파일을 삭제하려는 시도까지 하였다
‘해킹이라도 당한 건가? 아니면 이 사무실 내부 누군가가 블루투스로 기기 찾다가 내 컴퓨터를 찾은 거야?’
지환은 얼른 컴퓨터를 꺼버렸다.
지환이 두리번거리는 사이, 컴퓨터가 다시 켜졌다. 그리고 마우스는 지환의 바탕화면을 미친 듯이 휘젓고 클릭해댔다. 미친 마우스는 결국 지환이 작업 중인 파일들까지 건드렸다.
지환은 자기도 모르게 “누구야?”라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사방이 조용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누군가 있다면, 마우스 소리나 인기척이 들릴 거야.’
지환은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지환의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 보았다. 칸막이 위로 사람의 머리카락이 얼핏 보였다. 분명, 누군가 지나갔다. 아주 예쁠 듯한 여자의 뒷모습이었다. 아마도 지환 옆자리에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난 모양이었다.
‘저 여자가 실수한 건가? 근데, 여기에 저렇게 예쁜 여자가 있었나? 뒷모습도 개예쁘네.’
여자는 30분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
‘저쪽으로 갔으니, 밖으로 나가려면 이쪽으로 다시 와야 할텐데, 대체 어딜 간 거지? 화장실에 가서 설마 30분 넘게 있어?’
100평형에 달하는 오픈형 공유사무실 내부 어딘가에 있을텐데,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질 않았다.
‘저 음악 소리 때문에 사람 발걸음 소리도 들리질 않네. 에라, 나도 화장실이나 갔다 와야 겠다.’
그 여자를 찾기 위해 일어나는 것인지, 화장실에 가기 위해 일어난 것인지 자신도 좀 헷갈린다고 생각했다. 화장실에 가는 길에 다른 책상들을 둘러 보았다. 그제서야 지환은 밖에 비가 오고 있고, 공유 사무실에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퇴실할 때는 칸마다 달린폴딩 도어를 열고 나가게 되어 있는데, 그 문들이 죄다 열려 있었던 것이다.
전부 빈자리였다. 100평형 공간에 아무도 없었다. 지환 혼자였다. 여자도 보이지 않았다.
‘커피 머신 앞에도 없고, 그럼 역시 여자 화장실인가?’
자리로 돌아오며, 지환은 여자가 있던 옆칸을 슬쩍 보았다.
옆자리 문이 아주 조금 열려 있었다.
‘어? 그 여자 돌아왔나? 어디로 온 거지?’
살짝 열린 문으로 안을 들여다 보니, 분명 아까 그 여자의 뒷모습이 었다. 작은 노트만 펴놓고 노트북도 없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 사람이 있구나! 이 넓은 사무실에 나랑 저 여자 단 둘이 있는 거였어?’
그때였다. 여자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았다.
분명 눈이 마주쳤다.
지환은 화들짝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빠르게 자기 자리로 돌아와 문을 닫았다.
문을 닫아봤자, 위쪽은 뚫려 있는, 그러니까 지붕이 없는 칸막이일 뿐인 공간이라 밀폐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상관 없지. 설마 여자가 저 위로 들여다 보지는 않을 거 아냐. 근데 왜 이렇게 천장 쪽이 신경 쓰이지?’
지환은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노트북으로 일하는 척해봤자 소용 없어. 분명 눈이 마주쳤어. 아니, 아니, 그래도 뭐 어쩔 거야? 설마 따지겠어? 뭐, 따져도 내 자리인줄 알았다고 해야지. 근데 왜 이렇게 떨리냐.’
옆자리에선 의자를 밀고 사람이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이상스레 소름이 돋았다.
문을 여는 소리도 유난히 크게 들렸다.
여자가 터벅터벅 걸어서 다가오는 소리까지도 음악소리를 덮어버릴 정도로 크게 들렸다.
‘젠장, 따지러 오나보다.’
지환의 문이 열렸다.
지환은 무슨 일이냐, 의외다, 라고 말하고 싶은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