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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짧은 두루미 Sep 02. 2024

STORY 2 - 수도사의 묘지에 잠들다 (1)

가영이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간절한 마음으로 TV를 켰다.      


‘제발, 오늘은 엄마가 발견되었으면!’   

  

TV에서는 연일 이번 테러 사건에서 생존한 승무원에 관한 뉴스가 흘러나왔다. 아리따운 승무원이 흐느끼는 모습과, 사고 당시의 CCTV 화면과, 기타 목격담도 수차례 반복 재생되었다.      

CCTV에 잡힌 용의자들은 좀 이상했다. 마치 수도승같은 옷을 입은 두 명이 공항에 들어왔다. 각자 여행 가방을 끌고 있었는데, 유난히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가방이었다는 증언이었다. 

그들을 보고 쑥덕거리는 지상직 승무원들의 목소리도 가감 없이 녹음되어 방송에서 흘러나왔다. 휴대전화로 승무원들의 사진을 찍던 변태의 소행이었다. 지상직 승무원 주변을 얼쩡거리다가 동영상을 찍은 것이다. 그는 이 영상으로 돈을 꽤 받았다.      


“저 가방 바퀴 소리는 거의 민폐 수준인데?”

“돈이 없어? 왜 저런 걸 들고 다니지?”

“야, 저 옷 좀 봐라. 저 옷은 또 뭐야? 중세 시대 이단교도들 같네. 저런 사람들은 어딜 가길래 비행기를 타?”

“우리나라 정신 병원에 입원실이 부족해서가 아닐까?”     


수도승들은 가방을 맡긴 후에 비행기에 타지 않고 공항을 빠져 나갔고, 가방은 주인을 잃은 채 비행기에 실렸다. 

그 짐을 싣기 전, 수하물을 싣던 지상 조업원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드르륵득득하는 소리가 바퀴가 아니라 가방 안에서 계속 들려왔다. 하지만 그냥 넘어가야 했다. 비행기 출발 시간에 맞추려면 물건을 빨리 실어야 했고, 물건은 쉴새 없이 쏟아졌다. 폭탄이나 마약만 아니면 승객의 가방에 뭐가 들어있건 알 바가 아니었다. 살아 있는 동물이 가방 속에서 죽어가도, 심지어 유골이 들어있어도 범죄만 아니면 자신과 상관 없는 문제였다.      

화물칸에 차곡차곡 짐이 쌓일 때쯤 드르륵 소리는 규칙적인 기계음으로 바뀌었지만, 그때는 아무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손쓸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벙커에서는 아주 작게, 수상한 기계음이 들려왔다고 생존 승무원이 증언 했으니까 말이다. 

이 수상한 기계음은 곧 폭발음으로 바뀌었다. 비행기는 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공중에서 추락했고, 공항은 초토화되었다.  


생존자는 승무원 단 두 명. 뒤늦게 벙커에서 혼수상태인 채로 발견되었다가, 갑자기 깨어났다고 했다. 이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사고 직후 수색원들이 비행기를 샅샅이 뒤졌을 때는 없었다가, 나중에서야 발견된 것이다. 마치 누가 이들을 벙커에 옮겨놓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가영이는 간절한 심정으로 하루종일 이 뉴스를 들었다. 


“엄마도, 돌아오실 수 있어. 저 사람들도 저렇게 멀쩡하게 돌아왔잖아.”      


가영이는 엄마 방에 들어가 보았다. 

계실 리가 없었다. 다시는 이 방으로 돌아오지 않을 엄마였다. 

작은 방 두 칸에, 아주 작은 거실이 딸린 집이지만 가영이는 집이 너무나 넓고 무섭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기도 싫었다. 어쩐지 계속 거실에서 기다리면, 언제나처럼 엄마가 돌아올 것 같았다. 모질게 몸을 혹사시켜 일하여서 이 작고 낡은 집 한 채를 마련하고, 가영이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이 생겼다고 기뻐하던 엄마가. 

가영이에게 가족이라곤 엄마 한 사람뿐이었다. 아버지는 가영이가 어릴 적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엄마와 아빠는 고아원에서 만났기 때문에 친척도 없다고 했다.      


“엄마는, 태어나서 요즘처럼 행복할 때가 없었어. 엄마는 요즘이 제일 좋아.” 

“엄마 어릴 때는 힘들게 살았어?”

“글쎄. 아무래도 어떤 독립 교단의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살았으니까. 신부님도 있고 수녀님도 있었어. 그분들이 아주 엄하긴 했지만,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지. ”

“아빠랑 그 고아원에서 만났던 거야?”

“응. 맞아. 아빠랑 엄마는,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에 그곳을 도망쳐 나왔어.”

“왜? 막 때렸어?”

“아니. 작은 교단이지만 돈이 많았어. 식사도 질이 좋고, 개인 방도 줬었는데, 아이들이 자꾸 없어진다고, 아빠가 무섭다고 해서 둘이 같이 나왔어.” 

“아이들이 왜 사라져?”

“입양 가서 사라진 거겠지. 고아원이잖아. 아마, 아빠가 그냥 엄마랑 빨리 결혼하고 싶어서 그런 말을 한 거겠지.”     


이 말을 하며 엄마는 씨익 미소를 짓다가, 미소 끝에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근데, 입양 간 언니 중 한 명이 다시 돌아온 적이 있었어. 그때 수녀님들이 너무 화를 냈었던 것 같아.”

“왜? 파양 당해서? 그게 아이 잘못은 아니잖아.”

“수녀님들은 아이가 탈출했다고 말했어. 그 언니, 아마 꽁꽁 묶여서 방에 갇혔을 걸? 그래서, 양부모가 무서운가보다, 생각했었지. 아빠는 그걸 보고 탈출하자고 했었어. 그덕에 너를 낳은 거 아니겠니.”      


아동학대가 아닐까? 

유아교육과에 다니는 가영이는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아이가 탈출할 정도면, 아동 학대 아니었을까?”

“글세, 잘 모르겠어.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좀 독특한 복장을 하고 있긴 해도, 아이들을 잘 돌봐주는 편이었어.” 

“사진 있어?”

“아니. 고아원에서 탈출한 사람들이 무슨 사진이 있겠니.”

“그 수도원, 아직도 있어?”
“어. 아마도? 역사가 아주 오래된 곳이라 쉽게 문닫진 않을 거야. 그 종교단체 이름이 뭐더라? 유명하진 않은데, 하여튼 돈도 많았어.”


 가영이와 이런 대화를 나눈 얼마 후에, 엄마는 수도원에 가봐야겠다고 말한 것이다.      


“가영아! 엄마가 자란 고아원이 아직 그대로 있나봐! 수도원에 가는 아주 싼 관광 상품이 생겼어!”     


갑자기? 잘 알려지지도 않은 수도원에 가는 관광 상품이 있다고?

가영이는 뭔가 이상했지만, 저렇게 들떠 있는 엄마 앞에서 이상하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관광 상품이 있는지는 어떻게 알았어?”

“세상에, 엄마가 시장 갔다 오는데, 우리 집 현관문 앞에 이게 딱 붙어 있더라!”      


그게 마지막이었다. 

환하게 웃는 엄마를 배웅한 날, 저녁 뉴스에서 엄마가 탄 비행기가 폭파되어 전원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때마침 수도원에 가던, 그 수도원 출신의 고아들이 상당히 타고 있었지만, 대부분 시체도 찾지 못했다. 사망이 분명한 이름뿐인 실종이었다. 그 실종자 중엔 엄마의 이름도 있었다.   

   

‘저 승무원들처럼, 엄마도 나중에 발견될 수 있는 거잖아!’      


아무리 전화해도 엄마의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 가영이는 이렇게 정신이 멍할 때에도 눈물이 줄줄 흐를 수도 있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가영에게는 작은 희망이 있었다. 

경찰은 분명히 이렇게 말했다

.      

“어머니 성함이 탑승자 명단에는 있지만, 시신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어머니 좌석에 휴대전화가 하나 폭파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고, 어머니의 휴대폰인 것도 확인했는데, 어머니 시신은 아직 못 찾았네요.”     


전소되어 못 찾은 것인지, 아니면 아예 엄마가 그 비행기에 타지 않은 것인지도 불확실하다고 했다.    

  

‘그럼, 엄마가 비행기를 타지 않은 것일 수도 있잖아. 엄마가 살아서 돌아오실 수도 있어. 난 기다릴 거야.’ 


그렇게 한 달, 가영이는 하루종일 거실에서 엄마를 기다렸다.      

딱 한달 째 되는 밤이었다.

밤 12시를 막 넘겨, 가영이도 이제 자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적막을 깨고 벨소리가 온 집안에 울려 퍼졌다. 이상스레 귀 옆으로 소름이 스쳐가는 느낌이 들었다.     


“누구지? 이 시간에?”     


가영이네 집엔 인터폰이 없었다. 누군가 벨을 누르면 문에 달린 작은 렌즈로 밖을 내다보고 문을 열지 말지 결정해야 했다. 가영이는 한쪽 눈을 가늘게 뜨고 밖을 내다 보았다. 

엄마였다. 

아무래도, 분명히 엄마였다.     

가영이는 거의 반사적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엄마!”      


엄마는 신기하게도 여행을 떠날 때보다 훨씬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엄마는 가영이를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했다. 손엔 처음 보는 가방을 들고 있었다.      


“엄마! 살아 있었구나!”     


가영이가 엄마 품에 안기려 하자, 엄마는 마지 못해 안아 주다가 2초도 채 지나지 않아 가영이를 밀어내고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엄마?”


가영이가 졸졸 따라다니는 것을 본 엄마는 방문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말했다.     

 

“그래. 우리 딸. 엄마 왔다. 걱정 많이 했지? 엄마는 여기 안방으로 들어갈게.”   

  

가영이는 눈물이 치솟아 나려는데, 엄마는 이 말을 하고 안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엄마?”     


가영이는 엄마가 너무나 피곤한가 보다, 라고 생각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들어도 되니까. 오늘은 엄마를 편안하게 쉬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살아 돌아온 너무 젊은 엄마, 너무 냉랭한 태도. 가슴 저 안쪽에서부터 몰려오는 불안감은 꾹국 눌러버렸다.      

그때, 별안간 다시 초인종이 울렸다. 그럴 리가 없는데, 이 시간에? 

가영이는 현관문에 달린 렌즈로 밖을 내다 보았다.      

마치 수도승같은 옷을 입은 젊은 사내가 거기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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