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커는 철저하게 승무원들만의 공간이었다. 아무나 들어올 수 없도록 항상 잠그어 두는데, 이렇게 문이 활짝 열려 있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걸 따질 때인가.
‘누가 있어도 할 수 없어. 그냥 나가라고 해야지. 그리고 난 어서 기장님이 준 봉투를 열어 봐야 겠어!’
다희는 훤히 열린 문 안으로 들어섰다. 여전히 불이 다 꺼지고, 기분 나쁜 소음과 침묵이 흐르는 공간이었다. 다희는 자신이 누웠던 자리로 걸어갔다.
생각해보니 이상하게도, 이 공항에 도착한 이후부터 모든 문들이 다 열려 있었다. 닫힌 문을 본 적이 없었다.
다희는 벙커 안, 자신이 누워 있던 자리에 다리를 길게 뻗고 다시 앉았다. 그리고 기장이 건네 준 봉투를 열어보려 했다.
‘안에 대체 뭐가 들어 있을까?’
그 순간, 다리 위에 무언가 기어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벙커에 벌레가 있나, 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싫었지만, 지금은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자신이 할 일을, 있어야할 곳을 확인해야 했다.
봉투를 열자, 그 안엔 카드 하나와 PDA 하나가 나왔다. 예전에 다희가 신입 승무원일 때에 팀에서 일정을 공유하고, 회의할 때 쓰던 PDA였다.
“아! PDA! 이거 진짜 오랜만에 보네! 기장님이 혹시, 다음 스케쥴을 말씀해 주시려고 한 것일까? 아, 그럴 거야, 그런 거 같아!”
이 기장은 다희에게 유난히 친절하긴 했다. 다른 승무원들을 모두 야단칠 일이 있어도, 다희만은 결코 야단치지 않았다. 다희가 결정적인 실수를 해도 마찬가지였다. 다희는 그게 고마웠다.
한번은 식사를 가져다 주면서 슬쩍 말을 건넨 적이 있었다.
“기장님! 이번에도 감사했습니다.”
뭐가 감사했는지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대놓고 ‘편들어 줘서’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도 직장 생활인데. 두루뭉수리하게 말하는 게 나을 것이다.
“감사하긴 뭘요. 정다희 씨는 알아서 잘 하잖아요. 다희 씨처럼 착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은 자칫 잘못하면 감정적으로 흔들릴 수가 있는데, 다희 씨는 흔들리지 않고 냉정하게 판단합니다. 아주 뛰어난 자질을 가진 승무원이예요.”
그래. 기장은 다희를 위해 중요한 단서를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가만, 카드, 그리고 PDA? 딱 두 개야?’
안부 카드 따위에 중요한 게 있을 리 없다. 다희는 우선 PDA를 열어 보았다.
‘항공 일정을 확인해봐야 겠어! 지침도 보고!’
이상했다. 다희는 분명 유럽을 경유하여 미국까지 가는 비행기를 탔는데, 실제 스케쥴표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스케쥴표가 텅텅 비어 있어? 말도 안되. 난 분명 유럽을 거쳐 미국으로 가기로 했었는데? 근데, 여기가 어디지? 유럽인가? 아니야.’
다희는 현재 자신이 어느 나라에 있는지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나 왜 여기가 어느 나라인지도 모르고 있지? 아까부터 몰랐어! 근데 왜 생각해내려고 하질 않았지? 아니, 잠깐. 더 심각한 게 있어. 내항사 중에 유럽을 경유해서 미국으로 가는 노선이 있던가? 없어. 없어! 그런 게 없었어!’
생각해보니, 내항사 중에 유럽 경우 미국행 비행기는 없었다. 그러니까 다희는, 현존할 수 없는 노선의 비행기를 타서, 현존할 수 없는 공항에 머물고 있는 거였다.
바로 그때, 어떤 손이 다희의 발목을 움켜잡았다. 너무나 서늘하고도 억센 손이었다.
“누구세요?”
손은 난데 없이 다희의 따귀를 때렸다.
매트리스 위에 앉은 자세로 몇 대나 세차게 맞은 다희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나쁜 년!”
매서운 손이 멈추고, 겨우 눈을 뜰 수 있었다.
부들부들 떨며 눈을 뜨니 아까 이코노미로 옮겼던 환자가 눈 앞에 서 있었다.
“어, 어떻게?”
저 사람은 걷지도 못하던 사람이었다. 아까는 쓰레기통 속에서 나오지도 못한 채 기괴한 소리만 내고 있지 않았나. 대체 어떻게 저렇게 멀쩡히 서서, 벙커까지 걸어와서 다희를 때렸을까. 다희는 얼떨떨해서 말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환자는 다희를 쏘아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길도 제대로 못찾는 주제에!”
환자는 침을 뱉고는 떠나버렸다. 그것도 아주아주 매끄럽게 잘 걸어 갔다.
다희는 잠시 어안이 벙벙해서 환자의 뒷모습을 보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다.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다희는 해야할 일이 있었다. 기장이 준 봉투를 열어 보는 것이었다. 어쨌든 이 공항에서 나가야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야 할 것이다. 그러면 이 지옥같은 상황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열쇠는 이 봉투였다. 봉투 속에 든 PDA와 카드만이 살길이었는데, PDA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다희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카드를 열었다.
그 카드에는 뚜렷이 기장의 이름이 써 있었다.
부고였다.
기장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카드였다.
그순간, 주파수와 같은 비명소리가 또 다희의 귀에 들렸다.
두 번째 굉음과 아주 비슷했다.
생각해 보니, 두 번째 굉음은 ‘주파수’가 아니라 사람의 비명 소리였던 것도 같았다.
‘기장이 죽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내가 방금 봤잖아! 아, 그것보다 이건 또 무슨 소리지? 누가 소리를 지르나? 그럼 분명 객실에서 난 소리일텐데, 그게 이 지하에까지 들린다고?’
지금 비행기 안에 승무원이라고는, 다희 혼자뿐일지도 모르는데, 사고라도 난 것일까.
‘어떡하지?’
잠시 생각하다가, 다희는 이번에도 무시하기로 했다. 그보다는 먼저 확인할 것이 있었다.
다희는 할 수 있는 한 가장 빠른 걸음으로 기장에게 달려 갔다.
‘아까 그 인포에 다시 가보자!’
천만 다행으로, 기장은 여전히 인포데스크에 있었다. 다희가 요란스레 달려가도 전혀 돌아보지 않으면서.
“기장님!”
기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관심도 없어 보였다.
“주신 카드에, 기장님 부고가 있어요! 이게 뭔가요?”
그제서야 기장은 대답을 했다. 아까만큼 힘겨운 목소리였다.
“잊었어요? 내 부고를 들었잖아요. 당신이 일부러 신경 쓰지 않았을 뿐이지요.”
허공이, 다희의 머리가 동시에 쪼개지는 느낌이 들었다. 맞다. 어디선가 들었다.
기장은 다희에게 말을 이었다.
“여긴 죽은 사람들의 공간입니다. 당신이 있을 곳이 못됩니다.”
죽은 사람들의 공간? 그 믿을 수 없는 말이 어쩐지 믿어졌다. 다희도 은연 중에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현실에서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상황들이 연속으로 일어났다는 것쯤은 이미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똑바로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의 몽롱한 감각에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요사스러운 기운이 공항 구석구석 흘러넘쳤다.
하지만 이것은 희망을 주는 말이기도 하다. 문제 속엔 항상 해결점이 있다.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말은, 곧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는 뜻일 것이라고, 그러니 난 살아있는 것이라고 다희는 생각했다. 그리고 어서 이곳을 빠져 나가는 게 상책일 것이리라.
“그럼 전 어디로 나가요?”
“당신이 한번도 열지 않았던 문으로 나가야 합니다. 늦기 전에 나가세요. 영원히 닫혀 버릴 수도 있어요. 아까 그 쓰레기통 속에 있던 환자처럼 말입니다.”
열리지 않았던 문이라니. 공항을 헤매는 내내 모든 문이 다 열려 있었는데. 그리고 환자가 대체 왜 문이란 말인가.
“그런 문은 없었어요. 기장님! 그리고 그 환자가 왜 닫힌 문이예요?”
“당신이 그 환자를 도와줬다면, 문이 열렸을 거예요. 그럼 당신은 여기서 나갈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놓쳐버렸죠. 여기까지 온 것을 보니, 아마 당신은 여러 개의 문을 놓쳤을 겁니다.”
기장의 눈빛을 들여다보며, 다희는 자신이 놓쳐버린 기회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저, 저는 어쩌죠? 기장님?”
“왔던 곳을 다시 살펴 보세요. 분명 문이 있을 겁니다.”
기장은 고개를 돌렸다. 더이상 해줄말이 없다는 뜻이다.
다희도 게이트를 향해 돌아섰다. 인사고 뭐고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그 순간, 다희는 으악 소리를 지를뻔 했다. 누군가 머리채를 잡아 당기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기장님? 무슨 짓을!”
뒤를 돌아보았으나, 그 자리에 기장은 없었다. 다희 주변에도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다시금 누군가 다희의 손을 거세게 잡아 당겼고, 곧 다희의 손등엔 손톱자국이 났다. 주변엔 물론 아무도 없었다
‘내가 언제 다쳤지? 그리고 이 작은 상처가 대체 왜 이리 쓰라린 거야?“
누군가 보이지 않는 손이 다희의 팔을 붙잡고 놓지 않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그 사악한 손은 일부러 그러는 듯이 다희의 상처를 누르고 헤집었다. 힘으로는 도무지 팔을 뺄 수가 없었다. 다희의 상처는 점점 더 크게 벌어져, 피가 뚝뚝 떨어졌다.
“제발! 이게 뭐야? 이거 놔!”
뚝뚝 떨어진 피는 옷에 방울방울 떨어질 정도였지만, 이상스레 멀리 흘렀다. 흘러갈수록 그 양이 더욱 많아졌다. 나중엔 누가 수돗물이라도 틀어 놓은 듯이 줄줄 흘렀다. 보고도 믿지 못할 광경에 다희는 그 피가 흐르는 곳을 시선으로 따라가 보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깨달았다. 텅텅 비어 있던 공항에 갑자기 사람들이 득실 거렸고, 그들은 하나같이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있었다.
아까 다희의 얼굴을 때리고 간 환자, 다른 손님들, 그리고 동료들…. 모두 피를 철철 흘리면서 다희를 지켜 보고 있었다.
사람이 너무 무서우면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는 것이었지. 하지만 어떤 공포는 소리 지를 여유조차 주지 않는다. 숨이 막히는 듯 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다희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게이트를 향해 뛰었다. 기내화가 벗겨지는 것도 모르고 그냥 뛰었다.
그리고 겨우 게이트 앞에 도착했을 때, 다희는 사시나무 떨 듯 떨었다. 동료 승무원들이 모두 비행기 안에서 다희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몇몇은 손을 흔들며 어서 오라고 했다.
다희는 직감했다. 저기에 들어가면, 분명 죽을 것이다.
뒤를 돌아보자, 멀리서 죽은 승객들이 다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다희 바로 옆, 게이트 입구엔 내복만 입은 할머니가 여전히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다희에게 같은 말을 건넸다.
“아가씨, 제발, 내 손을 잡아 주세요.”
다희는, 이 순간, 이 공항에서 자신에게 유일하게 호의적으로 보이는 존재, 아마도 오늘 새벽, 자신이 내버려 두어서 죽었을 존재에게 손을 내밀었다.
할머니는 웃음 지으며 다희의 손을 잡았다.
그 추운 공간에서 덜덜 떨고 있던 헐머니의 손은 이상스러울만큼 따뜻했다. 그 손이 닿는 순간 다희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무서워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었다.
가슴이 아려서, 후회스러워서 흘리는 눈물이었다.
할머니 손을 잡고 나니, 할머니가 자리를 비켜 주었다. 할머니는 금새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게 사라져 버렸고, 할머니 뒤에는 작은 문이 있었다.
다희는 그 문으로 기어 들어 갔다.
기장이 말해준 열린 문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작고 초라해서 꺼려 했던 문, 혹은 숨겨져 있어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인생의 다른 방향, 다른 선택.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마자, 다희는 아주 낯익은 곳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긴, 비행기 갤리 안이잖아?’
갤리 안에는, 여전히 텀블러가 하나 있고, 그 뒤엔 아주 익숙한 문이 하나 있었다.
다희가 절대로 열어주지 않은 문 하나가.
진영이가 찾던 ‘물이 있는 컨테이너 칸’의 문이었다.
다희는 그 문을 열었다.
아까 열어주었으면 더 좋았을 그 문을, 이제야 열었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
“환자의 의식이 돌아옵니다!”
“아까 장애를 가진 분이 마지막까지 버티시다 편안히 가셨는데.. 그래도 생존자가 또 나와서 다행입니다!”
“이 분 말고 다른 생존자는, 저기, 약간 낯익던 사람같은데? 미스코리아 출신에, 탤런트도 했던 사람이었어.”
환자가 깨어나니, 의료진들도 기뻐서 잠시 떠들썩했지만, 담당 의사가 모두에게 조용히 하라고 말했다.
“아직은 환자가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다들 조용히 하세요!”
북새통 속에서 다희는 가느다랗게 눈을 떴다.
눈 앞에는, 좌석에서 진상을 부린다며 다희가 가까이 하지 않았던 그 승객이 의사 가운을 입고 있었다. 청진기를 목에 건 채로.
내 가방이 어디에 있더라,하는 생각이 스치고, 다희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머리맡에서는 심전도 기계 소리가 삑삑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