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은밀한 괴담
‘그럴 리가 없어. 대체 무슨 일이지?’
분명 목적지 공항이 맞는 것 같은데, 안내 방송도 없고, 승무원도 없고, 승객도 없었다. 사무장도 없었다. 비행기가 텅텅 비어 있었다.
빨리 사태를 파악해야 했다.
‘나, 설마, 비상사태에 자버린 건 아니겠지? 설마, 질책 받으면 어쩌지?’
악마가 얼굴을 쓰다듬고 지나가는 듯, 소름이 끼치고 핏기가 가시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무서워하면 안되지. 정신을 차려야해!’
질책이 두려운지, 이 큰 비행기 안에 혼자 있는 게 두려운지, 다희 본인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저 빨리 사태를 파악하고, 대처해야 했다.
‘다들 어딜 갔지? 설마, 다들 벌써 셔틀을 타고 가버린 건 아니겠지?’
셔틀이 있나, 살피기 위해 창밖을 내다 본 다희는 더욱 경악했다. 손이 벌벌 떨리고, 입은 벌어진 채로 굳어버렸다. 투명하고 하얀 피부에 핏줄이 툭 불거질 정도였다.
‘어떻게, 이륙장이 텅텅 비어있지?’
이 넓은 이착륙장에, 비행기라곤 오직 다희가 탄 비행기 한 대 뿐이었다. 이건 불가능했다. 아직 낮인데, 게다가 여기가 얼마나 바쁘게 이착륙하는 국제 공항인데, 비행기가 한 대도 없다니 말이 되는가.
‘어쩌지? 어쩌지? 이럴 땐 어떻게 대처해야 하지? 아, 그래, 기장님을 찾아볼까? 평소에도 나를 아껴주시는 분이니까, 어떻게든 방법을 알려주실 거야!’
어찌해야할 바를 몰라 쩔쩔매던 다희는 기장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가, 이내 이번 비행에서는 이상하게도 기장이 타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뭔가 사연이 있었던 것 같은데, 승무원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맞다. 오늘은 기장님께 식사를 가져다 드리지 않았어! 안 계셨어! 아, 그럼 부기장님이 누구더라? 생각이 안 나네. 어쨌든, 여기엔 없어!’
끔찍할 정도로 공포스러웠다. 텅텅 빈 비행기에서 혼자 자고 있었다니. 정말로 이 공간에 아무도 없다니. 게다가 이착륙장에도 이 텅 빈 비행기 한 대 뿐이라니! 그럴 수는 없다고 다희는 생각했다.
‘나, 여기서 나갈 수는 있는 건가?’
다희는 비행기 출구를 확인해 보았다. 다행히 비행기 문은 열려 있고, 공항 게이트와 정확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마치 다희에게 이쪽으로 오라는 것처럼.
‘문이 열려 있네? 그럼 벌써 다 나간 게 맞지?’
원래 모든 승객들이 내리고 나서 승무원들이 함께 이동하는데, 다희 혼자 게이트를 통해 나가려니 기분이 영 이상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공항에 사고라도 난 걸까? 잘된 건지도 몰라. 사고건 뭐건, 난 지금 무사하잖아. 벙커에 있어서 더 안전했을 수도 있지. 게다가, 비행기에서 내리는 손님들에게 인사하다가 아까 새치기한 그 손님을 만나면 어쩌나 고민했었는데, 이제 영영 마주치지 않을 수 있잖아?’
최악의 상황에서도 생각해보면 다행인 점은 있긴 있다. 그건 사소한 문제일 수도 있고, 다소 심각한 문제에서 빠져나올 방법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한 일이라고 믿을 수는 없지만, 벙커에서 너무 많이 잤어. 세상에, 서빙 시간을 놓치다니. 하지만 만일 사고가 난 거라면, 그것도 유야무야 지나갈 수 있을지도 몰라. 다들 정신 없는 통에 내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어찌 알겠어? 서빙 자체를 안했을 수도 있어. 그래, 아무도 나를 깨우지 않은 것을 보니, 내가 없는 것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게 분명해!’
어쩐지 유독 피곤하더라니. 다희는 너무 깊이 자버린 자신을 자책하며, 한편으로는 약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가방을 챙겨 출구를 나섰다.
게이트를 걸으며 다희는 걱정에 휩싸였다.
다희는 올해도 실적이 좋은 승무원이어야 했다. 칭찬받는 승무원이고, 고객들에게 최고의 찬사를 받는 승무원이어야 했다. 그런데 오늘, 어쩌면 다희는 모든 커리어를 다 무너트릴 수도 있는 실수를 했을지도 모른다.
‘사고가 나서 탈출한 건가? 비행기가 바뀐 건가?’
다희는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진짜 무서워하는 게 텅 빈 비행기인지, 알 수 없는 정적인지, 아니면 무언가 사고가 났는데 자느라 대처를 못해서 앞으로 받게 될 질책이나 감점인지, 혹은 저 얄미운 진영에게 밀리는 것인지. 진짜 무서운 게 뭔지 혼란스러웠다.
어쨌든, 다희는 이 비행기를 빠져 나가야 했다.
‘일단 공항으로 나가면, 누군가 있을 거야! 사람이 없을 수가 없어!’
그러나, 게이트를 빠져나간 다희는 그 자리에서 돌처럼 굳어버렸다.
게이트 주변은 끔찍할 정도로 조용했고, 오직 한 사람만 있었다. 그 사람이 누군지는 멀리서도 알 수 있었다. 아까 새벽 비행기를 타기 위해 지나쳐 버렸던, 내복만 입고 이 겨울에 길에 앉아 있던 할머니였다.
‘대체 어떻게 이 공항에 있는 거지? 저 가난한 할머니가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닌데? 설마 화물칸에라도 타고 같이 온 거야? 아니, 그보다도 어떻게 공항 경비를 뚫은 것이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하지만 다희는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왜 이깟 일에 내가 이리 놀라지? 정신 차리자. 아무 것도 아니야. 어쩌다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지. 속사정은 모르는 거잖아? 그래. 테러리스트가 비행기에 타도 침착해야 하는 게 바로 승무원이야. 승객의 안전을 지켜야 하니까. 난 침착해야해.’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다희는 어제의 자신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생각을 떠올렸다.
‘아, 근데, 왜 승객을 지켜야 하지? 날 위해서? 승객을 위해서? 회사를 위해서? 게다가 지금은, 승객도 없잖아? 저 가난한 할머니는 결코 정상적인 승객일 리가 없고 말이야.’
스스로 생각해도, 오늘 다희는 좀 이상했다. 쓸데 없는 생각이 너무 많았다.
‘나, 왜 이러지? 너무 무서워서 그런가?’
다희는 여전히 혼란스러웠지만, 목소리를 가다듬고 할머니를 불렀다.
“설마, 할머니?”
“저기, 아가씨, 나 좀 도와줄래요?”
숨이 넘어갈 듯한 노파는 파리하고 더러운 손으로 다희의 손을 붙들려고 했다. 이 공항에서도 아까 새벽과 마찬가지로 덜덜 떨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여기가 어딘데.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곳인데. 게다가 창밖을 봐라. 여긴 겨울도 아닌데.
너무 초라한 몰골을 보니, 다희는 머리가 조금은 차가워졌다.
생각해보니, 지금 다희는 이 할머니와 씨름할 때가 아니었다. 이 할머니 손을 뿌리쳤던 아침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서둘러야 했다. 자신이 왜 비행기에 혼자 있었는지 알아내야 했고, 어떤 사태가 났는지 알아내야 했다.
“할머니, 제가 사람을 불러 드릴께요.”
다희는 아까처럼 노파의 손을 뿌리치고 게이트 밖으로 나갔다.
할머니는 다희 뒤에서, 아까 새벽처럼 흐느껴 울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아가씨! 아가씨! 그냥 가지 말아요. 큰일 난단 말이예요! 제발 내 손을 잡아줘요!”
하지만 다희는 돌아보지 않았다.
잡상인에게도, 꼬장꼬장한 상사에게도, 진상 손님에게도 이력이 난 다희였다. 그들을 ‘처리’하면서 다희는 커리어를 쌓아왔다. 그러니 빈민 할머니가 좀 울었다고 해서 다희의 걸음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물론 다희도 원래는 친절하고, 흔쾌히 남을 잘 돕고, 조금이라도 양보하고 배려하여 남을 편안하게 해주는 성격이었다. 그런 다희의 성격이 면접 때 잘 드러나, 승무원 시험에도 어렵지 않게 합격한 것이리라.
그러나 그 적성에 맞는 ‘친절’이 일이 되고, 평가가 되다보니, 거센 압박과 스트레스에 찌들리다 보니, 어느샌가 진심을 잃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저평가 받지 않으려면, 불만 레터 받지 않으려면, 공개적으로 혼쭐이 나지 않으려면 친절해야 했다. 얄미워도 부당해도 낮은 자세로 승객을 섬겨야 했다. 친절이 스트레스가 되고 의무가 되니, 진심이 사라졌다. 친절하지 않은 후배 승무원을 보면 짜증이 나고 분노가 일었다. 때로는 후배들에게 쌓인 분노를 풀었다. 어쩔 수 없다. 사람은 우선 자기가 살아야 하는 존재니까.
‘그래. 경비원도 있고, 다른 승무원도 있을테니, 누군가 할머니를 구조하겠지.’
지금은 빈민 할머니를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빨리 이 사태를 파악해야 했다. 하지만, 달려도 달려도 공항은 이상할 정도로 텅 비어 있었다. 새벽 3시의 공항도 이 정도로 적막하진 않다. 게다가 지금은 낮이 아닌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여야 할 시간이 아닌가. 작은 공항도 그럴텐데, 하물며 여긴 대형 국제 공항인데.
‘국제 공항, 그럼 이 공항은 국적이 없다는 건가? 아, 대체 무슨 헛소리야? 내가 생각해놓고 내가 이상하네. 오늘 나는 왜 이리 쓸데 없는 생각을 많이 하지?’
다희는 인포데스크로 가 보았다. 순간, 다희는 뛸 듯이 기뻤다. 멀리서 봐도 데스크 안에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다희는 안도하며 잰 걸음으로 데스크로 갔다.
“hello?”
안내원은 미동도 하지 았다. 무슨 안내원이 저렇게 불친절할까, 생각하던 다희는 안내원이 돌아보자, 오늘 중 가장 크게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