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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짧은 두루미 Aug 19. 2024

story 1  : 승무원의 아주 은밀한 장소 -(1)

다희는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카트를 밀었다. 오늘은 유럽을 경유하여 미국까지 가는 비행기에서 퍼스트 클라스를 담당하는 날이었다. 경로도 마음에 드는데, 퍼스트 클라스 담당이라니, 몹시 흡족했다. 


‘역시 상위 클라스가 일할 맛이 나네.’


퍼스트 클라스는 일반석보다 카트를 밀고 다니기 편했다. 좌석 간 공간이 더 넉넉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이코노미보다 승객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적으니, 덜 바빴다. 이것만으로도 지구를 자전 반대 방향으로 날아갈 때의 신체적 부담쯤은 너끈히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희는 퍼스트 클라스 승객들에게 최선을 다했다. 훌륭한 재료로 만든 스테이크 요리를 서빙할 때나, 달콤한 과자나 가벼운 음료를 서빙할 때에도 최선을 다해 상냥한 미소와 태도로 일관했으며, 그런 다희의 깔끔한 매너에 승객들도 가볍게 미소 지어 주곤 했다. 

성공적으로 저녁 배식을 마치는 순간, 이코노미에서 작은 소란이 났다. 누군가 난동을 부리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다희의 우아한 미소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다희가 워낙 우수한 승무원이기도 했지만, 또한 이코노미에서 무슨 일이 나건, 자신과는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 마약이나 술이겠지, 뭐.’


마약이나 술에 취한 승객들이 저렇게 가끔 비행기 안에서 말썽이었다. 다희는 퍼스트 클라스 손님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미소로 안심시켰다. 


“이코노미 승무원들이 훌륭하게 대처할 것입니다. 안심하시고 편안한 비행 누리십시오.” 


다희의 위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승객 중 한 명이 불안하여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였다. 다희는 빠르게 다가가서, 최대한 정중하게 지금은 자리를 이동하면 안 되는 시간이라고 설명하고, 자리에 앉도록 권유했다. 승객은 마지 못해 자리에 앉았다. 

이 불안증 승객은 차분하게 앉아있질 못했다. 손톱을 물어 뜯으며 시종일관 두리번 거리는 폼새가, 마치 꼭 가야하는 곳에 못 간 것처럼, 이코노미석에 당첨된 복권이라도 두고 나온 것처럼 불안해 보였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따뜻한 허브티를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다희는 쌀 한 톨만큼도 흔들리지 않는 태도로 응대했고, 승객도 곧 안정이 되었다. 그리곤 다희를 향해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고맙습니다.” 


다 쉰 목소리가, 몹시 피곤해 보였다. 다희는 빠른 섬세한 손놀림으로 담요를 덮어 주었다. 승객은 담요를 머리 끝까지 덮고 잠이 들었다. 

이코노미석에선 여전히 무언가 시끌시끌한 모양이지만, 퍼스트클라스는 이로써 훌륭하게 서비스가 마무리되고 있었다. 


‘이제, 아무도 불만 없겠지? 내가 생각해도 꽤 멋지게 잘 대처했어!’    

 

친절이 생명인 승무원들에겐 승객들의 작은 불만도 대형사고가 될 수 있다. 철두철미하게 서비스를 해야 한다. 어쩌다 비행기 안에서 모기나 바퀴벌레가 나와도, 승객이 사용하고 나간 화장실이 깨끗하지 않아도, 아이가 돌아다니다가 다른 승객에게 물을 쏟아도 모두 승무원 탓이다. 모든 승객들이 쾌적하게 비행을 마칠 수 있도록 승무원들이 이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다희는 아주 숙련된 문제 해결사였다. 승객들의 사소한 불평 쯤은 문제 없었다. 오늘도 그랬다. 이코노미석의 소란 때문에 사방에서 자잘한 요구와 불만이 몰려들었지만, 다희는 유연하게 대처하며 아무 일 없듯 미소로 마무리했다.

특히, 옆좌석 다른 손님 때문에 불만을 표하던 사람은 다희를 향해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원더풀!’이라고 속삭여 주었다. 


‘문제는 곧 기회지. 불편을 느끼는 고객에게 다가가 더 좋은 대안을 제시하면 고객들이 오히려 감동하는 경우도 있거든.’ 


아마, 이번 해에도 칭찬 레터 1위는 다희가 될지도 모르겠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1위를 한다면 그건 정말 영광일 것 같았다.      

이제 승객들이 잠 잘 시간이 되었고, 다희도 드디어 휴식 시간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퍼스트 클라스를 나서는 순간까지도 변함 없이 상냥한 표정을 머금고, 갤리로 돌아온 다희는 씨익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이건 자기 자신을 향해 짓는 미소였다. 베스트 승무원, 칭찬 레터를 가장 많이 받은 승무원. 위기 대처 1위 승무원. 자신을 향한 여러 수식어를 다시 떠올리며, 다희는 흡족해 했다. 오늘도 자신을 따라다니는 수식어게 걸맞게 최상의 서비스를 했다. 

하지만 다희는 미소 끄트머리에 얼굴을 약간 찌푸려야 했다. 갤리에서 물건을 찾느라 쩔쩔매는 후배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손에 고객 것으로 보이는 텀블러를 든 것을 보니 아마 승객이 물을 가져다 달라고 한 모양이다. 


‘그러니까, 물을 아직도 못 찾는단 말이지? 비슷비슷한 박스들이라곤 하지만, 다른 승무원들은 척척 찾아내는데 왜 저 애는 아직 저걸 못 찾을까. 저 애보다 신입도 물은 얼른얼른 찾아서 서빙할텐데 말이야.’


아직 물건의 위치 파악도 못해 만날 천날 선배들에게 도와달라고 말하는 후배, 진영이가 몹시 못마땅하였다. 입사한 지 2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갤리에서 엉망진창이었다. 같은 팀은 손발이 척척 맞아야 하는데, 진영이 때문에 일이 더 늘어나는 느낌이다. 

그런데도 카트를 밀고 나가는 순간 승객들에게는 아름다운 미소로 인기 만점인 진영이었다. 미스코리아 출신에, 방송국에서 잠시 탤런트 활동을 했던 것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다희는 바로 이 점이 슬쩍 못마땅하기도 했다. 작년에는 아슬아슬하게 다희가 칭찬레터 1등을 했지만, 몇 장만 덜 받았어도 저 일 못하는 후배에게 밀렸을 것이다. 


‘말도 안 되지. 어떻게 저런 애가!’ 


다희는 조금도 도와주고 싶지 않았다. 갤리 업무도 다 끝났고, 이제 꿀같은 레스트 시간이다. 

이번 비행은 꽤 장거리 비행이라 휴식시간이 필수였다. 그건 진영이도 마찬가지일 것이지만, 알게 뭔가.  

다희는 조금만 도와달라는 후배의 눈빛을 무시하고 그냥 벙커로 들어와 버렸다.      

벙커, 승무원들이 유일하게 발을 뻗고 누울 수 있는 휴식 공간. 건조하고, 때로는 냄새도 나고, 객실에 비해선 거의 관리가 안 되는 곳이지만, 승무원의 의무에서 벗어나 체력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그래서 꼭꼭 잠겨 있는 벙커의 문은 오직 승무원만이 열 수 있다.  

벙커의 문을 여는 순간, 객실로부터 탈출하는 느낌이 들었다. 개운했다. 불도 다 꺼져 있고, 인기척도 전혀 없는 게 더욱 편안했다. 


‘아직 아무도 안 왔네?’


다희가 퍼스트 클라스 담당인 덕에, 가장 빠르게 내려올 수 있었던 모양이다. 

혼자라는 것을 확인한 후, 다희는 머리로는 진영이의 미소를 생각하며, 그 예쁘고 귀족스러운 얼굴을 황홀하게 바라볼 이코노미 승객들을 생각하며, 신발을 대충 벗어 던지고, 짜증스럽게 몸을 매트리스 위에 눕혔다, 

어쨌든, 벙커에 누워버리니 세상 편했다. 


‘어둡고 침침해서 딱 좋네.’


벙커에는 고시원 방보다도 더 좁은 칸막이가 여러 개 있다. 그 안에 매트리스 하나씩 덩그러니 있을 뿐이지만, 그래도 승무원들에게 벙커는 낙원이다. 이 좁은 칸막이 안은 승객들이 절대로 찾아올 수 없는 곳이자, 다른 승무원들의 방해조차 없는, 비행기 안에서 유일하게 승무원이 ‘혼자’ 있을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지금 탄 비행기에는 벙커가 객실 아래층에 있어서 더더욱, 승무원들 외엔 아무도 찾아올 수가 없다. 물론 찾아와 봤자 문이 잠겨 있을테지만. 

이 생각을 하며 다희는 한 번 더 안도했다.   


‘푹 쉬어야지. 이번 비행은 길어.’


사방이 잠잠했다. 불도 다 꺼져 있다. 간혹 다른 승무원들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건 별로 신경 쓸 게 못되었다. 어차피 자신과 다른 칸에 가서 누울 테니까. 다들 말도 하지 않고 무덤처럼 그저 쉬기만 할 테니까. 

편하게 드러누우니 슬슬 오늘 오다가 만난 사람들이 떠올랐다. 


‘하, 아침에 너무 급하게 나오느라 버스에 승차할 때 새치기를 했어. 나보다 먼저 와서 줄 서있던 여자 옆에 서 있다가 얼른 버스를 탔지. 그 버스 못 탔으면 미스 플라이트, 그러니까 비행을 놓칠 거 같았거든. 점수에 너무 치명적이었을 거야. 아, 근데 그 여자, 하필이면 이 비행기에 타던데, 퍼스트 클라스에선 안 보이는 거 보니까, 아마 이코노미 손님이었나봐. 혹시라도 마주치면 어쩌지? 날 알아보면 어쩌지? 어휴, 나도 참. 승무원 복을 입고 새치기를 하다니!’ 


졸음이 밀려왔다. 다희는 낮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잠을 청했다. 


‘그리고 오다가 또 무슨 일이 있었더라. 아, 그래, 동냥하는 할머니를 그냥 지나쳤지. 너무 바빠서 그랬어. 미스 플라이트는 회복 불가능한 감점이라구. 그나저나, 그 할머니는 어떻게 내복바람으로 코트도 없이 이 겨울에 그냥 길에 있었을까? 혹시 동사하시면 어쩌지? 정신이 온전하지 않아 보였는데, 경찰에 신고라도 하고 올 것을 그랬어. 그럼 할머니가 살 수는 있었을텐데. 아니지. 나 말고 다른 사람이 할머니를 구조 했을 수 있고, 난 그냥 내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빨리 달려왔을 뿐이니까, 그러다가 할머니 손을 조금 뿌리친 거 뿐이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자.’ 


진영이의 한숨 소리가 들린다. 하필이면 다희의 옆칸에 눕는 모양이다. 


‘저 어설픈 애도 어떻게 어떻게 일을 마무리 하고 왔네? 뭐 하나 실수라도 해봐라. 그래. 진영이는 툭하면 너무 많이 자서 호출도 못 듣고, 제 때 객실로 못가곤 했지. 이번에도 그러기만 해봐라. 가만 두나. 이따 보자.’


하지만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피곤한 몸을 얼른 쉬게 하지 않으면, 레스트가 끝난 후에 더욱 고달플 것이다. 다희는 까무룩하게 잠이 들며 생각했다.  


‘아, 다 귀찮다. 이렇게 자잘한 것에 신경 써야 하다니. 진짜 고객도 없고, 짜증나는 후배도 없는 비행 한 번 해보고 싶다.’ 


그때였다. 

갑자기 천둥이 치는 듯한 굉음에 다희는 퍼뜩 눈을 떴다. 


‘어? 무슨 일이 일어났어?’ 


불시착인가? 비행기가 번개라도 맞았나? 뭔가 큰 일이 난 듯했다.  

하지만 다희는 너무 졸렸다. 오늘따라 유독 피곤해서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다. 눈이 저절로 다시 감겼다. 뜨기도 힘들었다. 


‘호출도 없네. 그럼 별 문제 아닌 거야. 위에 있는 애들이 처리하겠지.’


다희는 옆 칸에 누워 있을 진영을 향해 말했다.  


“진영아! 너 올라가봐. 무슨 일인가 알아봐. 혹시 큰 일이면 나 깨워!” 


다희는 중얼거리듯 말하고, 다시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두 번 째 굉음이 들렸다.


“악! 이게 무슨 소리야?”


곤히 자던 다희는 벌떡 일어났다. 아까보단 훨씬 작은 소리이고, 어쩐지 익숙한 주파수가 섞여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언가 심상치 않은 소리임엔 분명했다. 


‘잠이 확 깨버렸어. 대체 무슨 일이지?’


다희는 서둘러 휴대전화를 들여다 보았다. 최근엔 갖은 지침이 이 휴대전화로 온다. 


‘아무 것도 없네? 특별한 지침이 없었나봐? 그럼 별 일 없다는 건데?’


아주 짧게 안도하고, 다음 순간 다희는 온몸이 굳어버릴 정도로 놀랐다. 

시간을 보니 이미 비행을 마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벌써 도착한 거야? 설마! 그럴리가!” 


다희는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진영아! 진영아!” 


커튼을 벌컥 열어 보았으나, 옆칸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희는 어이가 없었다. 느려 빠진 후배가 자신 보다 더 먼저 일어나 나갔다니. 이게 무슨 일이지? 


‘그럼 누가 벙커에 남아 있지?’


다른 칸들도 모두 살펴 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이 넓은 벙커에 다희 혼자뿐이었다. 조용한 것을 넘어서 너무나 적막했다. 

설마, 설마, 자신도 모르게 이미 비행이 끝난 건가? 


‘그럴 리가 없어.’


일손도 바쁜데 사람이 없으면 호출이 왔을 것이고, 비행기가 착륙하기 전에 분명 누군가 다희를 깨웠을 것이다. 그것도 퍼스트 클라스 담당 승무원이 불꺼진 벙커에 혼자 누워 있었다니.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시계를 보면, 분명, 비행이 끝난 시간이다. 


‘나 혼자 벙커에서 계속 잔 거야? 대체 얼마나 혼자 있었던 거지?’


이 편안하던 공간이 어쩐지 음산하게 느껴졌다. 다희는 빠르게 옷 매무새를 만지고, 나갈 채비를 했다. 이상스레 빨리 여기서 탈출하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다희는 굽낮은 승무원 신발을 신고, 자신의 가방을 챙겼다. 다들 호텔로 떠났을 수도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먼저 갤리로 가보자.’


있는 힘껏 뒤어서 급하게 갤리에 나가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인기척도 없이 콘테이너 박스와 선반만 침묵하고 있었다. 그것도 끔찍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너무나 잘 정리되어 있었다.  


‘뭐야? 아무도 없어? 다들 벌써 나간 걸까? 아, 설마 무슨 사고라도 나서 비상사태인 것은 아니겠지?’ 


조심스레 객실로 간 다희는 더욱 놀랐다. 

객실에도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분명 짐은 그대로였다. 아까 다희가 불안해 하던 승객에게 덮어준 담요도 바로 그 자리에 있었고, 그것도 마치 사람만 쏙 사라진 것처럼 다희가 덮어준 형태로 그대로 있었고, 다희가 서빙한 칵테일 잔도, 다희가 웃으며 건네 준 잡지도 모두 그대로 있었다. 승객들이 들고 들어온 짐도 각기 그 자리에 있었다. 

사람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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