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포데스크에 서 있는 사람은 이번 비행기에 타지 않았던 기장이었다.
다희는 어안이 벙벙하여 기장을 불렀다.
“기장님?”
기장은 아주 무심한 표정으로 다희를 바라보았다. 큰 키에 다부진 체격, 곱슬머리, 하얀 피부. 쟂빛이 도는 차가운 눈동자에 입꼬리가 올라가 조금은 웃는 듯한 얼굴. 분명 다희가 알던 그 기장이 맞았다.
“왜 여기에 계세요?”
기장은 오만한 것인지 무표정한 것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는 표정을 지으며, 아무 말 없이 다희를 바라 보았다. 다희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 기장은 전적으로 다희 편을 들고, 다희를 아껴주던 기장이었기 때문이다. 가끔은 개인적으로 연락도 하는 사이였다.
“기장님?”
다희는 기장의 팔에 손을 가져다 대려고 했다. 그 순간, 기장은 뒤로 물러났다. 그러고는 아주 힘겹다는 듯이 입을 열어 다 쉰 목소리로 말했다. 갈라진 목소리는 제대로 발음하기도 어려운 듯 했다.
“다 잊었군요. 당신은.”
이게 무슨 소리인가, 다희는 잠시 생각했지만, 알 수가 없었다. 일정을 잊었다는 소리가 아니길 바라며 되물었다.
“제가 뭘 잊었는지 알려 주시겠어요?”
“내가 있어야 할 곳과 당신이 가야할 곳이요.”
다희는 순간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벙커에서 내내 자버린 것을 기장이 알고 있는 것일까,하는 불안에 얼굴에 온통 핏기가 가셨다. 하지만 불안을 내색하진 않았다. 여전히 말쑥한 태도로 기장에게 물었다. 사무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게 이렇게 힘든 것인 줄, 전에는 몰랐었다. 그냥 멋지게 웃으면서 반듯한 태도를 유지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제가 가야할 곳이라니요? 좀 더 설명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장님.”
기장은 잠시 침묵했다. 어디 먼 곳을 바라보는 듯 했지만, 그 시선에 머무는 곳엔 아무 것도 없었다. 여긴 그저 텅 빈 공항일 뿐이었다.
다희는 기장을 똑바로 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반드시, 반드시 대답을 들어야 한다!
기장은 대답 대신 작은 봉투 하나를 다희에게 주었다.
“비행기에 다시 가봐요. 가서 이 봉투를 열어 보세요. 절대로, 공항 내에서 열어서는 안됩니다. 비행기 안, 가장 안전한 곳으로 들어가서 열어 보세요.”
지독하게 이상한 소리라고 다희는 생각했다. 왜 공항에서 열어보면 안된다는 걸까. 이해할 수가 없었다. 기장의 비밀이라도 적혀 있는 것일까. 하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장님.”
다희는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돌아서서, 게이트를 향해 걸었다.
‘일단 이 봉투를 열면, 무언가 해답이 있겠지. 지침이나 집합 장소같은 게 아닐까? 내가 놓친 일정을 알려주시려고 하신 건가? 그래, 그럴 거야. 기장님은 항상 내 편이었으니까!’
걸으면서도 다희는, 이 공항이 너무 이상하게 텅텅 비어 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청소부도, 경비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테러리스트가 왔었다거나, 아니면 화재가 났던 게 아닐까? 비행기 사고가 났으면 이것보다는 시끌시끌할텐데, 사람들이 다 대피한 것처럼 공항이 텅텅 비어 있어. 분명, 뭔가 문제가 있어.’
하지만 상관 없었다. 자신만 위기를 벗어나면 되는 거였다. 어쨌든 다음 비행기를 타고나면 지금 이 순간의 고민이나 불안은 싹 사라질 것이 분명했다.
‘차분히 생각하자. 차분하게.’
화장실 앞을 지나면서 다희는 자신이 오늘 하루종일 화장실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바쁘게 일하다 보면 화장실 갈 틈도 없을 때가 있지. 아니다. 잠깐. 오늘은 그리 바쁘지 않았는데, 왜 안 갔더라?’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미리 준비해 두어야겠다고 생각한 다희는 바퀴 달린 작은 가방을 끌면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까 화장도 못 고치고 그냥 일어났어. 옷을 갈아입지 않고 그냥 자버린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네. 화장도 다시 하고, 머리를 좀 만져야 겠다. 옷 매무새도 체크해야지.’
화장실 안은 이상하게도 어둡고 시야가 흐릿했다.
‘전등을 안 갈았나?’
먼저 거울을 보았다. 엉망진창이었다.
‘일단 손을 씻은 후에 머리를 만져야겠다.’
수돗물을 틀고 손을 씻었다. 차가운 물이 콸콸 쏟아지니 처음엔 기분이 좋은 듯 했지만, 너무 차가우니 나중엔 은근한 통증이 스며들었다. 혈관 속으로 뻑뻑한 얼음이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뭐야? 왜 이렇게 차가워? 아직 겨울이라 그런가? 아니, 이 나라도 겨울인가? 이 나라는, 지금 아마….’
손이 너무 시렵고 아파서 다희는 기도하는 것처럼 양손을 모았다가, 비볐다가 했다. 그때, 누군가 다희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누구지? 아, 다른 승무원인가?’
뒤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군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본 순간, 다희는 그야말로 경악했다. 바로 뒤에는 아무도 없고, 저 멀리에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청소 도구를 쌓아둔 곳의 바로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그 쓰레기통 안에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쓰레기통 안에 쭈그려 앉은 채로 고개를 내밀어 다희를 보며, 펑펑 울고 있었다.
다희는 화들짝 놀라 돌아 보았다.
외국인이었다. 그것도, 어쩐지 본 듯한 외국인이었다.
‘아, 맞다. 저 사람! 승객이었어! 장애를 입은 듯 했고, 내내 이상한 소리를 내서 고객들의 불만이 있었지? 저 사람 내가 아까 이코노미로 옮겼었는데? 걷지도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 있지? 그것도 쓰레기통 속에?’
쉬지 않고 잉잉거리는 이상한 소리를 내서, 다희가 일반석을 맡은 후배 승무원의 레스트 석으로 옮겨 좌석 벨트로 고정해버린 승객이었다. 핑계는 나쁘지 않았다. ‘안전을 위해 특별 보호가 필요해서 승무원의 보호를 받기 위해 좌석을 옮깁니다.’
원래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다희 전에도 후에도 일어나지 않을 일이지만, 다희는 일을 빠르게 처리해 버렸다. 어차피, 말을 못했고, 지적으로도 장애를 지닌 사람으로 보였다. 불만을 표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또한 비행기에서 내리면 이 사람이 어느 클라스에 있었는지 주변 사람들이 알게 뭐란 말인가. 그리고 어차피 후배 승무원이 관리할텐데, 문제가 생겨도 다 후배탓이지.
한 마디로, 다희에게 어떤 피해도 입힐 수 없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어차피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힘든 고객이었다. 저 손님 하나 때문에 퍼스트 클라스 승객들에게 갖은 잔소리를 듣고 불만 레터를 받느니, 저 승객 하나가 자리를 옮기면 만사 해결되는 것이었다. 후배에게 미뤄버리는 편이 나았다.
저 승객의 자리를 옮기니, 하필이면 장애인 옆자리냐며, 시끄러워 잠을 잘 수가 없다며 강한 불만을 표하던 손님이 다희를 향해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들며 ‘원더풀’이라고 속삭이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굳이, 이 손님에게 사실을 다 말할 필요는 없었다.
다희는 빠르게 자세를 가다듬고, 손님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서 뭐하세요?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다희가 먼저 말을 걸었지만, 말을 못 하는 사람이 대답할 수 있을 리가 만무였다. 손님은 여전히 잉잉거리는 소리를 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분명, 도와 달라는 의미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다희는 잠시 이 승객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저 쓰레기통에 손을 대기도 싫었고, 100킬로는 족히 넘어 보이는 무게를 들어올리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희는 손님을 바라보다가, 슬며시 손님 바로 뒤에 있는 버튼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마 저 버튼을 누르면 장애인 화장실 문이 열릴 것이다. 시선을 완전히 옮긴 후에 다희는 입을 열었다.
“잠시 기다리세요. 제가 사람을 불러 올께요.”
다희는 버튼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하고 나서 화장실을 나섰다. 당연히, 여전히, 공항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람을 불러 오겠노라고 말하는 순간에도 이미 알고 있었다. 아무도 불러올 수가 없다는 사실을.
이건, 다희 책임은 아니었다. 다희는 최선을 다해 사람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공항에 사람이 없었던 것이라고 말하기로 결심했다. 혹은 화장실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으로 하면 되는 것이었다. 어차피, 다희를 본 사람도 없으니까 말이다.
‘이건 그러니까, 저 손님을 저 쓰레기통에 처박아 둔 싸이코 때문이지, 내 탓은 아니잖아. 아, CCTV는 어쩌지? 혹시 CCTV로 문제를 삼으면, 사람이 없어서 도와줄 사람을 찾으러 나갔다고 해야겠다. 아니다. 아예 저 손님을 만나지 못한 것으로 하면 되잖아? 못봤어. 난 못 본 거야.’
다희는 잰걸음으로 다시 원래의 비행기로 돌아왔다. 비행기 문도 여전히 열려 있었고, 게이트는 비행기와 잘 연결되어 있었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처럼. 비행기 안으로 들어가며 다희는 승무원 신발이 굽이 낮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이렇게 빠르게 움직이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따라 가방에서 소음이 심했다.
다희는 여전히 바퀴 달린 여행 가방을 끌고 다니고 있었는데, 오늘따라 쿵쿵쿵덜덜덜 하는 소리가 요란했다.
‘가방 바꿀 때가 되었나? 하필이면 이럴 때!’
그 거슬리는 소리를 들으며 다희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쿵쿵. 드르륵. 쿠드드드. 후덜덜덜. 오늘따라 가방 바퀴 소리가 요란해서 더욱 불안했다. 불안하면 불안할수록, 다희는 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비행기 내부는 여전했다. 갤리도 조용했고, 승무원은 아무도 없었다.
‘승객들이 없으니까, 갤리에서 할 일도 없어. 아무도 뭘 요청하는 사람이 없잖아. 나쁘지 않은데?’
다희는 객실을 둘러보았다. 먼저 퍼스트클라스석으로 가보았다. 여전히 아무도 없었는데, 조금 이상했다. 아까는 분명 승객들의 짐이 그대로 있었는데, 지금 보니 싹 치워져 있었다.
‘그새 다들 짐을 챙겨가지고 나간 건가? 아니, 그럼 사람이 있었다는 건데? 어딜 간 거야?’
다희는 이번엔 이코노미쪽으로 가보았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지만, 딱 한 군데 시선이 가는 곳이 있었다.
‘아, 저 자리는!’
시트와 바닥에 피가 흥건히 흐르고 있는 좌석이 하나 있었다. 그 자리는 기내에서 난동을 부려 제지를 받던 승객의 자리였다. 워낙 난동이 심해 사람들이 다치고, 주먹으로 가슴팍을 얻어 맞았다고 들었다. 후배들은 고참 다희에게 도움을 요청했었다. 아마 마약이나 알콜 중독 증상으로 추정된다는 보고를 받았으나, 다희는 슬쩍 내다보고 사태 파악만 했을 뿐, 후배들을 돕지 않았다.
난동 부리는 승객이 너무나 덩치도 크고, 손에는 흉기같은 것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다같이 봉변이나 당하겠지. 난 빠져도 되. 이코노미 담당도 아닌데, 뭘.’
나중엔 이코노미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후배들 대부분 이코노미로 갔지만, 다희는 슬쩍 내다보고는 관여하지 않았다. 가기 싫었다. 아까 그 손님은 제정신도 아닌 것으로 보였고, 온통 승무원들이나 다른 모든 손님들을 괴롭히는 것처럼 보였다. 자는 손님을 깨우고, 승무원들을 툭툭 쳐대는 통에 보기만 비행기 안이 들썩거렸다.
‘무시하는 게 상책이지.’
후배들은 연신 도움을 청하고, 팀장까지도 다희에게 가보라고 했지만, 곧이어, 다희에겐 좋은 핑곗거리가 생겼다. 찢어질 듯한 비명에 퍼스트 클라스 고객들이 두리번거린 것이다. 다희는 얼른 그들에게 안심하라, 이코노미석의 승무원이 조치할 것이다, 이리로는 아무도 건너올 수 없다고 말하며 승객들을 안심시켰다. 더 솔직히 말하면, 실제로 안심시켰다기 보다는 ‘위기 상황에서 의연하게 승객들을 안심시키는 멋진 승무원’ 연기를 했다. 자신은 위기 상황 대처 능력 1위지만, 여기를 돌봐야 하니 갈 수가 없다는 듯이. 그덕에 이코노미의 북새통에 끼지 않을 핑계를 얻었다. 그리고 다희는 자신의 일이 끝나자마자 미소를 지으며 벙커로 내려 갔었던 것이다.
‘그래. 아까 비행할 때, 이 자리에 있던 손님, 진짜 경찰에 인계해야 할 정도로 난동을 피웠었지. 어디 아픈 것 같기도 했어. 얼굴도 파리하고, 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어, 게다가 이 조용한 비행기에서 소리소리를 질러대질 않나…. 항공법 위반 소지도 있었어. 어? 근데, 왜 저런 게 여기에 있지?’
난동을 피우던 손님 자리엔 청진기 하나와, 아주 작은 단말기가 하나 있었다. 단말기에선 삐삐삐삐 연신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하, 결국 의사까지 출동했고, 아마도 의사까지 때려눕힌 모양이야. 별 진상을 다 보겠네. 거지 같아. 근데, 저런 손님이 한 둘도 아니고, 이 상황에서 이게 뭐라고 내가 지금 신경을 쓰나. 나도 참. 이상하네. 그나저나, 저 청진기는 잘 보관해 뒀다가 의사에게 돌려 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귀찮긴 한데, 손님이 난동 부릴 때 나도 뭐라도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낫겠지?’
생각해 보니, 청진기는 좋은 핑계가 될 수 있었다. 잘 챙겼다가 나중에 의사에게 돌려주거나, 혹은 팀장이 보는 데서 의사의 청진기를 보여주면, 마치 다희도 위기 상황에서 열심히 일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희는 허리를 굽혀 청진기를 집으려다가, 못 볼 것을 보았다. 좌석 아래 쪽에 눈이 간 것이 화근이었다.
아까 난동을 부리던 손님이 좌석 아래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마치 다희를 관찰하고 있기라도 하는 것처럼. 안색이 파리하고, 얼굴에 온통 땀을 흘리고 있었고, 눈동자는 심하게 충혈되어 있었다. 하지만 대단히 진지한 눈으로 다희를 올려다 보았다. 의자 아래, 구석에 쪼그려 앉은 채로.
‘아, 깜짝이야! 어떻게 좌석 아래가 저렇게 텅텅 비어 있지? 누가 좌석 아래쪽을 잘라서 도려내기라도 했어? 그럴리가! 그리고, 저 자리에 사람 하나가 다 들어갈 수 있다고? 말도 안돼!’
여기가 과연 자신이 탔던 그 비행기가 맞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설마, 테러리스트나 폭발물이 있었던 걸까? 그래서 저 안전한 곳으로 들어간 거고? 아니야. 저기가 안전할 리가 없지. 왜냐면, 저기엔 진상 손님이 있으니까!’
다희는 끌고 다니던 가방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가방으로 승객이 틀어박혀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좌석 앞을 막아 버렸다. 생각하기도 전에 손이 아주 익숙하게 움직였다. 앞좌석과 뒷좌석 사이의 간격이 좁은 이코노미라, 다희의 통통한 가방은 여유 공간을 거의 남기지 않고 딱 맞게 들어가버렸다. 아마 이 가방을 밖으로 빼기 전까진 저 승객은 좌석 밑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모르겠다. 일단 안전하고 봐야지. 이 미친 인간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잖아? 이 모든 사태가 저 인간 때문일지도 모르잖아? 나중에 문책이 들어와도, 항공기 내에서 소란을 피웠다고 하면 되. 안 믿을라나? 그래도 지금은 어쩔 수 없어.’
다희는 벌레라도 피하듯이 빠르게 갤리로 향했다.
‘잊어야지. 잊어야지. 아, 근데 오늘 정말 이상해. 너무 이상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상한 일이었다. 공항이 이렇게 텅 비어 있을 수도 없고, 진상 손님 혼자 남겨두고 모두 비행기를 떠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공항이나 비행기가 이 모양이 된 것일까. 그 사태에 어떻게 자신은 잠만 자고 있었던 것일까. 혹시 진영이가 자신의 물에 약이라도 탄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진영이는 약간 순진한 면이 있는 후배였다.
‘그 앤, 그럴만한 위인도 못 되잖아.’
다희는 잡생각을 잊고 싶다는 듯이 더욱 빠르게 걸었다. 갈수록 속력이 붙었다. 이렇게 공항과 비행기 내부를 뛰어다니는 데도 발이 아프다거나, 피곤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단지 공기가 좋지 않은지 정신이 몽롱해지는 게 가장 불편했다.
갤리에 들어가 보니 아까 진영이가 들고 있던 텀블러가 여전히 선반 위에 놓여 있었다. 이와중에도 다희는 짜증이 났다.
‘뭐야? 아까 일도 마무리 못하고 그냥 벙커로 들어온 거였어? 그럼, 손님은? 아직도 물을 못 마셨을 거 아니야!’
제대로 트집 잡았다. 어쩐지 속이 다 시원했다. 이 정도 실수면 상벌 심의 위원회도 열릴 수 있을 정도였다. 사소한 실수도 고객이 불만을 표하면, 혹은 오너가 야단을 치면 승무원에게는 그야말로 심각한 문제가 된다. 평생 진급을 못할 수도 있다. 너무 혹독하게 야단 맞으면 대개 항공사를 그만 두곤 한다.
‘절대 그냥 넘어가지 말아야지. 두고봐라. 내가 어떻게 하나!’
하지만 지금은 사소한 것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일단 급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다희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일단 벙커로 가서, 기장님이 주신 편지 봉투를 열어 보는 게 제일 급해.’
가방이 없는데도 어디선가 드르륵드르륵 물건을 끄는 소리가 났다.
‘이게, 내 가방 소리가 아니었어? 분명, 어디엔가 사람이 있는 게 분명해! 뭐,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면, 그러니까 이 사태를 해결할 사람이 아니면 상관은 없지만 말이야.’
거슬리는 소리를 들으며 아래층에 도착한 다희는 잠시 멈칫했다. 항상 잠겨 있던 벙커 문이 이상하게도 활짝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지? 꼭 아무나 다 들어오라는 것 같네. 여긴 그러면 안되는데! 설마, 벌써 누가 들어왔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