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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짧은 두루미 Sep 30. 2024

story 3 : 아주 가성비 높은 공유 오피스 (4)

눈을 떴을 때, 지환은 자기 자리에 엎드려 있었고, 주변엔 낮은 째즈음악에 섞인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뭉글뭉글하게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내가, 자고 있었나?’     


주변은 어제와, 또 그제와 다를 바 없었다. 사람들은 천장 쪽만 뚫린 칸막이 안에 들어가 각자 자기 일을 하고 있었고, 이 공간에 몇 명이나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지환은 어제 그 자리에서 엎드려 자고 있었다.    

  

‘어제 그럼, 내가 꿈을 꾼 건가?’     


노트북은 뚜껑이 덮여 있었다. 지환은 노트북을 켰다.      

노트북 바탕화면은 깨끗했다. 그럴 리가 없다. 지환은 작업 중인 파일을 바탕 화면에 두는 습관이 있었다. 하지만 어제 마우스가 제멋대로 놀면서 바탕화면에 있던 파일들을 죄다 지워버리려 했었다.      


‘내가 컴퓨터를 분명 껐었는데, 끄기 전에 삭제된 건가?’     


순간, 소름이 끼쳤다. 그러니까, 최소한 어제 해킹당한 것까지는 꿈이 아니란 뜻이다. 어서 여기를 떠야 했다. 지환은 부랴부랴 일어나 출입구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 갔다. 이상스레 뛸 수가 없었지만, 최선을 다해 발걸음을 움직였다. 

그리고 드디어, 출입구에 다다라 문을 열려는 순간 밖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왜 나가요? 제 정신이예요?”     


사람들이 지환을 밀치고 들어와서 자동으로 문을 여는 버튼을 뜯어버리고, 철제 캐비닛을 끌고 와서 문을 막아 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주 잠깐 사이에 이 공유 사무실엔 아무도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게 되었다. 지환은 사람들에게 따지듯 물어보았다. 


“무슨 일인가요? 왜 문을 막아요?”
 “비켜요! 밖에 있으면 다 죽어요!”     


사람들이 창문에 달린 폴딩도어를 닫아 버리기 전, 지환은 봤다. 길거리가 이상스러울 만큼 조용하고, 이 번화가에 사람이 하나도 없으며, 도로 위가 피범벅인 것을. 

비탄에 잠긴 한숨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요?”


지환은 비교적 차분해 보이는 사람에게 물었다.    

 

“밖에서 알 수 없는 폭파 사건이 일어나고 있어요. 길을 가다가 갑자기 죽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실내는 안전합니다.”     


지환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왜 폭파 사건이 일어나는 것인가요? 휴대전화라도 터졌어요?”

“혹시, 뉴스 안 보세요?” 


게임 기획하느라 뉴스를 보지 않은 지 꽤 되었다. 

차분해 보이던 그는 다소 의아한 눈으로 지환을 바라보며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얼마 전 비행기 사건은 알죠?”

“네. 그 벙커에 있던 승무원 두 명만 구조된 사건이요?”

“그 이후로 이상하게 폭발 사고가 자꾸 일어나요. 처음에는 모방범죄인지 알았는데, 규모도 점점 커지고, 폭발 원인을 아무도 모른다고 해요. 길 한복판에서 폭발이 일어나면 연쇄적으로 주변 도로가 다 폭발해 버려요. 아직까지 건물이 잘못된 적은 없어서 폭발 사고가 나면 다들 건물 안으로 들어오지요.” 

“근데 창문은 왜 닫았어요?”

“정말 뉴스 안 보시나보네. 폭발 사건 직후에는 꼭 회색 수도복을 입은 이상한 사람들이 돌아다녀요. 그 사람들, 아주 위험해요. 그런데 이상하게 건물 안으로는 절대 안 들어온다고 해요. 그래서 다들 이렇게 건물 안으로 피신해 있는 거예요.”


이상했다. 건물 안으로 못 들어오는데 왜 굳이 문을 저렇게 폐쇄해 버렸을까. 

“그럼 건물 로비 안에 있어도 되잖아요? 왜 굳이 공유 오피스 안으로 들어왔어요?”

“문이 있어야 실내거든요.”

“네?”

“문이 없으면 건물 안인지 밖인지 어떻게 구분하죠?”


그런가? 문 안으로는 못 들어온단 뜻인가? 그럼, 문 안으로 들어오면 되지 왜 저렇게 창문까지 폐쇄해 버린 것이지? 지환이 묻기도 전에, 차분해 보이는 이가 먼저 대답했다. 

“문제는 문을 폐쇄해 버리지 않으면, 밖에서 누군가 들어올 수도 있고, 안에서 나갈 수도 있어요. 그럼 그 순간엔 문이 열리잖아요?”     


지환의 궁금증은 아직 해결된 게 아닌데, 옆에 있던 다소 부산해 보이던 사람이 떠들어 댔다. 

“그게 남의 일이 아니었다니까! 알 수 없는 폭발이 일어난다는 뉴스를 보긴 했어도 그냥 조심해야지, 싶었는데, 아니 그게 이 관악구 한복판에서 일어날 줄이야! 아니, 그렇다고 출근을 안 할 수도 없잖아! 어쩌란 거지? 회사에선 지금 출근하라고 난리가 났어!”      


그래. 들은 적이 있다. 비행기 폭파 사건 때도 벙커 안에 있던 승무원들만 무사히 구출되었다고. 아니. 나중에 벙커로 옮겨졌다고 했던가? 근데, 그 이후로 길거리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있다고? 폭발 후에 수도사들이 돌아다니면서 무차별 살해를 한다고? 

몰랐었다. 최근에 일이 바빠서, 그리고 빨리 완성하고 싶어서 뉴스도 안 보고 있었다. 그저 빨리 저 서류를 완료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언제 나갈 수 있어요?”

“모두가 합의가 되어야 창문 밖을 확인하고, 안전을 확인한 후에 나갈 수 있어요. 이 안에 들어온 모두가 합의가 되어야 일단 창문을 내다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많은 사람이 합의해야 문을 열 수 있다고? 반대하는 사람 하나만 있어도 확인도 못한다고?’ 

밖에 나가기가, 정말로 어려울 것 같았다. 

이윽고, 문 밖에서 사람들이 아우성 치는 소리가 들렸다. 문 좀 열어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아까 한번에 밀려들어온 사람들이 문 앞을 가로 막았다. 


“아무도 문 열어주지 마세요! 문 여는 순간 같이 죽을 수도 있어요.”


일부러 안 여는 게 아니라, 못 열어주는 거였다. 게다가, 여기서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창문 밖을 확인하는 시간이 더 늦어질텐데, 하는 생각에 지환은 머뭇거렸다.      

갑자기 공유 공간 내에 사람이 많아져서 그런지 지환은 몹시 졸렸다. 요즘 이상하게 점점 더 잠이 많아지는 것 같다.   


‘피곤해. 이상하게 나른해. 아주 조금만 더 자야겠어. 어차피, 밤이 되려면 멀었고 아직 사람이 이렇게 많잖아. 설마 유령이 나타난다고 해도,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뭘 어쩌겠어?’      


지환이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해가 어스름하게 지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무실 안엔 사람이 많았고, 키보드 소리, 커피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공유 오피스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허브티를 한 잔 마시고 나니, 차츰 지환은 이곳이 아주 평범하고 안전한 곳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평소보다 사람들이 좀 많긴 했지만, 어차피 각자 칸막이 안에 들어가 있으니 눈에 띄지도 않고, 사람이 많으니 귀신이 나올 리도 없다. 



‘이런 기분은 왜 드는 거지? 익숙해서? 여기는 사람이 많으니까? 근데 그런 게 안전을 보장하지도 않는데, 왜 안전한 느낌이 들지?’     

이런 걸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일이 밀렸다. 지환은 게임이 출시 되기 전까지 할 일이 남아 있다. 최종보스 방을 완성해야 한다. 기획안도 보강해야 한다. 하루라도 빨리 완성하는 게 더 빨리 성공하는 길이다. 슬슬 투자자들도 독촉하고 있었다.      


‘어쩐지. 사람들이 밖에 나가지 못하니까 게임을 더 많이 하게 될 거고, 지금 출시되는 게임은 어지간만 하면 대박이겠지. 그래서 투자자들이 빨리 게임을 내면 대박날 거라고 했던 거구나.’   

  

지환은 마음을 고쳐 먹었다. 빨리 게임을 출시하면, 예상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지긋지긋한 원룸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겠고, 훨씬 좋은 것을 먹고, 편안한 데서 쉬면서 더 쾌적한 곳에서 일하는 삶이, 어쩌면 평생 지속될지도 모른다.      


‘설사 유령이 있으면 어쩔 건가. 녹음실에서 유령이 나오면 그 노래는 크게 히트 친다더라. 설사 목만 있는 여자가 있으면 어쩔 건가. 목만 있으니 특별한 위협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 원래 귀신 같은 것은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으면서 사람에게 겁주는 게 특기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귀신을 보고 ‘물러가라’라고 하지 않았던가. 물러가라고 하면 진짜 물러갔기 때문이겠지.’     


저쪽에선 합의가 된 것인지 창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이상하다? 나에겐 묻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합의가 되었지?’

하지만 상관은 없었다. 

지환은 해질녘의 번화가를 바라보며 오랜만의 휴식을 즐겼다. 그 순간에도 어쩐지, 무언가 놓친 것이 있는 기분이 들었지만, 이 역시 ’기분‘일 뿐이라 생각해 버렸다.      


‘어제 일은 그냥 이벤트 같은 거야. 그리고 나는 해야할 일이 있잖아. 마무리할 때 쯤엔 이 소동도 끝나 있을 거야. 집에 가서 푹 쉬자. 집에선 잠만 자고, 바로 오피스로 또 나와야지.’      


책상에 다시 앉은 지환은 바탕화면 휴지통에서 아직 삭제 되지 않은 자신의 작업물을 복원 시켰다. 천만 다행이었다. 귀찮은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도 이렇게 손쉽게 파일을 되찾았으니까 말이다.      


난민처럼 오피스에 들이닥친 사람들이 딱히 방해가 되지도 않는다. 그들도 남의 공간에 자신들이 침범한 것을 알고나 있다는 듯이 쥐죽은 듯 조용히 있었다. 지환도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렸다. 사람들은 오피스에서 주는 무료 간식을 먹고, 음료수를 마시곤 했다.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잔잔한 음악소리에 무슨 말인지 분명하게 들리진 않았다. 


지환은 간식도 먹지 않고 일만 했다. 이제 조금만, 조금만 더 있으면 작업이 완료될 것이다. 기획도 얼추 마무리 되었고, 이제 스토리 하나만 더 쓰면 완성이다. 딱 하나 남은 최종 보스 단계를 마무리 해야 하는데, 도무지 스토리가 써지지 않았다.      


‘마무리를 대체 어떻게 지어야 하지?’     

환기가 필요하다. 얼마나 일했을까. 아주 오랜만에 노트북 화면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었을 때, 지환은 자신의 앞쪽에 있는 칸막이에 누군가 턱을 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제 그 여자였다. 

턱을 파티션에 괸 채, 고개만 지환의 칸막이 안으로 쑥 밀어 넣고, 말 없이 지환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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