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이 빌라 앞 쓰레기 버리는 곳에 봉지를 던진 순간, 어디선가 썩은 내가 확 끼쳤다. 쓰레기 봉지에서 나는 게 아니었다. 이준은 협회에서 가져 온 물과 커피 외에는, 집에서 아무 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다. 출장이 많아 집에서 좀처럼 생활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이준의 쓰레기라고 해봐야, 본부에서 온 문서를 파쇄한 쪼가리 종이들, 잡다한 포장 박스 정도였으니 썩은 내가 날 리가 없었다.
‘뭐지? 이 지독하고 더러운 냄새는?’
아직 판단 내리기는 좀 어려웠지만, 이건 아무래도 시체에서 나던 그 냄새같았다. 과거 이준이 질리도록 맡았고, 절대로 잊을 수 없었던 그 냄새.
천천히 고개를 들고, 무심한 척 주변을 살피던 이준은 분명 보았다. 며칠 전 죽은 여자가 이준을 스쳐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아랫층 여자잖아? 죽었다고 분명, 뉴스에 나왔었는데?’
이준은 혹시라도 자기가 착각한 것인가 싶어서 아주 뚫어지게 여자를 바라보았다. 분명, 죽었다던 그 여자였다. 긴 머리에 호리호리하고, 이웃들과 인사하기 싫어하던 사회성 제로의 그 여자.
여자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건물에 달린 유리문 안에서 빛이 새어나왔다. 사람이 지나가면 켜지는 센서등이 켜진 거였다.
‘죽은 사람이 지나갔는데 센서등이 켜져? 그럼 분명 유령은 아니잖아. 내가 방금 잘못 본 건가?’
1층 현관에서 켜진 등은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중간 계단에서도 켜졌다. 누군가 계단을 올라갈 때마다 켜지는 등이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중이야?’
이준은 3층에 살고 있었다.
‘혹시 3층 불이 켜지면, 앞집 노인들이 올라갔단 소리인데, 아무리 봐도 방금 지나간 사람은 젊은 여자인데?’
결국, 3층에는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2층 현관문 앞 등까지 켜진 이후로, 다시는 인기척도 나지 않고, 센서등도 켜지지 않았다. 누군가 2층의 자기 집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죽은 여자는 2층에 살고 있었다.
***
쓰레기를 다 버리고 나서도 이준은 잠시 머뭇거렸다. 잠시 상황 정리가 필요했다.
그러니까, 이준은 방금, 이 분리수거장에서 아무래도 2층에 살던 여자를 본 것 같다.
분명 죽었다던 그 여자가.
심지어 이준은 그 여자가 마지막으로 들것에 실려나가는 장면을 똑똑히 본 것이다.
그날도 이준은 3층 자기 집 거실에서 창문 밖을 내다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리는 듯 하더니, 곧이어 구급차가 빌라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은 2층 여자를 들것에 싣고 빠르게 가버렸다.
‘2층 여자, 어디 아픈가?’
잠시 어디가 아픈 걸까, 돌봐줄 가족도 없을텐데, 라고 생각했지만 곧 이준은 그저 무심하게 모든 광경을 바라보았다. 20년도 넘게 이 빌라 3층에 살면서, 이런 장면 쯤이야 숱하게 보아온 것이다. 얼마 전엔 바로 저 2층 여자 전에 201호에 살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 구급차에 실리는 것을 보았고, 그 전엔 지하방 B101호에 살던 일가족이, 그리고 그전에, 전에, 전 쯤엔 이준의 할아버지가 저리 실려나갔던 것이다.
실려나갔던 사람들은 대개 병원에서 잘 치료를 받고, 저 빌라 마당으로 걸어서 돌아왔다. 하지만 이준의 할아버지나, 201호 할머니처럼 영영 돌아오지 못한 사람도 아주 가끔은 있었다.
‘젊은 여자니까, 뭐 금방 돌아오겠지. 성격 때문에 발작이라도 난 게 아닐까?’
좀 유별나던 여자였다. 이준조차도 조금은 꺼려지던 여자였다.
피우던 담배를 다 피우고, 협회에서 온 팩스들을 살펴 보고, 자신이 할 일을 정리한 후에 이준은 저녁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녁 메뉴는 뭘로 할까?’
샤로수길에 산다는 것은 뭘 먹을까, 먹을 게 없네 하는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단지 이 많은 메뉴 중 뭘 고를까가 문제이지. 혼밥도 자연스러운 곳이라, 더더욱 혼자 사는 이준에게 잘 맞았다.
그러나 적당한 아우터를 하나 걸치고, 기분 좋게 현관문을 열던 이준은 빠르게 다시 문을 닫았다.
나지 말아야 할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왜, 여기서 악귀의 냄새가 나지? 죽은 사람이라도 있나?’
이상하다, 이상하다 생각하던 준은, 아까 그 냄새에 대해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전한 악귀의 냄새라고 하기엔 좀더 육체를 가진 그 무엇의 냄새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혼령보다는 예전에 지겹게 맡았던,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고 항상 몸서리 쳐지던 냄새에 더 가까웠다.
‘냄새에 뭐랄까, 물리적 실체가 느껴졌었어. 그럼 완전한 악귀가 아니라, 역시 돌연변이?’
게다가, 냄새는 아주 옅었다. 이준 정도 민감한 감각의 소유자가 아니었다면 거의 눈치채지 못했을 거였다.
이준은 [돌연변이 연구소]의 수도사 복장을 꺼내 입었다. 그 넓은 소매 안에 몇가지 장비를 숨긴 후, 발자국이 남지 않는 신발을 신고 다시 현관문을 열었다.
냄새는 방금 전보다 훨씬 더 옅어졌다.
‘이대로면 금세 냄새가 소멸할 거야. 그전에 찾는 게 낫겠어.’
냄새의 진원지를 찾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준이 딱 한 층을 내려갔을 때, 201호의 현관문이 다 뜯겨져 있었고, 그 안에는 온통 피범벅이 된 바닥이 있었다. 바닥 어디선가 그 고약한 냄새가 풍겨오고 있는 게 틀림 없었다.
‘그래. 여기밖에 없겠어.’
그런데, 분명, 바닥에 고인 저것은 피일텐데, 괴이하게도 완전히 붉은 색이 아니었다. 인간의 피라고 하기엔 오히려 분홍색에 가까운, 좀 옅은 색 액체였다.
이준이 가까이 다가가자, 옅게 피어나던 냄새는 완전히 사라졌다.
이준을 피하기라도 하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