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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꽃 Sep 12. 2024

추어탕, 미꾸라지를 처음 만난 날

 1. 어떤 여자의 음식 이야기 

내가 아주 어릴 때였다.

시장에서 미꾸라지를 사 오신 엄마는 수돗가에 앉아 사 온 미꾸라지를 대야에 담아두었다. 이제껏 보아왔던 물고기 그림하고는 또 다르고 그렇다고 뱀같지는 않은 그 요동치는 생물체를 징그럽게 쳐다보고 있던 나는 엄마가 그것을 어떻게 손질할지 너무너무 궁금했다. 

한옥의 아래채에 세를 들어 살고 있던 우리 가족은 집주인인 큰 방 식구들과 수도를 같이 썼다. 공동수도였던 것이다. 마침 주인집 아줌마도 수돗가에 엄마가 사 오신 것과 똑같은 생물체를 대야에 담아두시더니 부엌으로 들어가셨다. 나는 수돗가에 쪼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그것들이 움직이고 또 펄쩍 뛰는 것을 보고 있었다.

잠시 후에 주인집 아줌마가 햐얀 망사 주머니를 가져 오셨고 내 옆에는 나와 동갑이던 주인집 딸 진이가 나란히 앉아 요란하게 움직이는 그 생물체들을 함께 보고 있었다. 주인집 아줌마, 즉 진이 엄마는 망사 주머니를 진이에게 손으로 벌려서 잡고 있으라고 한 다음 대야를 들어 그 생물체, 즉 미꾸라지를 그 속에 들이부었다. 진이는 너무 놀라 꽥 소리를 지르며 망사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고 그 바람에 미꾸라지는 수돗가 시멘트 바닥으로 우르르 다 쏟아졌다.

진이 엄마는 화를 내며 진이를 야단치셨고 크고 우악스러운 손으로 미꾸라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슥슥 주워서 망사 주머니 안에 잡아 넣었다.

  "안 되겠다. 진이 가서 오빠야 델꼬(데리고) 온나." 

진이랑 나이 차가 꽤 나는 큰오빠가 왔고 오빠가 진이 엄마를 도와 흩어져서 바둥거리는 미꾸라지들을 망사 주머니 안에 넣었다. 오빠도 징그럽다고 투덜투덜대기는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미끄러워서 한 마리씩 줏어 담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가 보았다.

망사 주머니에 미꾸라지가 가득차자 아줌마는 우리 엄마를 불렀고 "새댁아, 잘 봐라. 이래 하는기다." 

입구를 단단히 묶은 망사 주머니 위로 굵은 소금을 한 가득 뿌리더니 갑자기 빨래라도 빨듯이 그것들을 마구 주물러 빠는 것이다.

고무장갑도 끼지 않고 맨손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미꾸라지를 손질하는 진이 엄마의 손길은 결혼 선배의 그것이자 장인의 그것이었으며 자부심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우리 엄마가 고무장갑을 낀 채 찡그린 낯으로 "아이구~!"를 연발하니- 옆에서 나도 꽥꽥을 연발했다. - 결국 진이 엄마가 우리 집의 그것들도 함께 치대주었다. 엄마는 그 날 진이 엄마한테 야단을 맞았다.

 "이기 뭐라고 못 만지노? 그래가 우째 살라카노!"


그렇게 나와 미꾸라지와의 첫 만남은 진이네 집 공동 수돗가의 새빨간 대야와 돌아가며 지르던 비명, 그리고 허옇게 거품을 뱉어내던 그들의 강렬했던 몸부림으로 기억된다.


그 날 저녁.

밥상에는 국이 올라왔고 나는 그것의 재료가 낮에 수돗가에서 봤던 요란하게 움직이던 그 놈들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에 한 숟가락도 뜨지 않았다. 엄마가 입을 벌리고 몸에 좋다고 강제로 먹이려고 했지만 구역질이 올라와서 도저히 삼킬 수가 없었다. 결국 엄마가 포기하고 마셨다. 

한참 나중에야 나는 내가 봤던 그 생물체가 '미꾸라지'이고 보통 그것으로 '추어탕'이라는 국을 끓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의 강렬했던 기억 이후로는 그 어떤 미꾸라지에 대한 기억도 없는 것을 보면 우리 엄마 또한 미꾸라지로 인해 트라우마가 생긴 것인지 모르겠다. 이 후로 시장에서 한번도 미꾸라지를 사 오신 걸 본 적이 없으니. 

무엇보다 아빠가 원래 국을 그다지 좋아하시는 분이 아니셨다. 그럼에도 요즘 엄마가 자주 추어탕을 드시는 것을 보면, 그때도 직접 끓이지는 않았지만 자주 맛집에서 사다 드신 게 아닌가 싶다. 

어린 딸과 함께 미꾸라지를 징그러워하던, 곱디고운 새댁이었던 우리 엄마도 이제는 여든을 바라보시면서 삶이 스며든 늙고 거친 막손을 가지게 되었다. 힘든 일 하는 가장의 건강을 돌보고 자식 넷을 키우면서 엄마는 미꾸라지에 놀랐던 새댁이 아니라 "미꾸라지 어데 싸게 파는 데 없나?"고 찾으시는 여장부가 되셨다.


오십 줄에 접어든지 몇년이 지났건만 사실 나는 아직 미꾸라지를 못 만진다. 그리고 아직 한 번도 추어탕을 끓여본 적도 없다. 하지만 이제 구역질은 커녕 춥고 몸이 으슬으슬하게 떨리는 날이면 진한 추어탕 한그릇에 제피가루와 다진 마늘, 청량고추를 넣어 보약처럼 한 그릇을 먹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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