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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꽃 Sep 12. 2024

보름달빵과 우유, 그때는 젊었기에

2. 어떤 여자의 음식 이야기

부모님은 서로 사랑하셨다. 그러면서도 자주 다투시곤 했다. 

좋으실 때는 한없이 서로 다정하시다가도 갑작스레 언성을 높이며 다투시니, 어린 나는 퇴근하시는 아버지의 발소리를 들으면 혹여 두 분이 만나 또 다투면 어쩌나 싶어 작은 심장이 벌렁거리곤 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부모님이 다투신 것은 사실 그 많은 세월 속에서 몇 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예민하고 여렸던 나는 크게 놀랐던 적이 있는지 부모님의 부부싸움이 그 어떤 전쟁영화나 공포영화보다 무섭게 느껴졌다. 


초등학교 1학년 때다.

너무나 좋아하지만 술이 약한 아버지께서는 그날따라 직장에서 힘든 일이 있으셨던지 평소보다 많은 술을 드시고 돌아오셨다.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본인의 주량보다 과하게 마셨으니 술을 못 이겨 잠에도 들지 못하시던 아버지께서는 자정이 넘은 밤, 엄마에게 배가 고프다고 하셨다. 남편 일의 힘듦을 아셨던 엄마는 아버지께 밥상을 차려드리며 조금이라도 술이 깨고 주무시기를 원하셨지만 아버지께선 새벽까지 힘들어 하시다가 겨우겨우 주무셨다. 

다음 날 아침 햇살이 비추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일어나지 않는 부모님이 깨실까 봐 살금살금 마당으로 가서 양치를 하고 얼굴을 씻었다. 

다른 아이들은 아침마다 엄마가 머리를 감기고 말리고 곱게 빗질하여 색색의 방울끈으로 머리를 묶어 주고, 고운 향이 나는 아기 로션을 발라 반짝반짝 윤이 나게 해서 학교에 오는데, 그날 아침의 나는 혼자서 자고 일어나 수세미가 된 머리에 물칠을 하고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숨소리마저 죽이면서 학교에 가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다시 방에 들어와 양말을 찾아 신고 있을 때, 잠자리에 누워서 무심히 나를 바라보시던 엄마가 윗목에 놓여 있던 밥상을 가리키며 아버지가 남긴 밥을 먹고 가라고 했다. 말라비틀어진 김치조각과 다 식어빠진 국, 먹다 남긴 밥 위로 양념이 얼룩덜룩 묻은 그 밥상은 어린 나처럼 초라하고 비참하게 보였다. 

늘 화가 나 있는 엄마가 무서워 시키는 대로 순종하는 아이였지만, 그날의 나는 도저히 그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나는 싫다고 하고 울면서 학교에 갔다. 


수업도 듣는 둥 마는 둥, 나의 머릿속은 온통 이후 학교를 마치고 집에 어떻게 들어가는가 하는 것뿐이었다.

아버지는 출근을 하셨겠지만, 밥 먹고 가라는 엄마의 말씀을 듣지 않았으니 또 야단을 맞으면 어쩌지......

나는 그 생각뿐이었고 심히 괴롭고 힘들었다.

2교시 쉬는 시간 종이 울렸고 아이들 중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부르며 엄마가 오셨다고 전해주었다.

뒤를 돌아보니 엄마가 서 계셨다. 누가 봐도 운 것이 분명한 퉁퉁 부은 눈과 생기 없이 허옇게 뜬 얼굴의 엄마가 눈으로 나를 찾고 계셨다. 나는 창피할 뿐만 아니라 반갑지도 않은 엄마를 보고 천천히 걸어갔다. 친구들이 모두 너희 엄마 아버지 어제 싸우셨구나, 다 알게 될까 봐 두려웠다. 초등학교 1학년, 8살짜리에게는 엄마의 마음을 헤아릴 여유가 없었다. 나는 그냥 다 싫고 부모가 다 미웠다. 부끄럽고 창피했다.

엄마는 손에 내가 좋아하는 보름달빵과 우유를 들고 계셨다. 그리고 나를 보자 빵봉지를 뜯어주시면서 먹으라고 하셨다. 다른 아이들이 먹고 싶어 하는 것을 눈치챈 엄마는 교실 복도 끝에 놓인 긴 의자로 나를 데려가 앉히곤 빵을 떼어 입에 넣어주셨다. 왜인지 모르지만 목이 메었다. 엄마는 우유에 빨대를 꽂아 그것도 내 입에 넣어주셨다. 조금 넘어갈 것 같았다. 그러나 더는 넘어가지 않았다. 엄마는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수업 시간이 시작된다고, 늦게 가면 선생님께 혼난다고 하면서 교실로 달아나듯 가버렸다. 


보름달빵과 우유에 얽힌 슬픈 기억이다.

디저트 카페가 성황인 요즘. 그때의 보름달빵과 비슷하게 카스텔라 사이로 달콤한 크림이 들어있는 빵을 보면 문득, 부부싸움으로 어린 딸을 굶겨 학교에 보낸 엄마의 손에 들려 있던 보름달빵이 떠올라 목이 메곤 한다. 나의 이런 이야기를 남편에게 들려주면 그는 이런 말로 나를 달랜다.

 "부모님도 그때는 젊었기에 시행착오가 많았던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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