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어떤 여자의 음식 이야기
퇴근길에 마트에 들러 장을 봐오겠다던 남편이 갓 짜낸 콩물을 사 왔다.
오늘 저녁엔 채 썬 오이와 통깨를 듬뿍 얹은 콩국수가 먹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도 싫지는 않았다. 시원하고 고소한 콩국수 한 그릇이면 오늘 하루의 고단함이 싹 가실 것이다.
면 삶기의 달인인 그가 국수를 삶아서 채반에 건져둘 때까지 나는 오이를 채 썰고 면기를 꺼내 식탁 위에 세팅을 하면서 조지 마이클의 ‘Last Christmas’를 들었다.
커다란 보울에 콩물을 붓고 생수를 조금 넣어 농도를 맞춘 다음 소금을 뿌려 저은 뒤 맛을 본다. 더할 수 없이 고소하다. 면기 위에 얹어 놓은 국수사리 위로 만들어 둔 콩국물을 붓고 오이를 얹은 다음, 통깨를 뿌린다. 장식으로 빨간 토마토나 수박 한 조각을 얹어도 좋고 없어도 상관없다.
서로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면서 숟가락으로 콩국물부터 맛본다.
“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어릴 때는 콩국수를 좋아하지 않았다. 한여름에 엄마 따라 시장에 가서 사 먹었던, 우뭇가사리를 넣은 콩국은 좋아했지만 콩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는 것은 별로였다. 칼국수나 잔치국수, 비빔국수처럼 간장이나 고춧가루가 들어간 양념을 넣어 먹는 익숙한 맛의 국수가 아닌, 더없이 ‘꼬소한’ 콩국물에 국수를 말아 김치랑 먹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 보기에 콩국수란 음식은 ‘팝콘에 김치를 얹어 먹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남편은 나와 달리 콩국수를 좋아한다. 여름에 국숫집에라도 가게 되면 그는 자주 콩국수를 시켜 먹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와 함께 살아왔어도 여름날 국수 취향은 각자의 성격만큼이나 분명해서 대체로 나는 매콤한 비빔국수, 그는 꼬소한 콩국수였다.
그랬던 내가 요즈음 콩국수의 매력에 푹 빠져든 것이다.
극강의 고소함으로 하루의 피로를 달래면서 우리 부부는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 나가는 중이다.
나는 아마도 며칠 뒤면 또 이 맛을 떠올릴 것같다.